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관한 추억 / 목 성 균
커피 잔을 들고 그윽하게 말하는 안성기의 커피 시에프 대사를 나는 실감하지 못한다.
커피의 참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의 참 맛을 모르는 것은 물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커피문화의 무뢰한이다.
그러면서 하루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신다.
물론 인스턴트 커피다.
카페인 중독증상인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Heart or Coffee‘는 아라비카종 마일드급 원두를 정성껏 볶아서(焙煎) 갈은 미세한 커피
분말을,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해 낸 레귤러 커피라고 한다.
그 뛰어난 커피 향은 유럽 문화인들의 취향에 따라서 발전해 온 것이다.
안성기의 시에프 연기가 유럽문화인의 취향을 다 표현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 표정이 커피문화의 감응도 같아 보이긴 한다.
‘음-. 이 맛-.’
그 소리는 미각과 후각이 놀랜 나머지 본능적으로 울리는 소리로서 커피문화의 척도일 것이다.
그 소리는 안성기 같은 명배우나, 고은(高銀) 같은 원로시인이나, 운보(雲甫) 같은 노화백이,
커피 잔을 들고 창작의 여가를 즐기며 해야 걸맞는 소리다.
밭 가 그늘에 앉아서 막걸리를 한 대접 들이키고 ’어- 시원타-.‘ 하던 농부가,
시골 다방에 앉아서 커피 잔을 들고 레지 앞에서 커피 맛의 달인 인체 ’음-, 이 맛-.‘ 그러면,
워리가 방귀 뀌는 소리처럼 우스울 것이다.
또 모리배하고 정치인이 호텔 커피숍에 마주앉아 비리의 눈맞춤을 하며 그런 소리를 하면,
가증스러운 나머지 귀때기 맞기 안성맞춤이다.
안성기가 ‘음-. 이 맛-.’ 할 정도의 커피는 다방에서 천 몇 백 원을 주고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아님은
물론이다.
고급카페나 호텔 커피숍 같은데서 기 만원을 줘야 마실 수 있다.
커피의 생산, 가공, 추출 등 여러 단계의 숙련된 손길을 거쳐서 비로소 만들어진 맛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커피 값은 고하간에 나도 문화인 반열에 서 있는 수필가인 만치 상식을 쌓기 위해서라도,
그 커피를 한 잔쯤은 안성기처럼 그윽하게 마셔 볼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중국집에 짬뽕 먹으러 가듯 혼자 쉽게 사먹으러 갈 수도 없고 해서 ‘제갈 공명’처럼 그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그 기회가 왔다.
서울 사는 고향친구 혼사에 간 적이 있다.
강남의 어느 별 다섯 개 짜리 관광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피로연이 끝나고 로비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향우들을 바다모래장사를 해서 돈 좀 번 서울친구가,
그 호텔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대개 고향 연풍의 중늙은이들이다.
호텔커피숍의 푹신한 소파에 푹 파묻혀 앉아 있는 촌닭들이 횃대가 아니라 자리가 불편한지,
애들처럼 좌불안석이다.
그 때 예쁜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친구가 메뉴판을 보면서 물었다.
“무엇으로 할까?”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네 맘대로 해.’ 그런 뜻일 것이다.
고향 주막에서는 ‘여기 닭똥집 한 접시하고 막걸리 한 주전자 -.’
그리 당당하던 태도가 촌닭 관청에 잡아다 놓은 꼴이었다.
“나는 에스프레소로 내린 레귤러로주고, 다른 분들은 카페오레로-.”
커피의 맛은 다름 아닌 향기가 좌우한다.
내가 안성기의 시에프 대사 같은 감탄을 할 수 있을 만치 "Heart or Coffee" 맛을 감식해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커피 향의 진수를 알라면 레귤러라야지 밀크커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두 레귤러로-” 그랬더니,
“엇쭈 글 쓰는 문화인이다, 그 말이지” 친구가 가소롭다는 듯이 그러는 것이다.
“당연하지 바다모래장수보다야 수필가가 문화인이지-.”
그래서 ‘Heart or Coffee" 맛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레귤러커피는 안 마신다.
내 후각이 편협해서 미세한 커피 향의 밑바닥까지 다 느낄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중 마빡(이마의 충청도 사투리) 씻은 물처럼 싱겁기 짝이 없어서 싫다.
