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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메 (군산. 335m/ 280m) / 남서부 / 안덕면 창천리

아즈방 2022. 4. 10. 07:03

 

 

* 군산, 굴메, 군네, 군뫼, 굴뫼오름, 軍山(군산), 瑞山(서산)
  안덕면 창천리 564번지일대

  표고 : 334.5m / 비고 : 280m / 둘레 : 8,111m / 면적 : 2,836,857㎡ 
 
도내 오름 중 가장 크다.
안덕면 창천리 앞 창고천 건너에 동서로 가로 누워 있으며,

남서쪽에 기슭을 맛대어 도래오름(月羅峰)이 있다.

정상부는 용의 머리에 쌍봉이 솟았다고 했듯이,

번번한 풀밭의 동·서 양단이 큰 바위들을 머리에 이고 두두룩히 부풀어 올라 있어,

이를 雙仙望月石(쌍선망월석)이라고 했다고 한다.
동봉이 정상이며 삼각점이 있고,

바다에 접한 산으로서는 산방산(395m) 버금으로 높다. 
서부관광도로와 일주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군산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있고,

이 길을 따라 진입하면 오름 산책로 바로 앞에 다다른다. 

안덕계곡에서 대평리로 가는 길(진모루길) 쪽에서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군산(軍山), 굴메, 근뫼, 구산(九山), 굴산(屈山, 窟山, 堀山), 호산.
오늘날 지도에는 군산(軍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군산'의 '군'은 '가외의'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로

즉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난 산, 덧생긴 산, 가외로 생겨난 산이라는 뜻이다.

<"오름나그네"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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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有史)시대의 화산으로 추정

 

산 모양이 군막을 쳐 놓은 것 같다 하여 군산이라 부른다고 알려져 있으나,

군메오름이라는 속칭은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난 산이라는 뜻이다.

남록의 대평 쪽에서 보는 것이 제 모습으로 정상부에 뭉툭한 두 뿔이 솟아 있다.

 

그것은 천지가 열리기 이전과도 같은 혼돈의 세계였다.

운무가 자욱하여 어두컴컴한 가운데 땅은 우레 같은 소리를 울리며 진동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인 채, 필시 큰 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밤낮으로 으르대던 공포의 지동(地動)은 7주 만에야 비로소 가라앉고,

운무가 걷혀 간 앞바다에는 난데없는 산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초목이 없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보기에 석유황(石硫黃) 같았다.

사람들은 두려워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목종 10년(1007)의 일이었다.

조정에서는 탐라에 '상서로운 산[瑞山]'이 솟아났다 하여,

태학박사(太學博士) 전공지(田拱之)를 파견, 이를 조사케 했다.

전공지는 목격담을 수집하는 한편 산 밑까지 다가가 그 형태를 그려서 보고했다.

옛 기록에서 본 '서산(瑞山)' 이야기인데,

이는 지금의 군산(軍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서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없을뿐더러,

그게 군산이라는 확증도 없는 듯하다.

학자들 사이에도 혹은 군산, 혹은 송악산, 혹은 비양도 등 추정이 구구한 데다,

그 어느 것에도 결정적 증좌를 아직 찾아내지 못한 채다.

다만 옛 기록과 현실에 다소의 어긋남이 있으나,

여러 측면에서 고찰해 군산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사람들도 예부터 그렇게 믿어 와 전설에도 그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산 모양이 군막을 쳐 놓은 것 같다 하여 군산이라 부른다고 알려져 있으나,

군메오름, 또는 굴메오름이라는 속칭은 그와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

거의 잊혀진 이 호칭은 고로(古老)의 입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 등에도 명시돼 있다.

군식구, 군서방, 군말 따위의 '가외의'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 '군~'이 메(산)에 매겨져 있다.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난 산, 즉 덧 생긴 산, 가외로 생겨난 산이라는 뜻이다.

'군~'은 '굴룬~'으로도 쓰이고 가외로의 뜻일 때는 '굴루로'라고 쓰이므로,

즉 군메(오름)는 군산, 굴룬산 또는 굴루로 생겨난 산이고,

굴메(오름)는 '굴룬메'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산이 처음 솟아날 때 안개 속에 굴메(그림자)같이 보였다 하여 굴메오름이라 부른다고도 하나, 이로써는 군메에 대한 설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군~’은 표준말이자 섬에서도 제주어인 '굴룬~'과 함께 예부터 있어 온 말이다.

'군산'은 군막 모양이라는 데서 나왔다기보다 본디의 이름 군메(군산)의 한자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인다.

어찌 보면 산 모양도 비슷하고 하여 군막 운운케 되었으리라.

'군메’에 대한 위의 해석은 25년쯤 전 한라산 등산 중 중문 쪽 방목 지대에서 만난 테우리(마소치는 사람) 할아버지에게서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과 함께 오름 이름이 '군메오름' 또는 '굴메오름'임을 고집하는 몇몇 고로의 말에 바탕을 둔다.

이 오름은 안덕면 창천리 앞 창고천 건너에 동서로 가로누워있다.

북록의 창천교와 남록 해안의 대동교를 잇는 경계선이 정상을 중심으로 산체를 양단,

동반부는 서귀포시, 서반부는 남제주군에 속하며,

남서쪽에 기슭을 맞대어 ᄃᆞ래오름(월라봉月羅峰)이 이웃해 있다.

