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 / 김동인
노총각 M이 혼약을 하였다.
우리들은 이 소식을 들을 때에 뜻하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M은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세태가 갑자기 변하면서 혹은 경제문제 때문에,
혹은 적당한 배우자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단지 조혼(早婚)이라 하는 데 대한 반항심 때문에,
늦도록 총각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아 가기는 하지만,
서른두 살의 총각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아직껏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채근 비슷이, 결혼에 대한 주의를 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M은 언제나 그런 의론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는 매우 흥미를 가진 것이 분명한데) 겉으로는 고소로써
친구들의 말을 거절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M이 우리의 모르는 틈에 어느덧 혼약을 한 것이외다.
M은 가난하였습니다.
매우 불안정한 어떤 회사의 월급쟁이였습니다.
이 뿌리 약한 그의 경제상태가 그로 하여금 늙도록 총각으로 지내게 한 듯도 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친구들은 M의 총각생활을 애석히 생각하여 장가들기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뿐은 M이 장가를 가지 않는 데 다른 종류의 해석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의사라는 나의 직업이 발견한 M의 육체적의 결함―--- 이것 때문에 M은 서른이 넘도록 총각으로 지낸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M은, 학생시대부터 대단한 방탕생활을 하였습니다.
방탕이래야 금전상의 여유가 부족한 그는, 가장 하류에 속하는 방탕을 하였습니다.
오십 전 혹은 일 원만 생기면, 즉시로 우동집이나 유곽으로 달려가던 그였습니다.
체질상, 성욕이 강한 그는, 그 불붙는 성욕을 끄기 위하여 눈앞에 닥치는 기회는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만날지라도, 음식을 한턱하라기보다 유곽을 한턱하라는 그였습니다.
“질(質)로는 모르지만, 양(量)으로는 세계의 누구에게든 그다지 지지 않을 테다.”
관계한 여인의 수효에 대하여 이렇게 발언하기를 주저치 않으리만치,
그는 선택(選擇)이라는 도정을 밟지 않고 ‘집어세었’습니다.
스물서너 살에 벌써 이백 명은 넘으리라는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서른 살 때는 벌써 괴승(怪僧) 신돈(辛旽)이를 멀리 눈 아래로 굽어보았을것입니다.
그런지라, 온갖 성병(性病)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술이 억배요, 그 위에 유달리 성욕이 강한 그는, 성병에 걸린 동안도 결코 삼가지를 않았습니다.
일년 삼백육십여 일 그에게서 성병이 떠나 본 적은 없었습니다.
늘 농이 흐르고, 한 달 건너큼 고환염(睾丸炎)으로써,
걸음걸이도 거북스러운 꼴을 하여 가지고 나한테 주사를 맞으러 오고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십 전, 혹은 일 원만 생기면 또한 성행위를 합니다.
이런지라 무론 그는 생식능력이 없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을 잘 아는 나는, M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를 여기다가 연결시켜 가지고, 그의 도덕심(?)에 동정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일생을 빈곤한 가운데서 보내고, 늙은 뒤에도 슬하도 없이 쓸쓸하게 지낼 그,
더구나 자기를 봉양할 슬하가 없기 때문에, 백발이 되도록 제 손으로 이 고해를 헤엄치어 나갈 그는,
과연 한 가련한 존재이겠습니다.
이렇던 M이 어느덧 우리의 모르는 틈에 우물쭈물 혼약을 한 것이외다.
하기는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은 뒤에, 혼자서 신간 치료보고서를 읽고 있을 때에 M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어두운 얼굴로서,
내가 묻는 이야기에도 그다지 시원치 않은 듯이 입술엣대답을 억지로 하고 있다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습니다.
“남자가 매독을 앓으면 생식을 못 하나?”
“괜찮겠지.”
“임질은?”
“글쎄, 고환을 오카사레루(침범당하다)하지 않으면 괜찮어.”
“고환은 --- 내 친구 가운데 고환염을 앓은 사람이 있는데, 인제는 생식을 못 하겠다고 비관이 여간이 아니야.
고환을 오카사레루하면 절대 불가능인가? 양쪽 다 앓았다는데…….”
“그것도 경하게 앓았으면 영향 없겠지.”
“가령 그 경하다 치면, 내가 앓은 게 그게 경한 편일까, 중한 편일까?”
나는 뜻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중하기도 그만치 중하게 앓은 뒤에,
지금 그게 경한 게냐 중한 게냐 묻는 것이 농담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으므로……
M의 얼굴은 역시 무겁고 어두웠습니다.
