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포천 (瓮浦川)
옹포천은 북제주군 한림읍 중심을 가로지른다.
북제주군 대부분 지역 하천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인데 반해 옹포천은 북군 서부지역 최대의 용천수를 자랑하는
하천이다.
건남내(乾南川), 월계천(月溪川)라고도 불린다.
동쪽으로는 한림항, 서북쪽엔 천혜의 절경과 황금어장인 비양도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옹포천 하구가
바다와 맞닿아 있다.
시원하게 뚫려 있을 하구는 바다를 가로질러 해안도로를 내는 바람에 막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옹포리의 옛 이름은 `독개'.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림읍지(1999)는 독개의 유래에 대해 `후미져 들어간 독처럼 펑퍼짐한 뱃자리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적고 있다.
강순석박사는 '새끼줄 구조가 잘 발달된 현무암질 용암류가 옹포 하구에 발달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독특한 지질구조는 해안도로 개설로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옆에는 소파우코지'(소파위코지)라는 곳도 있다.
옹포마을의 중심 뱃자리인 `독개'의 북풍막이 구실을 하는 곳으로 저절로 둥그렇게 생긴 물웅덩이다.
조선 총독부 시절에는 전복을 살려두는 자리였다고 한다. 일종의 전복양식을 했었던 곳이다.
옹포천은 연중 용출하는 풍부한 수량 때문에 최적의 공장 입지조건을 갖췄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수품 통조림 공장과 양조장, 전분공장, 직물공장 등이 입지하여 제주도 서부지역의 최대 공업
지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일제의 잔재는 하구 주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낡은 건물만이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지역 소주업체인 한라산 제조공장이 옹포천 하구에 위치,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해안도로에서 2백m쯤 상류 옹포교(橋) 인근까지 해수와 용출수가 교차한다.
전 옹포리장은 '내가 젊을 때만해도 옹포교 아래 수심이 용출수로 인해 1m 이상을 유지했었으나 지금은 발목에도
모자란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이곳에서 은어와 장어잡이 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옹포천 하구는 시간이 갈수록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옹포천 변에는 한림정수장이 위치해 있다.
하구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이다.
동명리 마을에 있는 이 정수장은 한림과 애월, 한경 등 북군 서부지역의 젖줄이다.
시설용량이 1일 취수량 2만6천여톤, 정수량은 2만4천여톤에 달한다.
급수인구도 1만8백여가구 3만2천여명에 이른다.
주민들에 따르면 동명리 정수장 일대 `마구물'과 `조물' 두 갈래의 용천수를 가리켜 쌍계수(雙溪水)로 불렸는데,
이 물이 옹포천으로 합류했었다고 한다.
수량이 매우 풍부한데다 물이 워낙 맑고 차가워 발을 담그기 조차 어려웠다고 하니 가히 짐작할만 하다.
지금은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다.
옹포천은 쌍계수 부근 일대에 용출하는 수원지로 항상 풍부한 수량을 이루어 하구에는 옛부터 제조업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옹포천 하구에서부터 명월대에 이르기까지 하천 대부분 구간이 `하천정비'로 원형을 잃어버렸다.
옹벽이 쌓아지고 바닥은 준설돼 하천을 무색케하고 있다.
동명리는 한림읍 중앙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한림읍의 상수원이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마을.
이 마을은 감귤과 양파가 중요한 소득원을 이루고 있다.
동명리는 고대마을터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림리에서 금악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1㎞ 정도 올라간 지점의 도로 양쪽 경작지 일대에서는 유적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동명리 유적은 지난 1986년과 1998년 보고된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1백년~기원 전후한 시기)의 유물산포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발견된 유물로는 무문토기편과 방추자, 어망추의 토제유물과 마제석부, 석착 등의 석제유물이 있다.
동명리에는 월계 진좌수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백20여년전에 태어난 명의로, 의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신의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 마을 원로인 양만생옹은 현재 한림정수장 옹포천 바로 서쪽에 그가 기거했던 곳이 남아 있다고 전했으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진좌수에 대한 조명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옹포천 상류에는 제주도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명월대와 팽나무군락지가 있다.
이 하천의 명성을 더욱 빛내주는 명소들이다.
제주도기념물 7호인 명월대(明月臺)는 조선조말 이 지방 유림들이나 시인 묵객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예전 반촌(班村)인 이 마을은 맑고 고운 시냇물과 더불어 명월대가 한결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물이 거의 말라 아쉬움을 주고 있다.
대(臺)는 마을을 끼고 있는 명월천 하상 중앙에 팔각형의 석축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에 원형의 반석을 만들었다.
명월대 바로 아래에는 석교가 있는데 지난 85년 태풍 `키트'로 유실돼 복원됐다.
명월대는 하천 양쪽에 길게 늘어진 팽나무군락과 어우러져 더욱 일품이다.
명월 팽나무군락지에는 수백년생 팽나무 60여 그루와 푸조나무, 산유자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노거수가 밀집해
있어 웅장한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팽나무는 제주도내 오랜 마을에는 정자목(亭子木)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만 명월의 팽나무는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명월대와 팽나무 군락지의 수려한 경관은 옹포천의 대대적인 정비공사로 그 명성이 바래지고 있다.
옹포천은 팽나무군락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구간을 정비, 하천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당국은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주변 농경지와 가옥침수를 예방하고 재해위험지구의 민원을 해소하려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대대로 이어져온 하천이 송두리째 바껴버린 모습을 후세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하천을 자원으로 인식하지 못한 선대들의 잘못을 호되게 질책하지는 않을까.
* 출처 : 한라일보 대하기획 '한라산학술대탐사' 제1부/ 생명의 근원, 하천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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