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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이팝나무와 조팝나무' / 심후섭

아즈방 2025. 5. 9. 11:10

 

이팝나무와 조팝나무

 
지금 우리 지방에서의 조팝나무 꽃은 대체로 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산조팝나무는 한창이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고모령을 지나면서,

바위벽에 붙어있는 산조팝나무의 백색 향연을 보는 것은 여간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러나 조팝나무라는 그 이름 뒤에는 몹시 배고팠던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어려

있다.

조팝나무의 '조팝’은 좁쌀로 지은 밥인 '조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밭둑에 가보면 흰 꽃잎은 져버려서 볼 수 없지만,

그 자리에 남은 좁쌀처럼 생긴 노란 암술을 볼 수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잘 익어서 알맞게 터진 좁쌀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조팝 나무  꽃
조팝나무 열매

 

하루의 노동을 겨우 끝내고 해거름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들에게, 그 노란 것들은 영락없이 입맛 다시게 하는 조밥으로 보였을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 이맘때쯤 저녁 무렵 밭에서 돌아오신 선친께서 나물국밥이었지만

맛있게 저녁을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또 동네 어른들과 함께 마을길을 닦고 시큼털털한 막걸리이지만 왕소금과 함께

목을 축이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이팝나무 꽃도 마찬가지이다.

'이팝’은 쌀밥을 뜻하는 '이밥’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왕족으로서 권세가들이었던 이씨(李氏)들만 먹을 수 있는 밥이라 하여,

'이씨 밥’이라고 불리다가, '이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꽃의 모양은 잘 퍼진 쌀알이 주렁주렁 매달린 듯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맹물로 저녁을 떼운 달밤에 바라보면 더욱 쌀밥을 닮았을 것이다.

이팝나무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는 입하(立夏) 무렵에 꽃을 피운다하여,

'입하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감을 찾아보면 입하목(立夏木)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꽃은 해마다 입하 무렵이 되면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연말에 윤달을 겪은 관계로 좀 더 빨리 이 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파트 마당과 같이 햇빛을 많이 받는 곳에는 벌써 흰 꽃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도로의 복사열을 많이 받아 다른 곳보다 훨씬 먼저 꽃을 피우는 우리 대구 앞산

순환 도로변에도 이 꽃은 피어날 것이고…….

이 꽃이 한창일 때에 아름드리 고목의 위용을 자랑하는 화원읍 옥포면 세청숲이나

안강 옥산서원에 가보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순백의 눈부심 앞에서 저절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이팝나무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는 '이밥’을 먹으려면 이 나무가 꽃을 피울 때부터

못자리를 하는 등, 농사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역시 배가 고팠을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이팝나무 꽃이 잘 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도 한다.

꽃이 풍성한 것은 수분과 온도가 적당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되면 결국 다른 농사도 잘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팝나무는 기상목(氣象木)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먹는 것과 관계되는 이름으로서 배가 고팠던 시절에 지어진 가슴 아픈

이름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에는 지금이 보릿고개였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그 눈물 많은 보릿고개를 전후하여 이 땅에 피어나는 꽃들

이었던 것이다.

이 꽃들이 이 땅에 피어날 때쯤이면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퀭한 눈으로

고난의 세월을 인고하여야만 하였을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냉수로 배를 채워야 했던 이 땅 민초들의 힘든 모습이 투영된

이름이, 바로 이 '조팝’과 '이팝’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둘레에는 이름이 처음 붙을 때와 같은 '조팝’과 '이팝’이 수없이

피어나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아니한가?

눈부시게 따뜻한 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직장이 없는 이들은 봄 같지 않는 추운

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이 땅에 정말 봄 같은 봄이 찾아오고,

'이팝’과 '조팝’이 정녕 아름다운 전설로만 남아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 심후섭 /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