무슨 중대한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눈을 푹 내리뜨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본 뒤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주 경한 편이지.”
이렇게 대답하여 버렸습니다.
“경한 편?”
“그럼.”
이리하여 작별을 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면 그 저녁의 그 문답이 오늘날의 그의 혼약을 이루게 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
M이 혼약을 하였다는 기보(奇報)를 가지고 온 것은 T라는 친구였습니다.
그때는 마침 (다 M을 아는) 친구가 너덧 사람 모여 있을 때였습니다.
“골동(骨董) 국보 하나 없어졌다.”
누가 이런 비평을 가하였습니다.
나는 T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연애로 혼약이 된 셈인가요?”
“연애? 연애가 다 무에요. 갈보 나까이밖에는 여자라는 걸 모르는 녀석이, 어디서 연애의 대상을 구하겠소?”
“그럼 지참금(持參金)이라도 있답디까?”
“지참금이란 뉘 집 애 이름이오?”
나는 여기서 이 혼약에 대하여 가장 불유쾌한 한 면을 보았습니다.
삼십이 넘도록 총각으로 지낸 그로서, 연애라 하는 기묘한 정사 때문에 그 절(節)을 굽혔다면,
그것은 도리어 축하할 일이지 책할 일이 아니외다.
지참금을 바라고 혼약을 하였다 하여도, 지금의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로서,
(더구나 그의 빈곤을 잘 아는 처지인지라) 크게 욕할 수가 없는 일이외다.
그러나 연애도 아니요, 금전문제도 아닌 이 혼약에서는, 가장 불유쾌한 한가지의 결론밖에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나는 가장 불유쾌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유곽에 다닐 비용을 경제하기 위하여 마누라를 얻는 셈이구료.”
이 혹평(酷評)에 대하여는 T는 마땅치 않다는 듯이 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혹언할 것도 아니겠지요.
M도 벌써 서른두 살이든가, 세 살이든가, 좌우간 그만하면 차차로 자식도 무릎에 앉혀 보고 싶을 게고,
그렇다고 마땅한 마누라를 선택할 길이나 방법은 없고 ....”
“자식? 고환염을 그만침이나 심히 앓은 녀석에게 자식? 자식은 ....”
불유쾌하기 때문에 경솔히도 직업적 비밀을 입 밖에 내인 나는 하던 말을 중도에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 말까지는 도로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M의 생식능력에 대하여 사면에서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나는, 그 말을 돌려 꾸미기에 한참 애를 썼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혹은 M은 생식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찰을 안 해본 바이니까,
혹은 또한 생식능력이있을지도 모른다.
M이 너무도 싱거운 혼약을 한 데 대하여 불유쾌하여 그런 혹언은 하였지만 그 말은 취소한다.
이러한 뜻으로 꾸며 대었습니다.
그리고 그 좌석에 있던 스무 살쯤 난 젊은이가,
“외려 일생을 자식 없이 지내면 편치 않아요?”
이러한 의견을 내이는 데 대하여,
‘젊은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혈속의 애정’이라는 문제와,
그 문제를 너무도 무시하는 이즘의 풍조에 대한 논평으로 말머리를 돌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M은 몰래 결혼식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친구들로서 M의 결혼식의 날짜를 미리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모두들 제각기 하는 소위 신식 혼례식을 하지 않고, 제 집에서 구식으로 하였습니다.
모 여고보 출신인 신부는 구식 결혼식이 싫다고 하였지만, M이 억지로 한 것이라 합니다.
이리하여 유곽에서는 한 부지런한 손님을 잃어버렸습니다.
*
“독점이라 하는 건 참 유쾌하거든.”
결혼한 뒤에 M은 어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합니다.
비록 연애로써 성립된 결혼은 아니지만, 그다지 실패의 결혼은 아닌 듯하였습니다.
오십 전, 혹은 일 원의 돈을 내어던지고 순간적 성욕의 만족을 사던 이 노총각이,
꿈에도 생각지 못할 독점을 하였으매, 그의 긍지가 작지 않았을 것이외다.
연애결혼은 아니었지만 결혼한 뒤에 연애가 생긴 듯하였습니다.
언제든 음침한 기분이 떠돌던 그의 얼굴이, 그럴싸해서 그런지 좀 밝아진 듯하였습니다.
“복받거라.”
우리들, 더구나 나는 그들의 결혼을 심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낱 M의 성행위의 기구로 M과 결합게 된 커다란 희생물인 그의 젊은 아내를 위하여,
이것이 행복된 결혼이 되기를 축수하였습니다.
