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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하천 - 병문천(屛門川)

아즈방 2022. 4. 30. 10:34

병문천(屛門川)

 

병문천(屛門川)은 하천 양쪽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병문천 하구에 해당하는 현재 병문하수펌프장 서쪽일대는 지금처럼 복개되기 전만 해도 병풍을 연상할 정도로 비교적

깊은 계곡을 이루었다.

조선 말엽 조련군의 집합장소였다는 데서 `병문내'라는 것이 차차 와전돼 `뱅문내'라 호칭했었다고도 한다.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는 '병문천은 제주읍 오등리에서 발원하여 제주읍 삼도리를 경유해 입해(入海)하고 밀물 때는 물이

나오다가 썰물 때면 마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82년 도내 준용하천(도 관리대상 하천, 현재 지방2급 하천)을 지정, 고시하면서 병문천의 길이를 12㎞로 정리했다.

그러나 이 길이는 해발1,530m 지경의 병문천 발원지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다.

국립공원 외곽지역 오라동(335번) 일대에서부터 하구 용담동까지만 가리키는 것으로 실제 병문천 길이와는 차이가 있다.

병문천은 해발 1,530m, 1,500m, 1,460m 지경 세 갈래에서 시작된다.

발원지 동남쪽 지경에 천미천을 발원시킨 `흙붉은오름'을 마주하고 있다.

병문천을 잉태한 세갈래 계곡은 해발 1,000m 부근에서 하나의 줄기로 합류해 본류를 이룬다.

해발 800m 일대에 발달된 구린굴을 통해 하천의 형성원인을 추적해 볼 수 있다.

하천 한복판 구린굴 입구는 천정이 무너져 내린 함몰지구가 완연하다.

지금도 누수에 의한 침식과 균열 현상으로 하천화가 진행되고 있다.

구린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류에서도 함몰지대로 추정되는 깊은 웅덩이가 10여곳 확인된다.

병문천이 하천화 되기 이전에는 천정이 있는 동굴지대라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다.

병문천은 관음사 야영장과 오등동을 지나 삼도동, 용담동 복개구간으로 이어진다.

병문천 복개는 탑동 공유수면 매립사업에 따른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사업으로 태동했다.

1986년말 탑동 매립 면허가 발부된 이후 계속돼온 면허에 대한 불법성 논란과 개발이익 환수문제가 1990년 병문천 복개와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 도민들은 (주)제주해양개발과 (주)범양건영이 추진한 탐동매립 사업을 환경파괴라며 반대했었고,

매립이 기정사실화 됐을 때는 매립한 땅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었다.

이 때 제주도당국과 제주시가 제시한 방안이 바로 병문천 복개사업이었다.

당시 제주도와 제주시가 이 사업을 제시한 이유는 병문천에 더러운 물이 흐르고 악취가 심하기 때문에 차라리 이를 덮어버리면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며, 복개한 부분을 도로와 주차장으로 활용하면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시의 수입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탑동문제해결범도민회는 매립 자체가 환경파괴였는데, 그 대가로 또 하나의 환경파괴를 제안한 꼴이라며 반대했었지만

묵살됐다.

이런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복개사업은 1993년 초부터 시작됐다.

사업구간은 병문천 하류에서 종합경기장 인근 서광로 오라교에 이르는 2,058m. 사업비는 2백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

탑동이익환수라는 거센 구호와 논쟁의 산물인 병문천 복개사업은 하천 일대 교통소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도심 주차난을

해소시키는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천의 원형을 잃어버림으로써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부끄러운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수천, 수만년에 걸쳐 형성된 병문천 하류의 멋스러움과 바위들은 사라졌고 그 위를 콘크리트가 덮어버렸다.

복개된 병문천 하류에는 더 이상 새들이 찾아와 지저귀지 않는다.

하천 바위 틈새로 피어나던 풀꽃과 비가 오면 개울을 이루던 모습도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이게 1990년대식 도시개발의 모습이었다.

 

 * 출처 : 한라일보 대하기획 `한라산학술대탐사' 제1부/ 생명의 근원, 하천과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