내 커피 입맛은 오로지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해 있어서 감히 환상적인 정수의 커피 맛을 미처 음미도
해보지 않고, 지레 놀랜 대원군이 외래문화를 침략자처럼 완강히 배척하듯 거부한 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내 입맛에는 안 맞았다.
내가 애용하는 좀 태운 숭늉 같은 씁쓰름한 그 인스턴트 커피 맛의 실상이 로부스타종 원두의 맛이라고
한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보다 카페인 함량이 많고, 쓴맛이 강하고, 향이 부족해서,
스트레이트 커피를 만들기에는 적합치 않지만, 경제적 이점이 있어서 인스턴트 커피의 주원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커피라도 출신성분이 그렇게 상하(上下)로 구분되는데 나는 하급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하긴 커피뿐이랴, 나는 애당초 상류사회는 모르고 또 알고 싶지도 않다.
아버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종(種)이 낮아서 그런지 나는 현 위치에 만족한다.
그러나 나의 세계에는 그대로의 행복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인스턴트 커피 잔을 들고 ‘음-, 이 맛-.’ 하면 안성기가 보고 그런가 보다 하지,
그 커피의 출신 성분이 아라비카냐, 로부스타냐고 따질 것이며,
따진다 한들 내가 ‘음-, 이 맛-.’ 하면 그런 거지 자기가 무슨 권리로 내 정체성을 왈가왈부할 것인가.
내 커피 음용 취향이 후각을 제쳐두고 미각에 국한 된 것이라 격이 좀 낮다한들,
‘나물 먹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이 아니 만족한가!’ 말도 못 들어 보았는가.
행복의 조건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커피 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만치 커피 향을 일찍 알고, 그 커피 향에 깊은 약소민족의 감상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종전이 되고 내가 중학교를 간 해 봄, 집집마다 구황(救荒) 물품으로 미군(美軍)의 C. Ration이 배급되었다.
가정실습으로 집에 다녀가는 내게 아버지께서 정방형 박스를 하나 새끼줄로 멜빵을 해서 짊어지워 주시며,
“전방(廛房)에 팔아서 용돈에 보태 쓰거라.” 하시는 것이었다.
당시 어린 나는 그 박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짊어지워 주시는 대로 지고 집을 나섰다.
나는 애당초 그 물건을 팔아서 용돈에 보태 쓸 생각은 없었다.
막강한 미군들이 먹고 싸우는 야전식량 박스, 알라딘의 요술 램프만 같은 그 상자를 해체해서 내용물을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뿐이다.
지름티고개 못미처 으슥한 무덤 가에 주저앉아서 좀 떨리는 손으로 박스를 뜯었다.
그 안에서 궁핍한 전후의 소년을 놀라게 하고도 남을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통조림, 비스킷, 카멜담배, 초콜릿, 껌 등등-.
행군하는 미군을 따라가며 얼굴이 노란 헐벗은 이 땅의 소년들이 얼마나 갈망했던 물건인가.
‘헤이-, 초콜릿 기브 미-. 껌 기브 미-.’
그 물건들이 박스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나는 분복(分福)을 뺏길 것 같아서 얼른 박스에다가 물건들을 되로 주워담았다.
그리고 비스킷 한 봉을 뜯어서 먹었다.
그리고 초콜릿도 한 개 뜯어먹었다.
혓바닥까지 녹아서 목구멍을 넘어간 것 아닌가 싶은 맛이었다.
깡통을 딸까 말까 망설이다가 참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작은 봉지가 하나 있었다.
안 뜯고 배길 수가 없었다.
봉지를 뜯었더니 속에 갈색분말이 들어 있었다.
미군 주둔지 근처의 쓰레기장을 뒤져본 경험에 의해서 C Ration 박스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대강
짐작이 갔으나 그 갈색 분말은 알 수가 없었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약간 쓰고 구수한 냄새가 말할 수 없는 친화력으로 내 코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참을 수 없는 마음으로 분말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앗-. 써!’ 구절초 달인 물은 거기 대면 오히려 덜 쓴 턱이다.
그래도 뱉지는 않았다.
분명히 먹는 물건이고, 돈이 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분말은 입천장에 달라붙어서 응고되었다.