동기는 여하튼 결과에 있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라.
너의 아내로서, 한개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여라.
어머니로서의 즐거움을 맛볼 기회가 없는 너의 아내에게,
그 대신 아내로서는 남에게 곱 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여라.
M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진심으로 이렇게 축수하였습니다.
신혼의 며칠이 지난 뒤부터는 M이 자기의 젊은 아내를 학대한다는 소문이 조금씩 들렸습니다.
완력을 사용한단 말까지 조금씩 들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는 그다지 크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문이 귀에 들어 올 때마다, 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마신(魔神)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되풀이하여보고
하였습니다.
어떤 어부가 그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그물을 끄을어 올리니까 거기는 고기는 없고, 그 대신, 병(甁)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병은 마개가 닫혀 있고, 그 위에 납(鉛)으로 굳게 봉함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어부는 잠시 주저한 뒤에 그 병의 봉함을 뜯고 마개를 뽑아 보았습니다.
즉, 병에서는 한 줄기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 그 연기는 차차 뭉쳐서 거기는 커다란 마신이 나타났습니다.
“나를 이 병 속에 감금한 것은 선지자 솔로몬이다.
이 병 속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스스로 맹서하였다.
백 년 안에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거대한 부(富)를 주겠다고.
그리고 백 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맹서했다.
인제 다시 백 년 안으로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 세상에 있는 보배를 다 주겠다고.
그리고 헛되이 백 년을 더 기다린 뒤에, 백 년을 더 연기해서 그 백 년 안에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와 영화를 주겠다고 ....
그러나 그 백 년이 다 지나도 역시 구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맹서했다.
인제 누구든지 나를 구해 주는 놈이 있거든 당장에 그놈을 죽여서 그새 갇혀 있던 그 분풀이를 하겠다고.”
이것이 병 속에서 나온 마신의 이야기였습니다.
M이 자기의 젊은 아내를 학대한다는 소문이 들릴 때에,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삼십이 지나도록 총각으로 지낸 그 고통과 고적함에 대한 분풀이를 제 아내에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실컷 학대해라 실컷 학대해라, 더욱 축수하였습니다.
*
M이 결혼한 지 일년이 거의 된 어떤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와 나는 어떤 곳에서 저녁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이날 유난히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그는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술만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본시 말이 많지 않은 그가 이날은 더욱 입이 무거웠습니다.
몹시 취하여 더 술을 먹지 못하리만치 되어서, 그는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충혈이 된 그의 눈은 무시무시하게 번득였습니다.
“여보게, 여보게, 속이지 말구 진정으로 말해 주게. 내게 생식능력이 있겠나?”
“글쎄, 검사를 해봐야지.”
나는 이만치 하여 넘기려 하였습니다.
“그럼 한번 진찰해 봐주게.”
“왜 갑자기.... ”
그는 곧 대답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려던 말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술을 한잔 먹은 뒤에 눈을 푹 내려뜨며 말했습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내게 만약 생식능력이 없다면 저 사람(자기의 아내)이 불쌍하지 않나.
그래서, 없는 게 판명되면, 아직 젊었을 때에 헤져서 저 사람이 제 운명을 다시 개척할‘때’를 줘야지 않겠나?
그래서 말일세.”
“진찰해 보아야지.”
“그럼 언제 해보세.”
그 며칠 뒤에 나는 M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검사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M은 그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M의 아내는 임신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M이 검사하겠다던 마음을 짐작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날의 제 말마따나 ‘아내의 장래를 위하여’ 하려는 것이 아니고,
아내에게 대한 의혹 때문에 하여 보려는것일 것이외다.
자기도 온전히 모르는 바는 아니로되,
십중팔구는 자기는 생식불능자일 텐데 자기의 아내는 임신을 한 것이외다.
생각하면 재미있는 연극이외다.
생식능력이 없는 M은, 그런 기색도 뵈지 않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M에게로 시집을 온 새 아내는 임신을 하였습니다.
제 남편이 생식불능자인 줄을 모르는 아내는, 뻐젓이 자기의 가진 죄의 씨를 M에게 자랑하고 있을 것이외다.
일찍이 자기가 생식불능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점을 밝혀 주지 않은 M은,
지금 이 의혹의 구렁텅이에서도 제 아내를 책할 권리가 없을 것이외다.
