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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학' / 배영순

아즈방 2022. 6. 3. 18:58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데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 일반에서 ‘관계가 좋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곤 한다.
‘사이가 좋다’는 것,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는 간(間)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 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다.

우리의 통상적 개념으로는, ‘찰떡 궁합’과 같은 것을 이상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추호의 빈틈이나 거리가 없이 딱 붙어 다니는 것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사이가 없는 것이다.

물질의 분자구조를 보아도 그렇다.
아무리 치밀한 분자구조라 하더라도 틈새는 있다.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주의 별들도 그렇다.
붙어 있는 별이란 것은 없다,

태양계의 경우, 태양과 달과 지구가 각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태양계가 성립된다.
만약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지구와 달은 태양에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우주 허공으로 각기 사라져 버릴 것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기 때문에’ 태양계가 성립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관계의 비결이란 것, 관계의 미학은 ‘사이’에 있다.
그 점을 우리가 거듭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이상적인 것이다.
‘사이가 좋다는 것’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몫이 있다는 것,

각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여지를 둔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같이 토론을 하거나 또는 같이 행동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내 생각이 옳고 내 방식이 옳다고 한들, 내가 할 도리, 내가 할 바를 다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상대방이 내 생각에 동의 하는가 아닌가, 내 방식을 채택하는가 아닌가는 상대방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상대방의 몫이다.
내가 상대방의 몫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그 사람의 인생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비록 자식이라 해도 그렇다.
각자가 해야 할 몫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상대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내 방식을 따라주지 않더라도,
또 같이 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해야 할 몫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아름다운 관계이다.
정말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사람의 몫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쨌든 상대방이 나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내 방식이 관철되도록 하는 것은,
그렇게 ‘사이’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욕심 내 마음 내 기분대로 끌고 가고 싶은 망집, 헛된 집착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사이를 나쁘게 만들고 관계를 상하게 만든다.

그런 헛된 집착 때문에 자꾸 우리는 관계를 상하게 되고, 스스로도 분노하고 슬퍼지고,
또 해야 할 일을 자꾸 놓치게 된다.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다반사이고, 이런데서 자신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결국 상대방의 몫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주제넘은 욕심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배영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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