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호가 가사를 짓고, 손목인이 작곡한 ‘짝사랑’은 고복수가 취입한 마지막 인기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뒤에 취입한 곡들도 있지만, 다른 곡들은 음반 판매량으로 보아 대중들의 인기를 크게 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30년대 중, 후반에 우리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박시춘, 이재호, 김해송과 같은 천재 작곡가들의 곡을
받은 김정구, 남인수, 백년설, 진방남, 고운봉 같은 신진 가수들이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같이 하는 주옥같은 명곡을
내놓음으로써, 고복수가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짝사랑’은 당시 꽃피워진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대표할만한 단조 트로트곡이다.
일제 식민시대의 트로트 곡들이 이별의 슬픔과 탄식, 타향살이의 설움과 망향, 희망 없는 인생사 탄식,방랑과 좌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 등을 말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탄식, 저항의식이 적절하게 억제된 시어로 깔려 있고, 대중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심정과 그 쓰라린 마음을 노래로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짝사랑’도 그러한 일제시대 트로트의 속성을 그대로 지닌 노래로서,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이치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서글픈 심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임은 고향을 떠나 떠돌고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나 사랑하는 임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통탄해 마지않는 잃어버린 나라였던 것이다.
당시의 2천만 민족 모두가 짝사랑하고 있던 잃어버린 나라를 박영호는 토속성 짙은 시어로 그려 내었고, 손목인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멜로디로 창작해 냈던 것이다.
으악새가 알려주는 이 서글픈 가을의 소식을 접하니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낭만과 꿈의 시간이 또는 나라를 빼앗기기
이전의 전통과 국권이 튼튼했던 조국의 건강한 모습이 새삼스럽게 가슴 깊이 사무쳐 온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그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 죽어가고 있던 나라의 운명과, 인권과 자유마저 짓밟히고 있던 동포의 처참한 신세를 상징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괴로운 심정을 나타내는 가슴 터질듯한 심상(心象)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무튼 일제 강점기의 조국의 상실 또는 한 사나이의 절망적인 실연을 상징화시킨 이 ‘짝사랑’은, 으악새라는 메타퍼로 은유되는 민초(民草)들의 우수(憂愁)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우수를 고복수는 선천적인 구성진 떨림과 탄식조의 목소리로 흐느껴 우는 듯 바깥으로 고요히 흘려 내리고 있다.
고복수의 ‘짝사랑’은 7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그것이 표현하고자 한 절망과 비련을 가슴 깊숙이 스며오게 한다.
이 ‘짝사랑’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에 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에 직면해 고독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참모들과 고뇌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즐겨 불렀던 18번으로 한때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가요이기도 하다.
으악새는 왜가리의 방언
'짝사랑'의 노래 말에 나오는'으악새'를 두고 그런 이름을 가진 새가 없고, 가을철에 우리나라의 들녘이나 산기슭에 희뿌옇게 활짝 피는 억새풀이라고 하면서, 억새풀이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가 슬피 들린다는것으로 해석했던 것이 대세였었는데, 근래에 와서 그 설이 뒤집혀졌다.
으악새를 줄여보면 악새 또는 왁새가 되는데, 왁새(또는 웍새)는 왜가리의 중부 지방 또는 관서 지방의 방언이라는 것이다.
황새목 백로과의 새인 왜가리는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새끼를 번식시키면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되면 남쪽 오스트레일리아 쪽으로 돌아가는 철새로서, 돌아갈 시기인 가을이 되면 '와-악 와-악(또는‘워-억 워-억)하고 구슬피 운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여름새이며 번식이 끝난 일부 무리는 중남부 지방에서 겨울을 나면서 텃새가 되기도 한다.
한국·중국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하며, 호반, 소택지, 논, 간석지 등에서 서식한다.
얕은 물속에서 물고기, 개구리, 가재 등을 잡아 먹으면서 교목의 꼭대기에 집을 만들며, 4∼7월 번식기에 집단으로 번식하는 새이다.
‘짝사랑’을 작사한 박영호는 이 노래에서 ‘으악새’ ‘뜸북새’ ‘조각달’ ‘들국화’ 등과 같이 주변에서 쉽게 대하는 자연적 소재와 계절의 변화를 사랑의 추억과 연계시켜 가을을 맞이하는 서글픈 심정을, ‘이즈러진 조각달’ ‘임자없는 들국화’ ‘서리맞은 짝사랑’등으로 형상화시키고, ‘출렁출렁’‘살랑살랑’ ‘휴우휴우’등과 같은 실감나는 시어로 구성하여, 누구나 공감이 갈 수 있는 노래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짝사랑'을 작사한 박영호.
‘짝사랑’의 작사자를 김능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대하는 대부분의 가요곡집에도 작사자가 김능인으로 표기되어 있다.
기존의 노래책에서 곡을 선별하여 편집한 우리들의‘한밤의 사진편지 독자 함께 걷기 노래책’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노래의 작사자는 엄연히 박영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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