그가 검사를 하겠다 하나, 검사를 하여서 자기가 불구자인 것이 판명된 뒤에는 어떤 수단을 취할는지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의 음행을 책하자면, 자기의 사기적 행위를 폭로시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외다.
그것을 감추자면, 제 번민만 더욱 크게 할 것이외다.
어떤 날 그는 검사를 하자고 왔습니다.
그때 마침 환자가 몇 사람 밀려 있던 관계상, 나는 그를 내 사실에 가서 좀 기다리라 하고, 환자 처리를 다 하고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튿날 그는 다시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도 사실 어찌하여야 할지 똑똑히 마음을 작정치 못했던 것이외다.
검사한 뒤에 당연히 사멸해 있을 생식능력을, 살아 있다고 하자니,
그것은 나의 과학적 양심이 허락지 않는 바외다.
그러나 또한 사멸하였다고 하자니, 이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망쳐 버리는 무서운 선고에 다름없습니다.
M이라 하는 정당한 남편을 두고도 불의의 쾌락을 취하는 M의 아내는 분명히 책받을 여인이겠지요.
그러나 또한 다른 편으로 이 사건을 관찰할 때에,
내가 눈을 꾹 감고 그릇된 검안을 내린다면 그로 인하여,
절대로 불가능하던 M이 슬하에 사랑스런 자식(?)을 두고 거기서 노후의 위안도 얻을 수 있을 것이요,
만사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외다.
내가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갈랫길에 서서,
나는 어느 편 길을 취하여야 할지 판단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사오 일 뒤에 저절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침울한 얼굴로 찾아온 M에게 대하여 나는 의리상,
“오늘 검사해 보자나?”
하니깐 그는 간단히 대답하였습니다.
“벌써 했네.”
“응? 어디서?”
“P병원에서.”
“그래서 결과는?”
“살았다데.”
“ ? ”
나는 뜻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의외의 대답을 들은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살았다데’ 하는 그의 음성이 너무 침통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동안 나는 내가 하마터면 질 뻔한 괴로운 임무에서 벗어난 안심을 느끼는 동시에,
P병원에서의 검안의 의외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눈을 만난 M의 눈은 낭패한 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눈으로 그가 방금 한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럼 그는 왜 거짓말을 하였나.
자기의 아내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상과 및 제 마음을 속여 가면서라도 자식을 슬하에 두어 보기 위하여?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무겁고 침울한 음성이었습니다 .
“여보게, 자네 이런 기모치(기분) 알겠나?”
“어떤?”
그는 잠시 쉬어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받았네.
받은 즉시로 나와서 먹고 쓰고 사고, 실컷 마음대로 돈을 썼네.
막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세.
지갑 속에 돈이 몇 푼 안 남아 있을 것은 분명해.
그렇지만 지갑을 못 열어 봐.
열어 보기 전에는 혹은 아직은 꽤 많이 남아 있겠거니 하는 요행심도 붙일 수 있겠지만,
급기 열어 보면 몇 푼 안 남은 게 사실로 나타나지 않겠나?
그게 무서워서 아직 있거니, 스스로 속이네그려.
쌀도 사야지. 나무도 사야지. 열어 보면 그걸 살 돈이 없는 게, 사실로 나타날 테란 말이지.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지갑에서 손을 멀리하고 제 집으로 돌아오네.
그 기모치 알겠나?”
나는 머리를 끄덕이었습니다.
“알겠네.”
그는 다시 입을 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나는 알았습니다.
M은 검사도 하여 보지 않은 것이외다.
그는 무서워합니다.
그는 검사를 피합니다.
자기의 아내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상식으로 판단하여 무론 남편의 아이일 것이외다.
거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을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외다.
의심을 품을 필요도 없는 것이외다.
왜? 여인이 남편을 맞으면 원칙상 임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깐.
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일을 의심하다가 향기롭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면 이것은 자작지얼(自作之孽)로서
원망을 할 곳이 없을 것이외다.
벌의 둥지를 건드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외다.
십중팔구는 향기롭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검사’를 M은 회피한 것이외다.
절망을 스스로 사지 않으려, 그리고 번민 가운데서도 끝끝내 일루의 희망을 붙여 두려,
M은 온전히 ‘검사’라는 위험한 벌의 둥지를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이외다.
그리고 상식으로 판단할 수있는 (제 아내의 뱃속에 있는) 자식에게 대하여,
억지로 애정을 가져 보려 결심한 것이외다.
