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깎일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한자어 창피(猖披)에서 온 말로,
원래 옷을 입고 띠로 매지 않은 채 헝크러진 모습이라는 뜻에서,
이는 남에게 보이기에 체면이 깎이는 일이므로,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말이다.
창(猖)은 기운이 넘쳐 미쳐 날뛰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로,
猖狂(창광)이라거나, 전염병이라든지 옳지 못한 세력들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는 것을 뜻하는 창궐(猖獗)과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피(披)는 풀어헤치다는 뜻으로,
풀어헤치면 속의 것이 드러나게 되므로,
속에 감추어진 무엇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피(披)라고 한다.
이는 남 보기에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은행 현직에 있을 때에도 은행 대출을 받으면 당연히 사례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추석이나 설에 정종(청주의 상표)두 병이나 사과 한 상자 보내는 정도의 인사를
챙기는 것도 크나큰 사례였다.
내가 말단 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장차 책임자가 되면 이런 것도 시정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일부 은행직원 중에는 대출을 해 주고 신세를 망치는 경우를 보곤 했다.
내가 차장,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내 밑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하엿고, 나 자신이 그렇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나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고 나니, 우리 은행 거래선들은 대출은 받아 가면서,
정기적금 가입 등 예금에 대해 부탁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해 가 버린다고,
부하 직원들로부터 은근히 원망을 듣곤 했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료공장을 착공하였고,
우리 은행에서는 공장 신설에 필요한 시설자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오랜 기일동안 공사가 진행되더니 드디어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
사장은 지점장인 나를 찾아와, 준공식에 와 달라고 초청장을 주며,
그 동안 자금지원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각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무엇인지 물었더니, “약소합니다, 저의 성의올씨다.”하고 내밀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거액의 시설자금을 지원했으니,
직원들 회식이라도 한 번 하라는 뜻에서 돈 봉투를 주는구나, 여기며 받았다.
사장이 돌아가고 난 후, 차장을 불러,
“직원회식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봉투를 놓고 갔으니, 회식 한 번 합시다.” 하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차장이 내 앞에서 봉투를 뜯어보더니,
“이게 뭡니까?” 하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봉투 속에는 여자용 스카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공장 시설자금 거액을 지원해 주었으니 당연히 직원 회식을 하라는 뜻으로,
돈 봉투를 주는 것으로 지레 짐작한 내 양심이 속보인 셈이다.
평소 그러지 않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창피해죽겠다.
[현임종 칼럼] '보고 듣고 느낀대로'
출처 : 뉴스제주(https://www.newsjeju.net)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