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一節
우리나라의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
(英) Anniversary of the Samil Independence Movement.
'삼일절 노래'는 1946년에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의뢰로,
위당 정인보의 3·1절 노래에,
당시 숙명여대 음악과 강사였던 작곡가 박태현이 곡을 붙인 것이다.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
5대 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3월 1일이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우리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에 항거함과 동시에,
전세계에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정부는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여,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였다.
이날은 3부 요인을 비롯해서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고,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선열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구성된 광복회
회원들은 별도로 파고다공원에 모여 그날의 뜻을 되새기는 의식을 거행한다.
----------------------------------------------------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날이다.
이 3.1 운동은 세계에서도 예가 많지않은 대규모의 집단적 저항 운동으로,
광복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과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 민족대표를 자청한 33인이 한 중화요리 가게 에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이들에게는 선언서를 발표하고 잡혀갈 예정이었으므로,
실제 시위를 주도할 15인이 더 있었고,
모두 합쳐서 민족대표 48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3인 중 3인의 변절자 : 박희도, 정춘수, 최린.
48인 중에서는 최남선까지 해서 4인.
1. 3.1 운동의 의의
3.1 운동은 1910년 국권을 강탈 당한 이후,
일제의 온갖 설움과 압박에서 해방되고자 전 민족이 참여한 대규모의 독립운동
이었으며, 그때까지의 독립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전환시 키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독립군이 조직되어 무장독립전쟁을 전개
하여 우리 민족의 의지를 전세계에 떨쳤다.
이러한 3.1 운동 정신은 계속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부는 이날을 3.1 절로 정하여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일제는 우리 주권을 빼앗고 경제를 장악하여 강산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하였고 같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빼앗았을
뿐만아니라 교육을 철저히 통제한 후, 우리민족을 일본사람으로 만들어 그들의
심부름꾼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권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거나 항일 운동을 하는 자는 체포,구금
하여 고문을 가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혹독한 수탈과 압박이 더 할수록 우리 민족의 반일 감정과 저항은
더욱 뜨겁게 달아 올라 마침내 3.1 운동으로 나타났다.
3. 3.1 운동의 전개과정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한 학생의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시작된 우렁찬
만세 소리는 서울의 경우, 며칠동안 일제가 전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만세 소리 는 전국 218개군 가운데 211개군으로 불길처럼 퍼져갔다.
이런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는 고향인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가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반죽음이 된채 재판에 회부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재판에서,
"나는 조선 사람이다.
너희들이 우리 땅에 와서 죄없는 우리 동포를 수 없이 죽였으니,
죄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다.
그런 너희가 어찌 재판 을 하겠단 말이냐?
당치도 않은 수작은 집어 치워라!"
하고 떳떳이 주장하다가 7년의 징역형을 받게 되었다.
감옥에 갇혀서도 계속해서 만세를 부르다가 1920년 17세 나이로 굶주림과 병으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처럼 일제는 어린 학생 뿐만아니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만세 운동을 총칼로
진압하여 수만명을 죽이고, 10여만명의 부상자를 내었으며,
재판을 받은 사람도 만명이 넘을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시위 군중에 대한 학살 뿐만아니라 체포된 사람에 대한 고문 또한 잔인하기 그지
없었으며,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 歲月은 지금 > 3 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 제철 음식과 효능 (3) | 2025.03.01 |
---|---|
제철음식 봄나물 (0) | 2025.03.01 |
3월의 꽃 - 천리향(千里香) (0) | 2025.03.01 |
3월의 인사말 (2) | 2025.03.01 |
3월 (0) | 2025.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