검사를 하여서 정충이 살아 있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사멸하였다면 시재 제 아내와의 새에 생길 비극과 분노와 절망은 둘째 두고라도,
일생을 슬하에 혈육이 없이 보내고,
노후에 의탁할 곳을 가질 가능성조차 없는 절망의 지위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외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외다.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을 거부하고까지 이런 모험행위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외다.
이리하여 그는 검사는 단념했지만, 마음에 있는 의혹뿐은 온전히 끄지를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그 뒤에 어떤 날, 그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식은 꼭 제 애비를 닮는다면 좋겠구먼…….”
거기 대하여 나는 닮는 예를 여러 가지로 들어서 말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여인이 애를 배면 걱정일 테야.
아버지나 친할아비를 닮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외편을 닮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닮지 않으면 걱정이 아니겠나. 그저 애비를 닮아야 제일이야, 하하하.”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글쎄 말이지, 내 전문이 아니니깐 이름은 기억 못 하지만, 독일 소설에 이런 게 있지 않나.
「아버지」라나 하는 희곡 말일세. 자식을 낳았는데 제 자식인지 아닌지 몰라서 번민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지?
그것도 아버지만 닮으면 문제가 없겠지.”
“아― 아, 다 구찮어.”
*
M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반 년쯤 자랐습니다.
어떤 날 M은 그 아이를 몸소 안고 병을 뵈러 나한테 왔습니다.
기관지가 조금 상하였습니다.
약을 받아 가지고도 그냥 좀 앉아 있던 M은 묻지도 않는 말을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놈이 꼭 제 증조부님을 닮았다거든.”
“그래?”
나는 그의 말에 적지 않은 흥미를 느끼면서 이렇게 응했습니다.
내 눈으로 보자면, 그 어린애와 M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바인데,
그 애가 M의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은 기이하므로서……
어린애의 진편과 외편의 근친(近親)에서 아무도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M의 친척은,
하릴없이 예전의 죽은 조상을 들추어낸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애에게, 커다란 의혹과 그보다 더 커다란 희망(의혹이 오해였던 것을 바라는)은,
M으로 하여금 손쉽게 그 말을 믿게 한 모양이었습니다.
적어도 신뢰하려고 마음먹게 한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자기의 말에 흥미를 가지는 것을 본 M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가 예비하였던 둘쨋말을 마침내 꺼내었습니다.
“게다가 날 닮은 데도 있어.”
“어디?”
“이보게.”
M은 어린애를 왼편 팔로 가만히 옮겨서 붙안으면서, 오른손으로는 제 양말을 벗었습니다.
“내 발가락 보게. 내 발가락은 남의 발가락과 달라서 가운데 발가락이 그중 길어.
쉽지 않은 발가락이야. 한데...”
M은 강보를 들치고 어린애의 발을 가만히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M은 열심으로, 찬성을 구하는 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닮은 곳을 찾아보았기에 발가락 닮은 것을 찾아내었겠습니까.
나는 M의 마음과 노력에 눈물겨워졌습니다.
커다란 의혹 가운데서, 그 의혹을 어떻게 하여서든 삭여 보려는 M의 노력은,
인생의 가장 요절할 비극이었습니다.
M이 보라고 내어놓은 어린애의 발가락은 안 보고 오히려 얼굴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그리고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의혹과 희망이 섞인) 그의 눈을 피하면서 돌아앉았습니다.
* 1932년 1월 『동광(東光)』 29호에 발표.
****************
작품에 대한 단상
작품 속 M은 비난과 질타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타고난 기질인지 아니면 남성우월주의인지 모르지만,
그의 행실은 배우자가 없는 미혼이라 할지라도 감안해줄 여지가 없다.
돈만 생기면 여자를 찾고 나이 들어 돈이 궁해지니 억지로 결혼상대를 찾다니 이렇게 황당할데가 없다.
M의 가증스러움에 열불이 나는데,
M의 부인 임신소식과 함께 그 아이가 M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예측이 흘러 나왔다.
그동안 죄의식없이 자신의 몸을 본능에 맡겨버린 M에게 내린 형벌이겠지만,
얼마나 부인에게 상처를 줬을까 생각하니 더 미워졌다.
M이 생식불능자로 확인된 것도 아닌데 M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검사받기를 거부하다가,
아이를 받아들인다.
사실 M의 괴로움은 당연한 거지만 영문도 모르는 부인이 받았을 비난과 지탄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다.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남의 자식을 아들로 받아들이는 M에 대해,
작품 속 '나'와 독자들은 M에 대해 동정심을 가질지 모르나 M의 고통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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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봄봄'(1935) / 김유정 (0) | 2022.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