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중독으로 페티김도 잃었고, 몸도 망치고 놀라운 재능도 일찍 잃은,
길옥윤의 슬픈 이야기
패티김과 길옥윤은 당시 김종필의 주례로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사람은 사랑했던 결혼이지만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길옥윤의 주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는 술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술에 파묻혀 며칠씩 귀가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두사람 사이엔 딸이 태어났으나 서로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되어,
약 1년반 정도 떨어져 살기로 했다.
당시 뉴욕에서 지내 던 길옥윤이 패티김을 생각하며 썼다는 곡이 '이별'이다.
결국 두사람은 이혼을 하였다.
길옥윤과 헤어진 패티김은 이탈리아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딸까지 낳았다.
길옥윤은 이혼과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던 중,
골수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투병을 이어가던 길옥윤이 대중들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건,
SBS의 '길옥윤의 이별 콘서트' 에서 였다.
병마와 싸우는 길옥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후배 음악인들이 마련한 헌정 콘서트 였다.
현미 최희준 정훈희 등이 무대를 함께 했다.
그러나 길옥윤은 무엇보다도 패티김이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혼한 뒤 관계가 불편한 패티김이 방송에 출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티김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수천 마일을 날아와 그 어느때 보다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두사람이 결별한 지 21년 만의 재회였다.
콘서트의 피날레는 길옥윤이 작곡하여 패티김이 불러 히트했던 '이별' 이었다.
노래를 부르던 패티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길옥윤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콘서트가 끝난 후 얼마되지않아 세상과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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