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옛날 아주 아득한 옛날이었다.
이 골짜기엔 본래 백골이 있었는데, 그 때에는 많은 맹수들이 나와 날뛰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맹수들이 들끓어 백성들이 무서움에 떨며, 마음 놓고 다니지를 못했다.
이때 중국에서 한 스님이 들어와서 섬 안 곳곳을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렀다.
“다 여기로 모이시요!”
그는 마을 마을을 다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서 모이시오. 이 산에 살고 있는 맹수들을 모두 없이해 줄 테니 다들 모이시오.”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그만 귀가 솔깃했다.
맹수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해치고, 곡식밭을 망쳐 놓아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니 “여러분들, 이제 다들 ‘대국동물대왕 입도’ 라고 큰소리로 외치시오.”하였다.
사람들은 호랑이니 곰 등 맹수들을 없이해 준다니 좋아서 시키는 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라산에 있던 맹수들이 다 이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스님은 불경을 오랫동안 외우고 나서 모여든 맹수들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이제 살기 좋은 곳으로 돌아가라, 너희들이 지금 모여 있는 이 골짜기는 없어질 것이고,
너희 종족은 멸종하게 될 것이다.”
스님이 고함을 쳤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짐승들이 모여 있던 골짜기가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물론 거기에 있던 맹수들도 간 곳이 없었다.
그 후로부터 제주에는 맹수도 나지 않게 되었고, 왕도 큰 인물도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왕이 날 수 없으니까, 계속 육지부 사람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제주시에서 제2횡단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오르다보면 어승생 저수지를 지나 왼쪽으로 유독 골짜기가 많은 산이 보인다.
제주의 산에는 오름 또는 악, 봉이란 이름이 붙는데 유독 이 산만은 아흔아홉골이라 불린다.
골짜기가 아흔아홉이나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거대한 곡괭이로 긁어낸 듯 울퉁불퉁 깊게 팬 골짜기가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지경으로는 제주시 해안동에 속하는 이 산은 원래 백 개의 골짜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가 없어진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옛날 제주 섬에는 호랑이, 곰 등 맹수들이 많이 살았다.
맹수들은 무시로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기 일쑤였다.
섬 사람들의 생활이란 산에서 과실과 약초를 캐고 사냥을 하거나 바닷가에서 해물을 캐어먹는 게 일이었는데,
이들 맹수의 습격으로 인하여 특히 힘이 약한 노약자, 부녀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봉변을 당하곤 하였다.
자식들을 낳긴 했지만 맹수들의 침입과 갖은 질병으로 인하여 섬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만 갔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몇몇 부족들끼리 불침번을 서고 수비대를 조직하였지만 맹수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의논 끝에 이 섬을 창조한 설문대할망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섬사람들은 목욕재계하여 갖은 음식을 마련하고 설문대할망의 강림을 청하였다.
설문대할망이 강림하자 사람들은 갖은 아양을 떨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할망을 기쁘게 했다.
취흥이 어느 정도 깊어지자 청년동아리 대표가 호기 있게 나서며 말했다.
“설문대할마님, 이 섬을 창조하여 우리를 살게 하신 은혜는 어찌 높은 하늘과 넓은 바다에 비교하겠습니까?
천년세세 자자손손들이 우러러 칭송할 것입니다.
하오나 설문대할마님이 하신 일 중에 잘못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 말에 흥이 확 깨진 설문대할망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이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한 어른이 큰 기침을 하며 청년에게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청년은 짐짓 이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 좁은 섬에 왜 짐승들을 풀어놓아 우리를 못 살게 하십니까?
저희들은 이제 살아도 못 살게 되었습니다.”
하고 청년이 말하자 설문대 할망은 버럭 화를 내었다.
“살아도 못 살다니 그 무슨 복에 겨운 소리냐?
내가 이 섬을 만든 것은 하늘의 축복이고 은총이니라.
산에는 온갖 과실과 약초들의 씨를 뿌렸고,
바다는 천 년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만큼 해물들을 양축하고 있으며,
온화한 날씨와 깨끗한 공기와 마실 물을 흐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심심해할까봐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 갖가지 동물들을 살게 하였는데,
이 이상 지상낙원이 어디 있더란 말이냐?