나는 그 쓴 물건을 다 녹여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뒷맛이 싫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건 인스턴트 커피였다.
정신이 맑아졌다.
골짜기의 무논에서 첨벙거리며 농부들이 논을 삶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논도 바라보였다. 아버지가 논을 삶고 계셨다.
커피를 마실 때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인들 그 물건의 내용물이 얼마나 궁금했으랴.
등잔불 아래서 그 물건을 놓고 뜯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돈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못 뜯어보시고 내게
주신 것이다.
생각하면 아버지의 참을성이 국가의 형편처럼 슬퍼서 커피 맛에 목이 메는 것이다.
대개 문명은 쉽게 들어오지만 그에 따른 문화는 더디게 따라온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도 문화가 있다.
집기(什器)며 태도며 아마도 안성기 시에프 장면같이 연출하면 별 무리 없는 커피 마시는 에티켓이 연출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커피 마시는 가장 훌륭한 예절을 본 적이 있다.
5 .16 군사혁명이 나고 얼마 안 되어서 혁명 1등 공신의 한사람인 육군대령이 깊은 산골을 찾아왔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앰프시설과 책을 군 트럭에 싣고 왔다.
낙후된 산협마을의 삶을 고무해 보자는 것이었던 듯하다.
‘잘 살아 보세’의 기초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일체의 민폐는 안 끼치도록 사전조치 하라는 중앙의 시달을 받고 군청 직원이 먼저 와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손님에게 차 한잔은 대접해야 사람 사는 곳의 인심 아니냐는 생각에서,
어렵사리 인스턴트 커피는 준비해 두었다.
동네서 제일 큰 방인 우리 당고모 댁 잠실(蠶室)에 입추의 여지가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내 아버지가 그 육군 대령에게 동네 사는 형편을 브리핑을 하고,
육군 대령은 혁명이념과 반드시 잘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불타는 마음으로 피력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커피 타임이 되었다.
커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지만,
당시 그 커피는 당고모 댁 안 부엌에 동네 똑똑하다는 새댁들은 다 모여서 갑론을박 논쟁 끝에 가까스로
만들어 진 것만은 분명하다.
모르긴 해도 동네 모모 한 남자들이 큰 도시에 나가서 커피를 한 두 잔쯤은 마셔 보았겠지만,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없다.
그래도 도시 출입이 제일 잦은 우리아버지가 안 부엌에 불려 가서 커피 맛을 보기에 이르렀는데,
충주나 청주 다방(당시 다방은 지금 커피전문점 보다 귀했다)에서 마셔 본 커피 맛은 아니었든지,
체머리를 설레설레 흔드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일뿐이었다.
당시 나도 재고종 형수가 귀한 거라고 뒤꼍으로 은밀히 불러서 주는 커피를 마셔 본 바에 의하면,
일단 커피를 아낌없이 진하게 타고 맛이 쓰자 분분한 의논에 따라서 설탕과 프림을 얼마나 탔는지,
차가 아니라 농축액이었다.
나는 혁명 주체의 한 분인 생사여탈의 서슬 퍼런 육군대령이 그 커피를 마시는 태도를 지켜보았다.
산협마을에 무슨 커피 잔이 있으랴.
다행이 맥주 잔은 있어서 거기에 그 고약한 맛의 농축액을 찰찰 넘치게 따라서 소반에 받혀서 올렸다.
기타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 잔에 마셨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게 마시는,
커피 마시는 모범된 예절을 나는 그 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이 한 일이다.
어떻게 그 고약한 커피맛을 감쪽같이 숨기고 그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맥주 잔의 커피를 남김 없이
다 마실 수 있었을까.
커피에 대한 무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 인내심의 연출이었을 것이다.
안성기의 시에프는 시에프일 뿐이다.
상업적 이미지 연출에 불과하지만,
그 육군대령의 커피 마시는 모습은 엄숙한 인간의 예의를 표한 휴머니즘의 이미지 연출이었다.
그와 같은 인격이 오늘날 그나마 우리의 삶을 만불시대로 끌어올려 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육군대령의 고약한 맛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이 커피 마시는 예절 운운한다는 것은
생활의 여유가 빚은 가당치 않은 사치이며, 교만이며, 커피문화의 오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분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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