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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최고봉의 이름은 '혈망봉(穴望峰)'

아즈방 2022. 1. 3. 11:34

'한라산총서'(2006 발행) 中 '한라산 이야기'

한라산 최고봉의 이름은 '혈망봉(穴望峰)'

 

백록담은 한라산의 최고봉인가?

물론 아니다.

천지(天池)가 백두산의 최고 지점이 아니듯이 백록담도 그렇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종 백록담을 한라산 정상인 것처럼 표현한다.

이는 정상을 일컫는 마땅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을 자주 찾는 산악인들이나 학자, 그리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한라산의 최고봉을 뜻하는 봉우리

이름을 고문헌에서 찾거나, 그게 없다면 도민들의 중지를 모아 새로 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사실 명산이라 일컷는 산 중에 최고봉의 이름이 없는 산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의 산들은 차치하고라도 백두산의 장군봉, 설악산의 대청봉, 지리산의 천왕봉처럼 이름을 날리는 산은

모두 최고봉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남한 최고봉이면서 민족의 영산이라고 부르는 한라산에 최고봉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쉽고 어색한 일이다.

그러면 왜 한라산에는 최고봉 이름이 불려 지지 않는 것일까.

우선 지형적으로 볼 때 한라산 정상이라고 딱히 부를 만한 높은 봉우리가 없다.

한라산은 부악(釜岳) 또는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부른다.

정상부가 마치 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두무악 역시 머리가 없는 산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솥처럼 생겼든, 머리가 없는 산으로 여겼든 이는 한라산 정상부의 형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백록담을 둘러싸고 있는 분화구 외륜부는 성곽처럼 보이는데 동서면이 높고 남북면은 상대적으로 낮다.

전체적으로 남서사면이 가장 높지만 얼핏 보면 솥처럼 기복이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높은 지점이 어디라고 짚기가 애매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한라산 정상을 말할 때 흔히 '상봉(上峰)' 또는 '절정(絶頂)'이라고 섞어 불러왔다.

최초의 한라산 등반기를 남긴 임제의 남명소승에는,

'절정에 도달하였다. 구덩이 같이 함몰되어 못(註;백록담)이 되었고, 돌사닥다리로 둘러싸여.. (후략)‘ 라고

했는가 하면, 같은 등반기에서는 '상봉을 따라 두타사(頭陀寺 )라로 내려 왔다’는 기사도 보인다.

그렇다면 한라산 최고봉을 부르는 이름은 전혀 없었는가.

고문헌을 보면 한라산 최고봉에 관한 기록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1609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뒤 한라산을 올랐던 김치(金緻)의 `유한라산기'를 보면,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서 정상 위에 도착하여 혈망봉(穴望峰)을 마주하고 앉았다.

봉우리에는 한 개 분화구가 있어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은 것이다.' 라는 기사가 보인다.

여기에서 언급한 혈망봉은 최고봉인 특정지점의 봉우리를 지칭하는것이 아니라 전체 분화구 주변을 지칭

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1841년 3월부터 1843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지냈던 李源祚목사의 '耽羅誌形勝條'를 보면,

혈망봉이 분화구 전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 최고지점일대를 뜻하는 봉우리임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穴望峰=在白鹿潭南邊峰 有一竅可以通望 梢東又方巖 其形方正 如人鑿成》

즉, `혈망봉 = 백록담 남쪽 변두리에 있는 봉우리에 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방을 다 둘러 볼 수 있다.

조금 동쪽에는 또 방암이 있는데 그 모양은 네모나 있고 마치 사람이 쪼아서 만든 것 같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혈망봉이 백록담이 아니라 특정지점의 봉우리임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또 1800년대 말엽 남만리(南萬里)가 지은 탐라지(耽羅誌) 형승조(形勝條)에도 동일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그런가 하면 1954년 9월에 펴낸 증보 탐라지(增補耽羅誌) 명승고적조(名勝古蹟條)의 기록은 혈망봉이

한라산의  최고지점을 뜻하는 이름임을 더욱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혈망봉 = 한라산 절정(絶頂)에 재(在)하다.

  사방을 가히 통망(通望)할 수 있다.

  동쪽에는 방암(方巖)이 있다.

  그 형(形)이 방정(方正)하여 사람이 쪼아 만든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라산의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혈망봉임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고지도상에 혈망봉을 그려 넣은 지도는 드물다.

그러나 1702년(숙종28년) 이형상목사가 화공을 시켜 그린 탐라순력도 중 한라장촉(漢拏壯囑)에는 한라산

정상부에 백록담과 함께 '穴望峰‘을 뚜렷하게 표기하고 있어 당시에도 산정상을 혈망봉으로 불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자료는 빈번하게 인용돼 온 것은 아니지만 한라산 최고봉을 일컫는 이름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기록

들이다.

그러면 '혈망봉'이라는 이름은 왜 지금은 불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혈망봉으로 불렸던, '구멍이 뚫인'봉우리의 존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한라산 최고지점인 절정에서 불과 20~30m 정도 떨어진 남서쪽 절벽에는 마치 거대한 장검(長劍)을

세운듯한 바위들이 산체의 외륜을 감싸고 있다.

풍화작용에 의해 깎이고 무너지며 이루어진 형태다.

이들 거대한 바위들 중 옛날 옛적에는 윗덮개가 있어 구멍처럼 보였던, 그러나 지금은 무너져 버린 혈망봉

봉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라산의 최고봉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한라산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제 한라산 최고봉의 잊혀진 이름을 다시 불러주자.

그러면 한라산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출처 : '수선화마을' - http://blog.daum.net/mkyukyu/59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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