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登 山/악돌이 .

악돌이 박영래화백의 등산만화 36년

아즈방 2022. 3. 22. 23:25

악돌이 박영래 화백의 등산만화 36년.

 

만화는 재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화에 열광한다. 

조선일보에서 발간하는 월간 山에는 ‘악돌이’ 라는 연재만화가 있다. 
악돌이는 만화의 주인공이자 이 만화를 그리는 박영래화백의 별명이기도 하다. 
 

악돌이는 천하에 이름높은 술꾼이자 산꾼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아내는 악처(惡妻.岳妻)가 되었다.

홍두께 같은 빨래방망이가 아니면 연탄집게를 하늘높이 쳐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 잡으러 악을 쓰는 악처다.

악돌이는 이 악처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고는 도망을 치듯 산으로 간다.

덕분에 악돌이는 세상이 알아 주는 공처가가 되고 말았다.

 

등산 헬밋을 눈까지 가릴 정도로 깊숙이 내려쓰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계속 범하면서도 어김없이 매달 산행을 한다. 
악돌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1970년 9월호이다.

그러니까 악돌이의 지금 나이는 36세다. 
박영래화백의 인생은 만화주인공 악돌이 그대로다.

악돌이의 영원한 두가지 테마가 ‘산과 술’인데 박화백에게는 ‘등산만화’라는 테마 하나가 더 붙어 있을 뿐이다. 
  
박화백은 지난해까지 山이라는 월간잡지에 직함이 붙어 있는 전문기자였다.

나이 60을 턱밑에 두고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같은 잡지에서 같은 일을 계속하는 객원기자로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직장인에서 해방된 처지라 훨씬 자유로워진 것으로 알았는데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월간 山의 터줏대감과 맡형으로 할일이 더 불어 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술을 마셔야 할 기회가 더 많아 졌다는 뜻이었다.

한국의 산악계에서 박화백의 술실력은 크게 소문이 나 있다.

그와 술잔을 한차례 부딛쳐 보는 것 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아는 산꾼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 과장된 표현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그와 술에 얽힌 전설적인 많은 이야기들은 ‘예사로 술을 마시는 사람’ - ‘예술가’ 산꾼 들에게는 술상의 술안주가

되면서 회자되고 있다.

그 중의 백미는 소주 100잔을 한 자리에서 마신 실력을 장인으로 부터 인정받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구파발에 마음씨 착한 예쁜 처녀가 살 았는데 그 집 앞은 언제나 구혼하는 총각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처녀의 멋쟁이 술꾼 아버지는 적어도 한자리에서 소주 100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사나이라야만 딸을 시집

보낸다는 소문이 산악계에 퍼졌다.

내로라 하는 예술가 산꾼 몇사람이 도전했지만 6~70잔에서 모두가 나가 떨어졌다. 
술이라면 한가락이던 총각 박화백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겠다. 도전장을 내었다.

사실은 결혼할 생각보다는 산악계 동료들에게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실토했다.

찾아 가기 몇일 전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단단히 몸을 다듬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날, 100잔의 소주, 즉 2홉들이 소주 13병을 비우고 당당하게 그 집에서 걸어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산악계에 쫙 퍼졌고 그 인연으로 그 집 딸과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도 만취가 된 상태였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박화백이 처음 술을 마시게 된 것은 6, 7세의 어린 나이 때의 일이라고 한다.

피난살이 부산땅에서 배가 고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양조장에서 어른들 틈에서 술을 훔쳐 마시게 된 것이 처음이었고

고약한 어른들은 장난 삼아 이 아이에게 술을 계속 먹였다는 것이다.

실로 주당(酒黨)으로의 입문이 빨랐던 것이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환도를 하는 시점에 박화백의 가족은 12열차를 타고 서울 성북동으로 이사를 했다.

여기서 집안 어른들 술심부름을 하게 된 박화백은 술 마시는것이 아주 예사로운 일이 되어 오늘의 주선(酒仙) 탄생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다. 

성북동에 살면서 하루는 북한산 대남문까지 올라 북쪽으로 더 높은 능선과 봉우리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절경에 반했다고 한다.

그 후, 방학때가 되면 텐트를 메고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올라 아예 산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그를 산꾼으로서의 인생을 결정짓게 했다는 것이다. 

만화는 고등학교때부터 그렸고 여러 일간지에 기고를 했다.

한번은 조선일보에 만화 원고료를 받으러 갔다가 만화를 그린 사람이 고교생인 것을 알게 된 조선일보 사람들이 놀라와 하던

일을 지금껏 즐거웠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박화백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하게 술과 산에 미친 사람이다.

그는 매주 두차례 이상 산행을 한다.

그 길에서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그 독자들은 악돌이와 한잔 걸치기를 강요한다.

사양할 악돌이도 아니다.

서울에서는 지방에서 찾아오는 선후배들이나 애독자들과 어울린다.

찾아오는 입장에서는 어쩌다 한차례이지만 악돌이에게는 매일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 술독에 빠져 있어야 하고 또 밤마다 축배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는 그의 체력은 축복이다. 
  
박화백은 아들하나 딸하나를 낳아 훌륭하게 잘 기루었는데,

아들 이름이 자일(滋一)이고 딸 이름이 카라비나에서 따온 비나(毘娜)다.

물론 호적상에 등재되어 있는 이름이다.

자신의 자녀이름에 등산장비 이름을 붙힌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자일과 카라비나는 암벽등반때 쓰는 장비다. 
부전자전(父傳子傳), 부전여전(父傳女傳) - 피는 속일 수가 없다고 했던가.

두 자녀가 다 미술쪽 공부를 했고 더욱이 숙명여대 미대 출신의 딸은 ‘마운툰(MOUNTOON)’이라는 이름의 등산만화를

월간지 ‘사람과 산’ 에 연재를 하고 있다.

홍대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오빠는 같은 대학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박화백이 한국산악계에 기여하는 것은 등산만화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주말산행과 열차산행의 개념을 도입했다.

세권의 ‘주말산행’ 저자이기도 한 그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 산들을 찾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널리 알리는 일들을

 하고 있다. 

만화는 재밋고 즐겁다.

등산만화 ‘악돌이’는 더더욱 그렇다.

무슨 자랑인양 테이프를 붙인 헬밋으로 눈까지 가리고 우리 앞에 등장하는 악돌이는 어리숙한 모습이다.

세련미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지만 완만한 곡선은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산은 눈이 없더라도 마음으로 올라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악돌이는 그만의 독특한 풍자로 이땅 산악계의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풍토, 지나친 허세와 권위의식을 완강하게 비판한다.

때로는 그 비판이 분노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등산만화 ‘악돌이’ 는 ‘재미’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산사람 이야기 / 2005년 6월호

 

 

 

'🤍 登 山 > 악돌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여름철 산행 채비 (하)  (0) 2022.03.22
4. 여름철 산행 채비 (상)  (0) 2022.03.22
3. 봄철 산행 채비  (0) 2022.03.22
2. 당일 산행 채비  (0) 2022.03.22
1. 초보자를 위한 산행 채비  (0)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