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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냉가슴' / 이희승

아즈방 2022. 1. 26. 17:02

 

말하기 좋다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전해 오는 옛 시조로서 누구의 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을 삼가야 한다는 교훈조로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는 속담대로 생각한다면, 당치도 않는 작품이요,

‘문 바른 집은 써도 입 바른 사람은 못 쓴다’든지,

‘수구여병(守口如甁 ;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아 두듯함)’란 격언 편으로 본다면,

인생 처세의 진체(眞諦; 깨달음에 관한 진리)를 때려 맞힌 훌륭한 옥조(玉條)가 아닐 수 없다.

벌써 7년 전이나 된다.

수필집을 엮어서 책자로 발행할 적에 그 이름을 《벙어리 냉가슴》이라고 붙인 일이 있다.

그랬더니, 몇몇 친구로부터 무슨 이유로 그런 제명을 붙였느냐,

또 그렇게 책 이름을 붙였으면 그런 제호로 쓴 한 편의 글이 이 수필집 속에 끼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에 제명의 내력을 밝히어 두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런 물음에 대하여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지,

거기에 어떤 내력이랄지 이유랄 것이 있지 않다고 대답해 두었었다.

그러나 이런 이름에 전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다면, 이름을 붙인다는 자체가 넌센스 중에도 넌센스일 것이다.

필자의 나이 많지는 못 하지만, 일생 동안 파란 곡절이 많은 세상을 살아왔다.

1896년 이 강산에 태어나서,

대한제국 시대에 열다섯 살을 먹었고,

한일합방 후 일본국의 통치 밑에서 36년이란 세월을 견뎌 왔으며,

1945년에 8․15 광복이 되매, 미군정 밑에서 만 3년을 지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에도, 이승만 정권 아래서, 또는 과도 정부와 민주당 치하에서,

그리고 지금은 군사혁명 정부 밑에서,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차례차례 이와 같이 갈려 내려온 통치권 밑에서,

가지각색의 풍파를 다 겪는 중에서,

어떠한 시대에도 기탄없이 심간(心肝)을 다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자유란 한 번도 맛본 일이 없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철을 몰랐으니까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그후 반세기 남짓한 세월을 내려오며,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보다 못 한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은,

푼(分) 치(寸)의 에누리 없는 사실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입술을 들썩이고 곧 튀어나오려는 말을, 혀를 깨물다시피 막아버리고,

그것을 되씹으며 꿀꺽 삼켜 넘기는 일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 중에는, 필경 필자에게 겁쟁이라거나,

가시 없는 무골충(無骨蟲)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과거를 암만 회고 반성하여 보더라도 조고(趙高)의 부하들 모양으로,

지록 위마(指鹿爲馬)라는 호령에, 그대로 유유낙낙(唯唯諾諾; 명령하는 대로 언제나 공손히 승낙함)

순종하며 입내를 낸 적이라든지, 혹은 우남(雩南)의 좌우(左右)들이 민의(民意)보다는 한 걸음 더 뛰어서,

우의, 마의까지 동원시키던 과잉 충성을 본뜨려는 심보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일정시대(日政時代)에 마음으로 그랬던지, 제스처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예찬하는 글을 쓰던 문인 협회에 가입하라고 수차의 권유 아닌 강요를 당하면서도

끝끝내 거부한 것은, 오늘날 생각해 보면 여반장(如反掌) 같은 일인 듯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던 것을 기억하는 이는 기억하고 있으리라.

일본인이 사갈(蛇蝎 ; 뱀과 전갈) 같이 여기고 탄압, 말살책을 강행하던 대상인 우리 국어를 최후까지

지켜 보려다가 고문과 옥고를 만끽하게 된 것도 비겁(卑怯)이나 무골(無骨)의 소치는 아닐 것이요,

4 ‧ 19 학생 데모 직후에, 교수 데모 대열에 참가하여 ‘이승만 물러가라’고 부르짖을 때에도,

총탄 세례쯤은 각오 아니 한 바가 아니었다.

이것을 무슨 장한 자랑거리로 삼아서, 이와 같이 지면에 나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딴은 상당히 의지를 강하게 가져 보자고 노력은 하면서도,

불현듯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경우가 하도 많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꿀— 아니 소태— 먹은 벙어리가 되는 일이 하도 많다.

사적(私的)으로 나의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공적으로 대정부(對政府), 대사회(對社會), 대상사(對上司), 대하예(對下隸) 등 대상에 대하여,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또 국내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외국 혹은 외국인에 대하여도 그러하다.

억울할 때, 비위가 상할 때, 아니꼬울 때, 분통이 터질 때,

이런 때에 마음대로 푸념을 하고 폭백을 해서, 속이 시원하도록 창자 속에 웅친 것을 죄다 쏟아 놓았으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꿀꺽굴꺽 참아 버리자니, 벙어리 냉가슴을 앓지 않을 수가 없다.

 

말하면 잡류(雜流)라 하고

말 아니하면 어리다 하네

빈한(貧寒)을 남이 웃고

부귀(富貴)를 새오는데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살을 일이 어려왜라

 

말을 해도 탈, 아니 해도 탈, 참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로구나.

그러나 그 이유를 묻지 마시라.

냉가슴만 앓고 있을 따름이다.

一石 李熙昇(1896~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