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기(俗離山記) / 목성균
1. 正二品松
속리산(俗離山).
속세와 떨어진 산이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다 옛날 말이다.
지금의 속리산 자락은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이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와 흡사하다.
세속을 떠난 산아래 잡다한 현대문화가 다 밀려 와서 혼탁한 세속의 먼지를 마구 털어놔도, 산은 미간을 찡그리지도 않고 한결 같이 탈속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꼬불꼬불한 말티재를 넘어 가면 산 어귀에 정이품(正二品) 벼슬을 한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이 600년 가량 되었다는 나무의 기품이 하도 높아 보여서,
과연 정이품 벼슬에 합당한 나무구나 싶다.
그런데, 정이품 벼슬을 제수 받은 경위가 세조 임금의 속리산 복천암 행어(行御)의 논공행상이라는 게 아무래도 마땅치 않다.
나는 나무가 임금의 연이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번쩍 추켜들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나무가 권세의 적소(適所)를 아는 간지(奸智)의 모습이라면 세상 인심이려니 하고 깊이 생각 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 소나무의 모습은 존속을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찬탈한 분의 가는 길을 열어주려고, 가지를 번쩍 추켜들었을 만치 세속적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깊은 산골 영월 땅,
서강 건너 어두운 숲에 둘러싸인 청령포에 유폐된 어린 왕을 생각해 보라!
종단에는 삼굿같이 찌는 방에서 사약 사발을 받아 들었을 17살 꽃 같은 소년의 심정을 생각하면, 나는 명치에 울혈(鬱血)이 생길 지경이다.
왜 왕가의 적장자로 태어났는가.
청령포 여울물소리 깃들인 캄캄한 배갯머리에 용안을 묻고 서럽게 울었을 어린 임금을 생각하면, 나는 세조 임금이 추악한 인간의 표본으로 생각 든다.
나무가 저만한 풍모일 때는 깊은 덕과 강직한 지조를 지녔음에 틀림이 없다.
오히려 가지를 더 늘어트려 세조의 행어(行御)를 가로막고,
사육신 같은 기개로 왕위 찬탈을 일갈 하였을지언정 행어에 불편이 없도록 가지를 번쩍 추켜들었을 리는 없다.
허기는 그래가지고 서야 저 소나무가 지금 저렇게 살아 남아 있지도 못하고 사육신처럼 베어졌으리라.
그러나 소나무는 분명히 고아한 모습으로 저렇게 서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세조 임금은 자기 죄에 가위가 눌려 감히 저 나무 밑으로 지나가지도 못하고, 말 못하는 나무라고 욕된 임금의 권위를 높이는데 이용한 것인지 모른다.
정이품송의 유래는 세조실록에 기술되어 있지 않다.
사관(史官)의 조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행어를 배행한 어느 간신배이거나 지방수령이 권세에 아첨을 하기 위해서 말을 지어가지고 순박무구한 백성들을 현혹시킨 것이 분명하다.
정이품송은 어느 욕된 영광의 노경처럼 ‘나는 왜 죽지도 않는지 몰라’하듯 잔병치레를 했었다.
그래서 산림관계 공무원들이 애를 태우며 온갖 보약을 대령한다, 외과수술을 한다, 솔잎혹파리 방충망을 씌운다, 하며 정성을 들인 덕에 나무는 다시 늠름한 모습을 되찾았다.
정이품송은 벼슬 때문에 마음대로 죽기도 어려운 몸이다.
세조 임금의 연이 걸릴까 싶어서 추켜들었다고 전해지는 가지일까?
속리산으로 들어가면서 나무의 왼쪽 아래 장군의 팔처럼 뻗은 역지(力枝) 하나가 중간쯤에서 절단되어있다.
병이 들어서 수술을 받은 것이다.
마치 철갑을 두른 듯한 그 위용의 나무가 역지를 중간에서 잘린 채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세조 임금의 왕위 찬탈을 막다가, 역모의 주체세력에 팔이 잘린 채 기개를 굴함 없던 충신 김종서의 모습 같아 보였다.
