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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行上方 分福下比

아즈방 2025. 1. 26. 14:43

지행상방 분복하비

 

뜻과 행실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삶의 지향은 항상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목표로 삼아 행하고, 
처지와 형편은 항상 나보다 아래 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하게 여기도록 하라.

 

나의 가치관과 삶의 기준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철학과 행실에 비견하고,
나의 현실적 지위와 분수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긍정으로 자족하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삶이다.

 

조선시대 3대 청백리(淸白吏) 중 한 사람이었던 이원익 선생의 좌우명으로,

그의 詩문집 '梧里集'에 있는 글이다. 

李元翼 (1547~1634)

40년 정승살이에 남은 것은 비바람 피할 초가 두 칸

"거처하고 있는 집은 잡목으로 얽어 만든 두 칸 초가집으로,

겨우 몸을 붙이고 살 정도인데, 낮고 좁아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 앞에 가족들이 거처하는 곳은 더욱 기울고 누추하며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여,

거의 사람이 견디고 살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또 들으니, 살고 있는 땅도 여러 대 선산 아래라서 곁에 한 뙈기 밭도 없고,

또한 딸린 종도 없이 온 가족이 단지 달마다 주는 쌀로 겨우 연명한다고 합니다."

*《승정원일기》 인조 9년(1631) 강홍중이 李元翼의 병세를 임금에게 告.

 

"알았다. 40년 동안 정승노릇을 하였는데,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짜리 초가에 살다니,

그의 청렴결백함과 안빈낙도함은 옛날에도 없던 일이다.

내가 평소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이 공덕(功德)이 있어서일 뿐만이 아니다.

이 공(李公)의 청렴과 검소를 백관(百官)이 본받는다면 어찌 민생(民生)이 곤궁해질

염려가 있겠는가.

나이가 많은 원로는 도리상 우대해야 하며,

그 검소한 덕도 표창해서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해도로 하여금 정당(正堂)을 지어주도록 하고,

또 호부(戶部)로 하여금 무명 이불과 명주 요를 사급하도록 함으로써,

그가 숭상하는 바를 이루게 하라."

*강홍중이 이원익의 병세를 임금에게 보고한 자리에서 인조가 내린 명령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5번이나 영의정에 오른 인물.

5번의 영의정 재임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선산의 초라한 초가집에서,

농사짓고, 돗자리를 만들어 팔면서 생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