살기 싫거든 모두 이 섬을 떠나거라.”
그러자 그 섬의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청년을 밀치며 나섰다.
“대자대비하신 할마님,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미약한 저희들이 어찌 높으신 할머니의 의중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들이 이렇게 백수를 넘게 무병장수하는 것도 다 할마님의 덕이옵고,
온갖 복락을 누리는 것도 다 할마님의 뜻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산과 바다에 먹을 것이 많으면 무엇 하고 좋은 경치가 있으면 무얼 합니까?
밤이면 맹수들이 울부짖는 소리,
낮이면 사방 곳곳에서 맹수들이 싸우는 모습에 함부로 동굴 밖을 나갈 수 없으니,
그 많은 과실을 거둘 수 없고 경치가 있어도 마음놓고 구경 다닐 수 없으니,
저희들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게다가 짐승들이 인간들의 거처에 침범하여 사람들을 살상해 자손을 번식시킬 수가 없으니,
어찌 이곳을 낙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청하옵건대 제발 맹수들을 이 섬 밖으로 내쳐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들어보니 섬사람들의 사정이 딱함을 알고 설문대할망은 고충을 처리해 주기로 약속했다.
설문대할망은 당장 온 섬에 통문을 돌리어 맹수들의 대표자 회의를 소집했다.
맹수들은 난데없는 회의 소집에 의아해하며 보좌관들을 대동하고 맹수들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백골산으로 모여들었다.
설문대할망의 일장 연설이 장황하게 이어졌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섬을 만든 것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신들의 고향을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 맹수들의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때로 인간들을 해치고 두렵게 하니 섬의 질서가 깨져버렸다.
이는 설문대할망이 섬을 창조한 창조 정신과 의도가 아니므로 다시금 질서를 잡고자 한다.
그리하여 맹수들을 더 넓고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줄 테니 너희 졸개들에게 알리어 당장 이주 준비를 하여라.
그리고 다시는 이 섬에 나타날 생각을 말라.
이를 어기는 종자들은 씨를 멸족할 것이다.'
설문대할망의 절대적인 권력을 거역할 수 없는 맹수들은 더 넓은 곳으로 옮기면 영역 분쟁을 안 해도 되니,
좋아라 하며 명령에 복종하기로 했다.
설문대할망은 맹수들을 육지로 옮기고 다시는 맹수들이 태어나지 않도록 골짜기 하나를 메워 버렸다.
이후로 이 산은 아흔아홉 골이 되었고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게 되었으나,
이 골짜기가 없어져버림으로 인해서 이 섬에서는 위대한 인물의 탄생혈도 막혀 왕이나 큰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한라산 어승생 북동쪽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마치 밭고랑처럼 뻗어 내린 기봉들이 있다.
모두 아흔아홉 개라고 하여 ‘아흔아홉골’이라고 부른다.
그 기봉이 백 개를 채우지 못하여 숙명적으로 제주도에는 범과 왕이 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왕이 될 뻔한 인물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문사랑이었다.
문사랑은 국지리 소목사로부터 명당 자리 하나를 얻고 바로 그 자리에 부친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그 자리가 바로 왕후지지(王侯之地)였다.
그러나 3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방안에 은거해 있어야만 왕이 될 수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백여 일밖에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서울 궁궐을 염탐하다가 들키고 말았다.
결국, 궁궐살이들이 문사랑을 결박하고 제주도로 내려와 왕후지지에 묻힌 그의 선묘를 파버렸다.
이로 인해 하늘을 나를 듯했던 그의 기운이 일시에 떨어져 버렸고, 임금이 되겠다던 뜻도 좌절되고 말았다.
1983년 3월 15일 제주시 이도1동의 김선우(남, 62세)가 구연하고,
1985년 출판된 『제주전설집성』에 수록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여러 갈래의 골짜기가 곳곳에 경승을 이루고 있는데,
천왕사와 석굴암이 있는 서쪽 골머리 일대는 기암과 약수터, 폭포가 숲과 어우러진 명승지이다.
제주시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한라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수도승의 도량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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