2. 立冬의 山
세심정(洗心亭)에서부터 문장대의 산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 등산동호인들은 일단 이곳에 모여 커피를 한잔씩하며 마음을 씻고 산에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철잃은 경망스러운 벌이 날아와서 무슨 억하심정으로 커피 잔을 든,
내 오른손 무명지를 쏘았다.
그리고도 직성이 덜 풀렸는지 침을 손가락 끝에 박고 있는 것이다.
나는 놀래서 커피 잔을 집어던지고 왼손으로 벌을 떨어 버렸다.
벌은 내 손에 얻어맞고 땅바닥에 떨어져 혼절하고 말았다.
나는 그 벌을 발로 밟지는 않았지만 언 땅에 떨어진 벌은 죽었을 것이 틀림없다.
손가락 끝이 아리고 붓는다.
일행의 어느 여성분이 벌침은 일부러 돈을 주고도 맞는 건강 침술의 한 방법이라며, 내 손가락에 벌이 자의로 침을 놓은 것은 그 벌이 목 선생의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전생에 어떤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이라며, 거피 값을 날더러 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커피 값은 기꺼이 내가 냈다.
그럼, 나는 저 벌의 시신을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마음에 혼란이 생겼다.
산은 사계의 마음을 달리 열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신록의 봄 산,
폭염을 식혀 주는 은총 같은 깊은 그늘의 여름 산,
찬란한 죽음의 가을 산,
고즈넉하게 마음을 닫는 이 입동 무렵의 산,
그 모든 산의 모습은 산행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전이되어, 사람을 산이 되게 한다.
나는 사계의 산을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입동의 산이 더욱 좋다.
나목의 숲, 결코 쓸쓸하지 않은 그 고즈넉함이 내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산이 베풀어주었다.
산은 내 삶을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좌절했을 때 말없이 격려를 해 줄 뿐이었다.
소년기의 내가 입동의 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해 놓고 땀을 식힐 때,
산은 우리 할머니처럼 그윽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마음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우리 집의 머슴을 따라서 그 먼 산까지도 어린 짐승처럼 힘겨워 하며 따라다녔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어 일가를 이루고 산림공무원이 되어서 산과 더불어 살아 왔다.
자원의 이용과 국토의 보전이라는 숲의 이율배반적인 존재가치를 합리화하는 공무원의 직무는, 의외로 상식을 바로 세우는 의지가 필요했다.
산은 숲을 이루고 있을 때 덕이 있다.
헐벗은 산은 난폭하다.
숲은 그늘을 주고, 물을 주고, 산소를 주지만,
헐벗은 산은 한해와 수해를 입힌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숲을 수탈했다.
숲은 부와 문화의 척도로서 국가의 신인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숲을 보존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원이기 때문이다.
임산물을 채취해서 산업용재로 이용해야한다.
숲의 이용과 보존의 판단은 객관적 상식이 통하는 기준에서 결정할 문제지만,
그 기준은 사람의 편견에 좌우되기 쉽다.
직업적인 신념 없이는 편견에 흔들린다.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입동의 산 속에 혼자 앉아 있으면 산이 말했다.
“나는 자네를 믿네, 나무를 베고 안 베고를 가지고 나는 자네를 탓하지 않겠어.
어차피 인간의 판단은 고독하고 시행은 착오가 따르게 마련이니까.
허지만 분명한 것은 자네의 양심의 문제지---.”
산은 나를 그렇게 격려했으나 산의 격려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3. 문장대에 올라서
문장대는 속리산 줄기의 말잔등 같이 생긴 산등성이에 우뚝한 암석이다.
멀리서 보면 끼끗하고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마치 책상 앞에 굳건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서방님의 준수한 이마 전 같다.
옛날에 풍류를 즐기는 한 선비가 이곳에 올라 문장대를 바라보고 욕심을 한번 부려 보았을까.
