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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3 월 .

수필 - '봄의 교향악' / 유동종

아즈방 2025. 3. 24. 11:39

 

봄의 교향악 / 유동종

 

어쩜 겨울은 순순히 물러날 기세가 아닌 듯싶습니다.

지난 겨울 긴긴 날에 우리에게 많은 폭설과 혹한을 보여주고도 그냥 쉽게 물러나지

아니할 정도로 기력은 아직도 남아 있어 보입니다.

아니면 다가오는 봄이 긴긴 겨울의 꼬리에 기선을 밟힌 채,

칭얼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철새는 점점 빨리 돌아오는데, 

정작 봄은 천방지축 안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봄은 예전보다 일찍 다가오고 겨울은 선뜻 양보할 기력이 없어 보여 날씨의 기복이

너무 심한가 봅니다.

우리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보리밭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봄이 왔노라 느끼고 있으나, 

서양 사람들에게는 뻐꾸기의 노래를 봄의 전령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뻐꾸기 노래는 이른 봄 겨울잠을 깨우는 싱그러움보다는,

오히려 설익은 늦은 봄의 나른함을 우리에게 안겨 주기도 합니다.

 

엊그제 고창 선운사 근처에 사는 어릴 적 친구로부터 전화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이었습니다.

“여보게 친구야, 사월 중순이 지나면 선운사 동백도 꽃을 피우게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 와서 우리 같이 꽃 구경이나 하자구.

 자꾸 미루다 보면 고향의 꽃 구경하기도 힘들 거야. 세월이 아까워요.

 꼭 한 번 오라구. 이 친구야. “

 

어릴 적 자주 찾던 선운사 동백도 나이 들어서는 생각나는 고향의 꽃이 되었고,

반가운 친구는 전화를 걸어오며 고향소식으로 고향의 꽃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친구의 정든 목소리는 고향의 꽃잎처럼 나의 마음을 포근하게 적시고 있습니다.

일년이면 서너 번 전해오는 고향소식에 선운사 동백은 약방의 감초처럼 항상 끼어

들게 마련입니다.

어릴 적, 중학교 3학년 때 사월 하순의 어느 봄날, 

친구 서너 명과 사십 리 신작로 길을 걸으며 일박 이일 무전여행으로 찾았던,

천년 고찰 선운사, 그 때도 동백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오가는 길에 마을 사랑방에 들러 날 고구마로 끼니를 거르던 어릴 적의 추억이

봄이 되면 항상 추억으로 다가 옵니다.

그리고 수령이 수백 년이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안아보며 그 의젓함을 마음속에

담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해이던가,

이천 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부부는 오랜만에 친구의 초청으로 고향을 찾아 마음껏

봄의 향기에 젖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처럼 옛날로 돌아가 추억에 젖으며 세월을 거슬러가며 향수에 젖어보기도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 덕분에 그렇게도 귀하디 귀하다는 선운산 풍천장어도 싫도록 먹어

보았습니다.

그런 이후로는 고단한 삶에 젖어서 사느라,

고향은 마음으로 찾아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사월은 침묵했던 자연의 소리가 세상 밖으로 분출하는 시기라 하였습니다.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그리고 곡우가 차례로 지나가고 나면,

개구리도 마음을 펴고, 바위틈새 얼음이 녺아 내리고,

산천의 개울물의 졸졸 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산천은 이제 연둣빛 새싹들로 물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날개를 펴고 새끼 종달새도 깨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만물의 소생을 준비하느라,

오늘은 하루 종일 봄비가 조올 졸 내리고 있습니다.

 

봄은 영어로 “spring" 이라 하였습니다.

뛰어오른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역시 봄은 새싹이 솟고 새 생명이 활기차게 뛰어 오르는 계절입니다.

봄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하얀 목련 그리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암탉이 알을 품듯 봄 기운이 온 세상을 포근히 감싸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산책을 다녀 왔습니다.

기온이 영하를 겨우 벗어난 싸늘한 찬 공기를 마시며 걷는 아파트 단지 내 오솔길은

바람까지 곁들여, 계절의 흐름을 더욱 더디게 하고 있나 봅니다.

엊그제는 목련 두 그루가 꽃잎이 반쯤 열린 채 순수함으로 다가왔는데,

오늘에 이르러 찬 기온에 바람에 마음 문을 굳게 닫아버린 채,

웅크리고 매달린 모습이 애처로워 보입니다.

꽃의 만개의 시기는 단지 내에서조차 곳에 따라 몇 일간의 시차가 있어 보입니다.

봄과 가을은 역시 꽃의 계절이라 부를만한 계절인가 봅니다.

매년 이맘때면 전국 여러 곳에서 꽃의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꽃의 계절인 사월의 주인공은 벚꽃이 될 듯싶습니다.

 

벚꽃에 붙일 수 있는 감탄사를 떠올려 봅니다.

예쁘다, 환하다, "화려하다, 아기자기하다, 아름답다 등." 으로 다양합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벚꽃은 왕벚나무입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벚나무는 우리나라에만 16종이 있습니다.

왕벚나무, 올벚나무, 산벚나무, 개 벚나무, 산개버찌나무, 섬개벚나무, 귀룽나무

등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400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많은 벚나무 중에서도 왕벚나무가 많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잎이 나오기 전에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서 열린 왕벚꽃축제를 시작으로,

진해와 하동, 강릉 경포대, 수원 경기도청을 거처, 서울의 여의도 윤중로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봄의 바람이 한반도를 적시고 있습니다.

4월의 바람이 자연을 회오리치고 있습니다.

벚꽃의 바람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습니다.

벚꽃은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해서 일주일이면 활짝 피우며,

꽃이 필 때에는 한 번에 피지만, 떨어질 때는 한둘씩 흩날리듯 떨어져, 

바람이 불어대면 마치 雪花라도 나리는 듯 참으로 풍치가 있어 보입니다.

내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집에는 마당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었고,

그 우물 바로 옆에는 제법 커다란 벚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항상 사월 초가 되면 벚꽃이 만개하는데,

밤에는 벚꽃이 달빛과 어우러져 어렴풋한 뭉게구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쯤이면 초저녁에 아버님께서는 거나하게 약주를 잡수신 후,

마당 평상으로 우리 형제를 불러모으고, 삼국지 강의를 하시곤 하였습니다.

아버님은 한문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시고 독서를 즐기시는 분이어서,

이야기도 구수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불과 바람을 이용하여 승전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아버님께서는 더욱 신이 나서 말씀 하시고,

우리 형제는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도 아버님 기분에 묻혀버리곤 하였습니다.

 

벚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을 버찌라고 부릅니다.

참새들이 버찌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열매가 열리면 참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들어 재잘재잘 거리든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로 다가옵니다.

해마다 꽃이 피는 사월이 오면 지나간 추억들이 그리워집니다.

끝으로 어느 옛 시인의 봄에 관한 시 한 수로 마음을 달래봅니다.

 

盡日尋春 不見春

봄을 찾아 하루 종일 집을 나섰으나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鞋遍踏 嶺頭雲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속까지 헤맸으나     

       

歸來偶過 梅花臭

헛 탕만 치고 집에 돌아와 매화향기 따라가보니  

             

春在枝頭 己十分

그 봄은 집 마당의 매화 가지에 이미 나보다 먼저 와 있었네.  

 

유동종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선운산문학회 회원. 스페이스에세이문학회 회원. 

수필집 “길“ 공저 “힐링역에 내리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