커피나무 열매를 재료로 만든 음료.
15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케파로 추정되는 곳에 자라던 커피나무의 열매가 남아라비아로 전파되어 재배되기 시작했고,
세계로 퍼져 현재에 이르렀다.
커피를 만들 때에는 열매를 과육과 껍질로 분리해서 정제한 다음 고온에서 볶는 로스팅의 과정을 거친 후, 물에 끓여 마실 수 있게 분쇄해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카페인과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어 신체의 순환계, 신경계에 생리적인 효과를 발휘하며, 대뇌와 심장 활동을 촉진시켜 이뇨작용을 일으킨다.
커피는 열매를 어떻게 추출하여 마시는지에 따라 드립 커피, 콜드 브루, 추출 커피로 그 종류가 나뉜다.
드립 커피는 열매를 볶아서 갈은 뒤 거름종이에 담아 그 위에 물을 부어 걸러 마시는 것으로, 이러한 방식의 커피를 '원두 커피'라고 부른다.
콜드 브루는 찬 물을 사용해 긴 시간 동안 추출하여 마시는 것으로, '더치 커피'라고 불리기도 한다.
추출 커피는 기계를 이용한 것으로, 높은 압력과 온도를 이용해 추출했기 때문에 완성된 커피는 에스프레소와 같은
고농축이 된다.
'머신 커피'라고도 부른다.
“커피의 고향이 어디일까요?”
어색한 첫 미팅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겨우 1~2%다.
대부분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식문화가 발달한 유럽 국가나 커피 생산 대국인 브라질 혹은 콜롬비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커피의 원조국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다.
커피의 3대 품종 중 가장 향미가 뛰어난 아라비카 종의 주산지로 이슬람 문화권인 아랍과 함께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게 된 기원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 유래에 대한 유력한 두 가지 전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천일야화에도 언급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에 칼디라는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먹고는 흥분하며 잠을 못 자는 것을 본 그는 직접 빨간 열매를 따서 먹어봤다.
목동은 열매를 먹고 나자 온몸에 힘이 나면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씨앗을 이슬람 사제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부정한 음식을 먹기 전, 의식으로 빨간 열매를 불에 태웠더니 그윽한 커피향이 퍼지면서 사제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커피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이후 척박한 땅에서 양이나 염소를 치며 유목생활을 하는 이슬람교도들은 힘이 나는 열매를 가지고 다니며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사제들은 밤에 기도를 드릴 때 잠을 쫓기 위해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홍해 바로 건너편 나라인 예멘에서 비롯됐다.
이슬람 대사제인 오마르는 모함을 받아 쫓겨 모카라는 항구 도시로 건너오게 되었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 그는 새가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보고 알라의 계시라 생각해 그 열매로 허기를 달랬다.
그랬더니 배고픔도 사라지고 기운이 나서 그 뒤 그 열매로 병약한 이들을 치료했다.
예멘의 모카 항은 그 뒤로 커피를 수출하는 주요 항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모카커피도 항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모카커피는 초콜릿향이 강한 예멘의 정통 커피로 블렌딩에 알맞은 양질의 커피로 사랑받는다.
전설과 상관없이 에티오피아에는 가장 오래된 야생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어 커피 원조 국가로 인정받는다.
커피라는 단어 또한 에티오피아어로 힘이라는 의미의 카파(caffa)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더 확실히 입증해준다.
“큰 위기가 올 때마다 우리 심장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따뜻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커피에 관한 명언처럼 힘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신비하고 효험이 뛰어난 열매를 발견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행운이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사랑받는 인기 음료인 커피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을까.
이슬람 교파 중 하나인 예멘의 수피교도들이 에티오피아 커피를 아랍과 중동 지역으로 퍼뜨렸는데, 그 시간은 1,0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뒤 아랍인은 지중해를 넘나들며 유럽과 활발히 교역을 이어나갔고,
그 와중에 커피가 점차 유럽인에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비싼 커피 원두는 세금 때문에 큰 골칫덩어리였다.
종교에서도 의견 차이를 보여서 유럽에서는 한때 커피를 금하기도 했다.
그 당시 유럽은 로마 교황의 힘이 막강했는데,
이교도들이 들여온 음료 때문에 밤에 잠을 안자고 범죄와 음탕한 생활을 한다고 믿었기에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부르기도 했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탈레랑은,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라며 그 당시 커피의 명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커피에게 붙여진 ‘악마의 음료’라는 별명은 지금도 광고 카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한때 금지됐던 이 음료는 17세기경부터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번져갔으며,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람들을 통해 아시아와 중남미로 보급되면서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커피 최대 생산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머물 당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로 봐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드링커는 고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전문점은 20세기 초, 독일인 손탁 여사에 의해 들어섰다.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호텔인 손탁 호텔 안에 첫 커피숍을 개업한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명동과 소공동 등지에 일본식 다방들이 생겨났다.
대중적인 보급은 한국 전쟁 이후에 이루어졌는데,
미군들의 식량에 속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익숙해지고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시판되면서부터다.
다방식 커피든 인스턴트커피든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커피든 간에,
커피는 그 향미를 즐기며 대화하는 데 가장 사랑받는 음료임에는 틀림없다.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커피 열풍은 식지 않았다.
커피 전문점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테이크아웃 컵을 손에 든 채 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은 이제 낯선 광경이 아니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나 미팅 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멋진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맑은 정신을 갖게 하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해 내서 바쁜 현대인들과 쉽게 친숙해졌다.
“나는 아침 식탁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커피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좋을 수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60여 가지나 가르쳐준다”
라고 말한 베토벤처럼, 늘 아침이나 휴식할 때 커피를 마시는 이 세상의 모든 이는 단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가 아닌, 생각을 더욱 또렷하게 하는 힘을 갖기 위해 커피를 즐겼다.
* 강지영 / '미식가의 도서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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