창천리 쪽 북사면은 매우 가팔라서 오르내리려면 자연 동서의 완만한 등성이를 타게 된다.

동쪽으로도 작은 길을 따라 쉽게 꼭대기에 이르지만,

서쪽 길은 정상 직하에까지 소형 트럭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이 길은 대평에서 감산으로 가는 고개 ‘진ᄆᆞ루'의 중간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정상 가까운 등성이에 평평한 풀밭이있어 소들의 동산이 되었는데,

이곳은 '질메ᄐᆞᆨ'이라 부르고 있다.

길마처럼 생긴 마루턱이다.

정상부는, 용의 머리에 쌍봉이 솟았다[雙峰起於龍頭]고 했듯이,

번번한 풀밭의 동·서 양단이 큰 바위들을 머리에 이고 두두룩이 부풀어 올라 있다.

이를 쌍선망월석(雙仙望月石)이라 했다.

그 사이는 남쪽으로 급사면이고 북쪽으로는 작은 등성이가 뻗어 내린다.

정상부 일대만은 쌍봉기어용두(雙峰起於龍頭)니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이니 하여,

명당으로 알려져 있으면서 무덤이 하나도 없다.

예부터 전해진 금장지(禁葬地)이자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여기에 묘를 쓰면 크게 가물거나 심한 장마가 든다는 것이다.

오래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 암장한 무덤이 마을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파헤치자,

그날로 비가 쏟아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구역 이하에는 묘들이 많이 보인다.

동봉이 정상이고 삼각점이 있다.

표고 334.5미터, 바다에 접한산으로서는 섬에서 산방산(395미터) 버금으로 높다.

분화구인 듯한것은 찾아볼 수 없다.

산정의 바위들은 적갈색에 회백색이 피부병처럼 얼룩얼룩 섞여 있는데,

이 바위 위에서는 고근산에서와 같은나침반의 놀림을 당했다.

북동에 있어야 할 한라산 정상봉이 남서에 있고,

정북의 창천과 정남의 대평이 정반대로 자리바꿈 돼 있다.

자철석이 있어 나침반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산정에 화구인 듯한 것은 전혀 없으나 동쪽 허리와 남록 가까운 곳에 폭렬화구로 보이는 것이 있으며, 용암의 양상으로 미루어 가까운 시대의 분출에 의한 산으로 추정되고있다.

(爆裂火口 : 화산의 폭렬에 의하여산의 일부가 폭파되어 생긴 구덩이나 구멍)

산정에 앉으면 서쪽 지척의 산방산이 온몸으로 바싹 닥뜨려온다.

바위 줄기와 나무숲이 엮어 내는 골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고성능 망원렌즈로 잡은 것 같고,

복판에 시커멓게 굴이 뚫린 것이 마치 머리통만 드러낸 외눈의 괴물처럼 보인다.

동쪽의 섬에서 중문, 화순의 모래톱, 형제섬, 송악산, 멀리 가파도, 마라도에 이르기까지의 해안선의 조망은 구름을 타고 내려다보는 듯하고, 북태평양 대해가 한 아름에 안겨 들어온다.

북동록에 왕자골이라는 데가 있다.

두 가닥의 등성이가 뻗어내린 사이에 푹 내려앉은 지대로 왕자묘(王子墓)에 연유된 곳이라는데 왕자묘는 찾지를 못했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안다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오래전에 없어져 버렸는지도 모르며, 왕자의 주거지였을 수도 있다.

왕자라면 양왕자(梁王子)일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 명(明)에 정복된 원(元)의 제후 운남(雲南) 양왕(梁王)의 태자와 왕손들을 제주에 이주시킨 사실이 있고,

이들은 이 섬에서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제주 풍속의 하나인 갈옷(감물을 들인 옷)은 이때 왕손들 따라 들어온 운남 묘족(苗族)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김태능, '제주도사논고' · 박용후, '제주도지濟州島誌').

남사면에는 우뚝우뚝 선 바위며 벼랑이 있고, 군데군데 경사진 암반도 드러나 있다.

'미륵골'에 '미륵돌',

장롱같이 생겼다는 '농궤',

특히 애기업게돌(일명 애기업은돌)은 이름나 있다.

아기를 업은 소녀가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 그대로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들이 비원의 기도를 드리러 찾아든다는 바위다.

그 서쪽 골짜기 너머 층층 밭에 술패랭이를 집단 재배하는 밭이 더러 있다.

술패랭이꽃은 이뇨·통경·임질 등에 유용한 약용식물이라니 재배할 만도 하다.

단, 임부(姙婦)에는 유산의 우려가 있어 금물이라고 한다.

군메오름은 남록의 대평 쪽에서 보는 것이 제 모습이다.

산정의 쌍선망월석은 뭉툭한 두 뿔이고,

그 밑 양쪽 비탈에 ㄱ 자로 튀어나온 바위는 '눈썹바위'라는 이름 그대로 두 눈썹이다.

흐름도 유연한 양쪽 능선의 품 자락에는 풍요를 가꾸는 밭마다 구슬땀 거름으로 기름지고,

섬에서는 어느 곳보다 앞서 유채꽃 바다를 이룬다는 고장,

산과 바다의 만남 사이에서 커 가는 하예, 대평은 축복된 마을이다.

* 출처 : '오름나그네2' 김종철 / 사진 고길홍, 10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