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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音 樂/♤ 韓國歌謠 .

'황성옛터'(1928)

아즈방 2021. 12. 25. 12:02

荒城 옛터 (荒城) / 이애리수(李愛利秀)

 

***

 

느린 3박자의 리듬에 단음계로 작곡된 한국 최초의 가요곡.
1932년 최초의 취입레코드 라벨에 인쇄되었던 곡명은 <황성의 적(跡)>이었다.

영천출신의 시인 왕평(王平)이 노랫말을 짓고,

개성출신의 작곡가 전수린(全壽麟)이 곡을 붙이고,

배우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가 애잔하게 부른 '황성옛터'는 지금도 사랑받는

민족가요이다.

전수린이 1928년 고향 송도(松都)에서 고려의 옛 궁터를 보고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
전수린의 첫 작품으로 신파극단 취성좌(聚聖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불러 크게 유행하였다.

서울 단성사에서 이애리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관중들은 열광했고, 

노래는 순식간에 장안에 퍼져나갔다.

日警은 “중지하라!”악을 썼지만, '32년도 ‘황성옛터’ 는 레코드에 담겨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남인수의 '황성옛터'

* 

*김희갑의 '황성옛터'

* 

*배 호의 '황성옛터'

* 

 

만월대(滿月臺)는 개성시 서북쪽 송악산의 남쪽 기슭인 송악동 부근에 위치한 고려 궁성과 황성, 즉 왕궁터이다.

원래는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인 희경전을 중심으로 한 여러 궁궐이 있던 대지를 말하는데, 총면적 125만여㎡에 궁성 면적은 약 39만㎡에 달한다.

궁성에는 궁궐들이 있었고 황성에는 고려의 중앙 관청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성 안에는 구정이라고 불리던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격구를 비롯한 체육경기도 하고 군사들의 열병식도 열렸다.

만월대는 처음에 보름달을 바라보는 누대라는 의미에서 망월대로 불렸는데,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망월대를 만월대로 부르게 되였으며,

점차 고려 왕궁터 전체를 통칭하는 대명사이자 지명으로 자리잡게 됐다.

고려 왕궁터를 만월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왕조 때부터라고 한다.

고려 왕조(918~1392)는 건국 이듬해인 919년 1월 현재의 철원에서 송악산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전신인 태봉국이 건설한 ‘발어참성’을 그대로 왕궁으로 이용하면서 만월대를 처음 건설했다.

건국 이후 940년까지는 수도를 서경(평양)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초기에는 만월대의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가, 고려 제4대 왕인 광종 12년(961년) 수영궁궐도감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궁궐공사를 벌였다.

919년 건설된 이후 고려 말기인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전부 불탈 때까지 만월대는 470여 년 동안 고려왕조의 왕궁으로 이용되다가 이후 지금까지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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