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 / 손광성
제주도를 못 잊는 것은,
못 잊어 노상 마음이 달려가 서성이는 것은,
유채꽃이 환해서도 아니고,
천 일을 붉게 피는 유도화가 고와서도 아니고,
모가지째 툭 툭 지는 동백꽃이 낭자해서도 아니다.
어느 아득한 전생에서인가 나를 버리고 야반도주한 여자가,
차마 울며 잡지 못해서 놓쳐 버리고 만 여자가,
삼태성을 지나 북두칠성을 돌고,
은하수 가에서 자잘한 별무리들 자분자분 잠재운 가슴으로 어느 봄날 문득,
할인 마트나 주말여행을 다녀온 여인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그런 표정으로 나타나서,
이별의 세월만큼이나 불은 젖무덤으로 나타나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언저리 어디쯤 얼굴 묻고 누우면,
누워서 한나절이나 반나절이나 칭얼거리다가,
모슬포 앞 바다 자갈밭을 핥는 파도도 칭얼거리다 지쳐서 잠이 들 때쯤이면,
청동 거울처럼 반질한 내 해묵은 불면증도 곤히 잠들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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