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가 맞을까 '아까시'가 맞을까
피천득 선생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던 5월이 되면, 신발 밑창에 닿는 흙의 느낌이 한결 푹신해지고 초록 이파리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탄성이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달큼한 향기가 코끝으로 날아드는데 이팝나무, 라일락, 아카시아입니다.
특히 아카시아에는 유독 연인들의 추억이 많습니다.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습니다.
가는 줄기를 톡 꺾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먼저 이파리를 한 개씩 떼어내고 마침내 줄기만 먼저 남은 사람이 이기는 거지요.
또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린 아카시아꽃을 튀겨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 할머니는 아카시아를 자꾸만 ‘아까시’라고 하셨습니다.
어감이 일본말 같아서 일제의 잔재라고 가벼이 여겼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가 맞았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아프리카처럼 더운 열대지방에서 자라고,
기린이나 코끼리가 그 잎을 즐겨 먹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자랄 수 없는 나무지요. 꽃도 노란색이라서 아까시 나무의 하얀 꽃과 전혀 다릅니다.
아까시 나무의 학명은 ‘Robinia pseudo-acacia L.’,
종명에 들어간 ‘슈도(pseudo)’는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으로,
아카시아 나무와 잎이 나는 방식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생물의 학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가 18세기에 분류하고 명명한 후에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것으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데, 우리는 아까시를 계속 아카시아로 부르고 있으니 이 규약을 어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까시 나무를 아카시아 나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1900년대 초 일본이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까시 나무를 처음 들여왔습니다.
그때 이름을 잘못 알고 아카시아 나무라 불렀는데,
아마도 ‘가짜 아카시아(pseudo-acacia)’에서 ‘가짜(pseudo)’를 빼고 부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시 나무의 굴욕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은근한 미움을 받았는데,
일본이 우리 산림을 훼손하고 땅을 버리게 하려고 일부러 아까시 나무만 골라 심었다는 이야기가 단단히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아까시 나무를 심은 이유는 일부러 땅을 버리게 하려 했다기보다, 우리 산을 수탈하느라 소나무를 마구 베는 바람에 산사태가 우려되자 응급복구용으로 들여온 것입니다.
소나무가 아니라 아까시 나무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복원력과 왕성한 생명력 때문이었습니다.
아까시 나무는 뿌리 끝부분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용해서 공기 중의 질소를 끌어와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생존력도 왕성해서 산성화된 땅에도 금세 뿌리를 내립니다.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자라는 속도도 빠르지요.
해방 후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민둥산에 아까시 나무 심기를 권장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요긴한 쓰임새는 ‘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채취되는 꿀의 70퍼센트 이상을 아까시 나무에서 얻고 있어서,
우리나라 양봉산업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굳이 흠을 잡자면 다른 종과 경쟁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양한 종의 나무들이 있는 숲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고,
아까시 나무들이 뿌리 내린 땅에서는 참나무류처럼 햇볕이 조금만 있어도 잘 견디는 나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기 힘듭니다.
그래서 혹자는 아까시 나무를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뻗어가는 극성스러운 나무라고 흉을 보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그게 어디 아까시 나무의 잘못이고 흠일까요.
아까시 나무가 있는 숲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린 문제겠지요.
제 할 일을 넘치게 하는데도 미움을 많이 받는 가엾은 아까시 나무.
우선 이름부터 제대로 불러줘야 할 것 같습니다.
* 출처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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