두루마기와 갓과 괴나리봇짐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짚신에 단단히 신들메를 하고, 지금의 산악인들처럼 암벽 타기를 해서 문장대를 올랐을 광경을 그려보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
지금은 문장대 꼭대기에 오르는 철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풍류를 모르는 세속잡배까지 서방님의 상투 꼭대기에 거침없이 올라갈 수 있다.
하물며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까지 올라가 있다.
바위 난간에는 추락방지용 철책까지 둘러 처 놓아서 어린이나 노약자가 떨어질 염려도 없다.
잘해 놓은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굳이 알아야 할 일도 아니므로 나도 전망대에 오르듯 문장대에 올랐다.
그래도 문장대는 살아 세 번을 올라 보아야 죽어서 극락왕생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성형 수술한 것처럼 세속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무튼 조망의 절경이 속세에 찌든 마음을 깨끗이 털어 준다.
과연 살아 세 번 문장대에 오르면 탈속의 경지에 이를 것 같아서 무아의 지경에 목이 메인다.
설핏한 햇살에 중중첩첩이 이어 달려가는 산세들,
소백산맥의 본맥이 일목요연하게 바라보인다.
소위 말하는 백두대간이다.
겨울 산등성이에 나목들이 역광을 받고 늘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달리는 준마의 갈기가 곧추 서 있는 것 같다.
산맥은 동북에서 달려와서 서남으로 달려간다.
산등성이의 겨울나무들이 마치 성난 말의 일어선 갈기 같다.
가까이 있는 산은 뒤쳐진 준마가 힘차게 앞선 말을 추월하려는 듯,
갈기를 곧추세우고 내닫는 기상이고,
저만큼 달려간 산은 갈기를 뉘어 가며 서서히 걸음을 늦추는 형상이고,
아득히 달려간 산은 갈기를 아주 뉘인 채 투레질을 하며 가쁜 숨을 고르는 형상이다.
그리고 더 아득히 달려간 산은 드디어 시야 밖에 주저앉아 눈을 지긋이 감고 잠드는 듯 하다.
그렇게 산은 늘어서서 맥을 이루고 반도의 끝까지 달려간다.
문득, 이념의 재갈을 물고 시린 발을 털며 눈 쌓인 이 산등성이를 줄줄이 이어 남하했을, 동란기의 젊은 빨치산들을 생각해 본다.
지금 저 산맥 어디쯤 이념의 최면에 걸려 아까운 젊음을 초개와 같이 버린 고혼들이, 바람소리처럼 울며 떠돌까.
우리는 저 아래 저녁 빛 자욱한 세상을 향해서 산그늘을 밟고 문장대를 내려왔다.
목성균(睦誠均 . 1938~2004)
1938년 충북 괴산 연풍, 소백산맥 자락에서 태어남
1959년 청주상고 학도주보 주최 전국학생문예공모에서 고등부 산문에 1등으로 입상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다음 학기에 등록을 하지 못함
1964년 군대생활 중 결혼함
1968년 산림직 국가공무원 임용.
25년 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중에서 조림사업을 하며 보냄
1993년 퇴직 후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 입학.
중앙 시조 월말 장원, <월간 에세이> 초회 추천,
관광공사의 관광수필 공모 최우수상 수상
1995년 월간 <수필문학>에 의해 '속리산기'로 추천 완료 및 등단
2003년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 출판(하서출판사)
2003년 4월 '명태에 관한 추억'이 문예진흥원에 의해 2003년도 우수문학작품집에 선정됨
2004년 3월 한국수필문학진흥회와 에세이문학사에서 주최한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및 한국수필문학작가회 이사
2004년 5월 타계
2004년 11월 유고집 '생명' 출판(수필과 비평사)
2010년 4월 선집 '행복한 고구마' 출판(선우미디어)
2010년 6월 선집 '돼지불알' 출판(좋은수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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