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비 / 서경희
야시비가 내렸다.
반짝, 내렸다.
야시비는 언제나 반짝! 하고 내린다.
야시는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로 여름날 야시처럼 깜찍하게 잠깐 내리는 비를 ‘야시비’라 한다.
경상도 출신의 내가 서울에 살면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이 서울 사람들의 말씨다.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서울 말씨는 우리나라 표준어 제정의 기준이면서,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보인다.
서울이라는 비만의 도시를 어루만져주는 부드러운 융단과 같다고 느끼며 자주 나의 부러움을 산다.
말씨는 아니지만 때로 서울 말씨만큼이나 어여쁨을 주는 시골말도 만난다.
그 고장 특유의 정서가 뚝뚝 흐르는 토담집 삽짝에 서있는 접시꽃 같은 정겨움을 주는 말이다.
일테면 전라도 사투리 ‘뭐땀시’(무엇 때문에)가 그러한데,
나는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홀연 시적 흥분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야시비도 그 중의 하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야시’라는 말은 여우로 변천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야시는 여우보다 아득하고 신비로운 동물로 여겨진다.
당연히 내게 있어 야시비는 여우비와 느낌이 다르다.
야시비가 주는 은밀한 즐거움을 여우비는 줄 수 없을 것이다.
교활하고 음험한 여우에 비해, 민첩하고 기지 넘치는 활력의 동물이 야시다.
“이 야시 같은 것!”하고 말할 때 우리는 그에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상상이 가나요?
무더운 여름날 느닷없이 비는 좍 내리는데 햇살은 그대로 환하게 있는 정경이.
비가 오면 응당 해님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햇살은 반짝이고 소나기는 쏟아지고….
그 통쾌한 정경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유심히 본 적 있나요.
이 황홀한 광경을 몰랐거나 알고도 그냥 지나쳤다면, 당신은 돌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여우비’가 아닌 ‘야시비’인 것이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년 시절의 줄기찬 빗줄기에서 영원한 시의 원천을 얻었다고 한다.
그것에서 삶에 눈을 뜨고 문학에 눈을 떴다고 하니,
그는 역시 강렬한 빗줄기 같은 세기적 거인의 시원을 생래적으로 지녔던 사람 같다.
어느 때인지 알 수 없는 아득한 어린 마음에 이상한 황홀감을 안겨준 그 야시비도,
그렇다면 내 작은 눈뜸의 시작이었던가?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구경하다 우연히 '여우비 온 후'라는 제목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참 감전된 듯 서있었다.
그림 속 파릇파릇한 풍경 앞에서 내 원시의 정겨움이 활짝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제목이 「야시비 온 후」였다면, 그날 나의 감동은 비 갠 수풀에 내린 햇살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사물의 감각을 언어로 완벽하게 포착하기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의 깊은 뜻과 자연스런 느낌, 정밀한 분위기를 한꺼번에 뭉뚱거려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나 단어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꿈속에서도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의 충족을 ‘야시비’에서 얻고 있는 것이다.
쨍한 햇볕 속에 살짝 비가 내리고,
이따금 무지개도 뜨고,
상큼한 하늘빛 아래 물가의 풀은 불로초인 양 푸르다.
이 싱그러운 광경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야시비’ 외에 뭐가 있을까?
경상도 출신의 어느 소설가가 ‘속닥하다’(몇몇이 조금 은밀하게 즐김)라는 낱말을 두고,
언젠가 한 평론가와 언쟁을 한 적이 있다.
사전에 없는 비표준어를 즐겨 쓰는 그를 평론가가 나무란 것이다.
쟁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속닥하다’의 말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나의 ‘야시비’처럼 그 소설가의 ‘속닥하다’를 맘껏 응원할 수 있었다.
야시비를 보고 어린 시절 문득 충격을 받았다는 시실은 내게도 희망이 있다는 한 증언이 아닌가.
해가 있는데 비가 내린다는 과학적 사실의 어긋남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그 이율배반이 빚어낸 말 못할 아름다움에 대한 충격이 그것이다.
한여름 한번쯤 눈 깜짝할 사이 왔다가는 그 야시비가 강둑의 푸른 풀을 더욱 푸르게 하고,
나는 그 푸른 풀잎에 다가가 푸른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번 여름 야시비가 내리면 멋진 포즈로 그 비경을 휴대폰에 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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