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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막걸리 예찬' / 예외석

아즈방 2024. 7. 3. 16:17

 

막걸리 예찬 / 예외석

 

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상이 찌푸려질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인생의 작은 반려자로 생각할 만큼 애주가들도 있다.

기분 좋아서 한잔, 속상해도 한잔 하면서 술은 우리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호식품이 된지 오래다.

 

술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도(酒道)가 나오는데 이것도 나라마다 다 다르다.

같은 동양권에서도 주법이 틀린데,

일본의 경우 코딱지만한 잔에다 따라 감질나게 홀짝거린다.

그것도 잔이 비워지기 전에 술을 채우는 첨잔 주법이다.

중국에서는 상대에게 잔을 권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술잔이 비워지면 자작으로 따라 마신다.

한국의 주법은 참으로 넉넉하다 못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권하는 경향이 있다.

잔이 차면 일단 비워야 상대가 술을 따라준다.

그리고 건배를 하게 되면 주량에 관계없이 다 마셔야 예를 갖추는 것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 술잔을 들지 않으면 자기 잔으로 상대방의 술잔을 슬슬 밀면서,

눈을 부라리는 경우도 있다.

어디에서 그런 주법을 배웠을까.

참으로 고약하다.

 

요즘은 맥주에다 양주 또는 소주를 섞어 마시는 일명 폭탄주가 등장하여,

사람을 잡는 경우도 있다.

종류도 다양하여 "원자 폭탄주", "회오리주" 또는"뿅가리주", "타이타닉주"등,

이름도 요상한 것들이 있다.

물론 그 제조법도 여러 가지다.

마시고나면 거의 인사불성이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최초에 성질 급한 군인들이 만들어 먹었다는 유래가 있다.

술을 마신 후 나타나는 행동유형도 다양하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꾸벅꾸벅 석고대죄(?)를 하는 사람이 있고,

공연히 남에게 시비를 거는 이도 있다.

속에서 치미는 화기를 주체 못해 흥분하다가 슬프게 우는 이도 있다.

1차에서 만족을 못하고 2차, 3차를 전전하다 자정을 훌쩍 넘기고,

거리를 배회하는 불쌍한 중생도 있다.

나도 예전에는 두주불사(斗酒不辭)형으로,

자정을 넘겨 거리를 헤매는 유형이었다가 요즘은 방석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대개는 1차에서 마무리를 하지만,

정 아쉬우면 조용한 술집을 찾아 간단히 즐기는 편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만 술을 즐기는 풍류한(風流漢)측에 끼어보려고 노력중이다.

그것도 자정을 넘기면 견디지 못하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가끔은 맥주나 소주 또는 양주, 정종 등 다양하게 맛을 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은 막걸리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나의 생긴 모습도 막걸리타입이라고 한다.

아무리 이미지 관리를 하려해도 막걸리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심심풀이로 음료수처럼 마시는 술이니 오죽하랴.

 

술을 어릴 적에 좀 일찍 배웠는데,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할아버지 심부를 다닐 때 주전자에서 조금씩 홀짝거리며 맛을 익혔다.

중학교 다닐 무렵엔 본격적으로 숨어서 막걸리를 마셨고,

고등학생 때에는 술로 인해 부모님의 속께나 썩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첫인사가 “야, 막걸리 온다.”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묻는 질문이 “요즘도 막걸리 많이 마시냐?”고 한다.

이제 좀 스타일 바꾸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마산에서 부산까지 통학을 했었는데,

강의 끝나면 꼭 대폿집에 들러서 한잔씩 먹고 차에 올랐다.

마산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타면 통학하던 여학생들이 참 많았었다.

그때만 해도 내 얼굴이 동안(童顔)이라서,

여학생들이 공연히 옆자리에 앉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트림을 ‘꺼억’ 내뱉으면, 막걸리에 쉰 김치냄새까지 함께 올라오니,

질색을 하고 달아나 버렸다.

 

막걸리가 왜 그렇게 좋은가 하면 그 독특한 향기가 사람을 진저리치게 한다.

술 익는 구수하고 알싸한 냄새를 맡으면 마치 소가 여물 삶는 냄새에 흥분하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막걸리를 즐겨 마시면 장이 튼튼해지고 변비가 없어진다.

특히 산행 뒤에 막걸리 한잔 하고나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그래서일까 오래전 이사를 와서 정착한 곳이 하필이면 막걸리 양조장 앞이다.

아마도 떨어질 수 없는 무슨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으로 올라간다.

올라갈 때 언제나 막걸리는 필수품처럼 꼭 챙긴다.

산에 가면 즐기는 시간이 있다.

딱 10초다.

천천히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 발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옷은 흥건히 땀에 젖는다.

얼굴에서는 빗물처럼 줄줄 흐른다.

그래도 산에 오르며 이런 저런 생각의 고리들을 하나씩 떨쳐버리게 되니,

마음은 편안하다.

정상에 올라가면 가장 바람이 잘 불고 탁 트인 장소를 골라서 엉덩이를 붙인다.

숨을 가다듬고 배낭속의 막걸리를 꺼내 한잔 천천히 털어 넣는다.

“꿀떡꿀떡” 목울대의 막걸리 넘어가는 소리를 음미하고,

시원하게 "크윽" 트림을 뱉어낸다.

멀리 바다를 쳐다보면 "으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10초가 가장 즐겁다.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 황홀한 순간을 음미하고 천천히 여유를 즐긴다.

대화가 통하는 동행자가 있으면 세상사의 묵은 찌꺼기를 쓰레기처럼 다 털어버린다.

 

나는 막걸리가 좋고 산이 좋다.

뭐가 그리 좋은지 나이가 들어서도 산을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산에 오를 것이다.

성격이 좀 싹싹하지를 못하고 과묵한 편이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지만,

한번 친해진 사람들은 참 오래 가는 편이다.

친구가 그립다.

뚝배기처럼 좀 투박해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

 

먼 훗날 노년의 꿈이 있다면 양지바른 언덕 위에 흙으로 집을 짓고,

커다란 항아리를 몇 개 장만하여 동이마다 갖가지 술을 담가놓고 싶다.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밤새워 이바구를 하고,

뜨끈한 아랫목에 몸 지진 후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잘 가게 친구, 또 놀러 오시게”하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고 싶다.

막걸리를 마시며 나는 늘 그런 행복한 노년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