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歲月은 지금/5 월 .

수필 - '오월' / 피천득

아즈방 2025. 5. 11. 11:10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실료애정통고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사랑은 얻어도 잃어도 고통’이라는 뜻.

 중국 당송 8대 서예가이자 문필가 中 구양순(歐陽詢, 557~641)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젊은 시절(왼쪽)과 노년의 피천득

피천득(皮千得 . 1910~2007)

시인, 수필가이자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琴兒.

상해 호강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경성대학 예과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대 및 사법대 교수를 역임했다.

191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을 발표하면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는 자연과 동심이 소박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다는 평을 얻었고,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그려진 그의 수필은 남녀노소에게 고른 사랑을 받아,

대표작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그의 수필은 백 마디 천 마디로 표현해야 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적은 수표의 언어 안에 함축시키는 절제가 돋보인다.

그리움을 넘어서 슬픔과 애닯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피천득의 美文은 언제, 어느 때 읽어도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으로 '꿈', '편지' 등의 詩와 '여성의 미', '모시' 등의 수필 외 다수가 있고,

시문집으로 '산호와 진주', '생명'이 있다.

유명 작가의 길을 걸었으되,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소탈하면서도 충일한 삶을 살았던 그는,

‘앵두와 어린 딸기 같은’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떠난 ‘영원한 오월의 소년’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