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권주가' / 김길영

아즈방 2022. 6. 22. 12:47

산행 끝에 들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들국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언제 보아도 가을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 꽃이 국화다.

도시에선 좀체 보기 드문 그 향수어린 들국화가 오늘 불현 듯,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요로웠던 옛 시인들을 불러냈다.

 

서울 자하문성 밖에 살 때였다.

배움에 목마르던 학창시절, 김관식 시인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분의 집은 정자가 딸리고 서재까지 갖춰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였으나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문객들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저서의 서문을 받으러오는 인사도 있었으나 대부분 술을 대작하러 오는 이가 많았다.

 

가을이면 시인의 집 너른 텃밭엔 각종의 국화꽃이 국화축제를 방불케 했다.

들국화 꽃이야 지천으로 피어 있었고 여러 종류의 국화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밭고랑에서는 굵직한 무가 몸통을 키우는 모습도 넉넉하였고,

바람결에 풍기는 국화꽃 향기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뿜어내고 있었다.

 

시인은 자신이 공들여 가꾼 국화꽃 앞에서 손님맞이를 좋아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육모정 앞뜰에 자리가 펼쳐지고 어린 두 아들은 술 주전자를 번갈아 날랐다.

시큼털털한 막걸리에 손수 키운 국화꽃송이를 띄워 손을 대접하는 시인의 일상이,

내 눈엔 시(詩)처럼 보였다.

국화꽃 향기와 함께 문향을 나누는 시인의 삶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막걸리와 국화꽃은 가난한 글쟁이들에게로 가서 詩가 되고 밥이 되는 것 같았다.

하루같이 취기에 젖어 지내는 가난한 시인에게 산해진미의 술상이란 턱도 없는 일이다.

막걸리술잔에 안주라고는 국화꽃 한두 송이 띄우는 게 고작이었다.

국화꽃 떠다니는 술자리가 그리워 찾아오는 객들 또한 문단에서 쟁쟁한 문사들이었지만,

그들 역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글쟁이들이었다.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보름달 무렵엔 더 많은 문사들이 모였다.

그들의 입에선 즉흥으로 영시(英詩)가 읊어지고 달을 건지러 간 이백이 술잔을 들고 시를 읊었다.

나는 옛 화첩에서나 본 듯한 그 정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곁에서 훔쳐본 그들의 말씨는 연금술사 같았다.

행색으로 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귀한 언어들이 밤하늘별빛처럼 마당귀에 빛나고 있었다.

 

내 어릴 적,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다가 하나씩 빼먹던 맛,

약간 떫긴 해도 달콤한 맛이 감돌던 그런 맛.

곱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동서양의 풍류시어가 순료(醇醪)에 섞여 맛을 더했다.

그들의 입술에서 떨어진 낱말 하나하나는 책갈피 속에 넣어둔 마른 국화꽃 냄새가 났다.

 

겉만 번지르르한 잔치처럼 먹을 게 별로 없는 술상이었다.

그래도 가을이 깊어갈수록 시인의 집에는 문객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들 문사 중에 김관식 시인의 부인으로부터 미움을 샀던 시인이 있었다.

그분 역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시인이었다.

해맑은 웃음을 짓다가도 바보 같은 표정에 어눌한 말씨가 그 시인의 전부였다.

 

그분은 허구한 날 김관식 시인 집을 드나들었다.

육모정에 한번 틀어잡고 앉으면 당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 주전자가 바닥이 나도 안주로 띄울 국화꽃이 있으니 어디서든 술을 구해 와야 했다.

그분이 바로 시와 술에 빠져 일평생을 기인처럼 살다간 ‘귀천(歸天)’의 천상병(千祥炳) 시인이다.

 

천 시인은 태양의 흑점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았다.

추레한 몰골은 언제보아도 행려병자 같았다.

술에 취해 누우면 그대로 하늘이 이불이었고 땅이 베개였다.

바바리코트에 머릿기름을 바르고 멋을 부린 글쟁이들은 그분을 발견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천 시인은 명동의 이름 있는 다방 근처에서 끈질기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문사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몇 푼 손에 쥐면 자하문 성 밖의 국화꽃 시인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내 눈에 비친 천 시인은 국화꽃 주인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몸은 기가 빠져버렸고 술에 찌들어 낡아 허물어져가는 서까래처럼 쇠락해져 갔다.

 

김관식 시인과 이웃해서 살던 사람들이 오십여 가구쯤 되었다.

4.19와 5.16의 혼란기를 거치고 사회가 안정되자 도시정비계획이 세워졌다.

성 밑에 자리 잡은 동네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다.

십여 년을 함께한 끈적끈적한 정이 타의에 의해 끊기는 아픔이 있었다.

달빛 쏟아지는 성 아래 국화꽃과 막걸리와 시인들의 풍류축제를 옛 이야기로 묻어두고 떠나왔다.

 

반세기가 무심하게 흘러갔다.

두 시인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우연케도 산행 끝에 무더기로 핀 들국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하문성 밖의 시인들이 새삼 떠올랐겠는가.

내 젊은 날 보았던 그 아름다운 정경들은 무덤가의 잡초나 될 것이었다.

들국화 꽃향기가 나의 아릿한 기억을 되살려줬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영혼이 맑은 시인들이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내가 어찌 두 시인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려고 꿈이라도 꾸겠는가.

물관이 말라가는 깊은 가을 날, 새벽잠을 설칠 때가 많다.

꿈인지 생시인지, 자하문성 밖의 시인들이 자주 눈에 아른거린다.

공연히 망상만 번다하다.

 

이다음 저승에 들어 그 옛날처럼 두 시인을 뵙는 행운을 누리면 좋겠다.

막걸리를 짊어지고 가서 노란 국화꽃잎을 띄운 술잔을 들고 권주가를 부르리라.

자하문성 머리 위에 보름달이 떠서 더 운치 있었던 그날 밤처럼,

입술 언저리에 술 자국이 번진 채로 달을 향해 껄껄 웃어댈 시인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천상병 시인(좌) & 김관식 시인(우).

'🤍 文 學 > 隨筆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영부영하다가' / 김상립  (0) 2022.07.03
'목화꽃' / 도월화  (0) 2022.06.22
'돼지불알' / 목성균  (0) 2022.06.21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0) 2022.06.20
'양뀀집의 추억' / 이지원  (0)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