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s Offenbach
Les Larmes de Jacqueline Op. 76 No. 2
'Jacqueline's Tears'
(쟈클린의 눈물)
Jacques Offenbach
(1818-1880)
* * *
오펜바흐가 작곡한 Les Larmes de Jacqueline(Jacqueline's Tears, 재클린의 눈물)
Op.76 No. 2"는 그의 생애에 미발표곡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오펜바흐의 곡을 젊은 첼로 연주자 토마스 베르너(Thomas Werner.1951~ )가
찾아내어 'Jacqueline's Tears(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붙여 연주하였다.
안타깝게 요절한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피레 (Jacqueline Mary du Pré)를 애도하기
위하여 재클린에게 바친 토마스 베르너의 연주곡이다.
19세기에 오펜바흐가 힘들고 어려웠던 인생의 시기에 슬픔에 젖어 애달픈 마음에 젖어
만들었던 그 곡이 20세기에 연주 되었고 재클린과 이렇게 인연이 닿게 되었다.
이 곡은 굵고 묵직한 저음 으로부터 서서히 솟아 오르는 첼로의 슬픔의 선율,
여리면서도 세차게 끊어질듯 이어지는 세찬 고음으로 전율을 일으키고,
슬픔의 격정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아픔으로 몸서리치게 한다.
Jacqueline Mary du Pré (1945 –1987)
유대계 영국인.
옥스포드대학 교수 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의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4세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
1961년 16세의 나이에 런던의 Wigmore Hall에서 공식 데뷰를 한다.
그녀는 Handel, Brahms, Debussy, Bach 등을 연주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1962년에는 Rudolf Schwarz가 지휘하는 BBC Symphony Orchestra와 협연을 시작으로
새로운 데뷔를 한다.
1976년, 31세에 영국의 OBE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 대영제국
훈장 4등급)를 수여 받는다.
1945년, 재클린은 야망있는 피아니스트이자 Chamber orchestra 지휘자인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과 결혼.
그녀는 결혼을 위해 개신교에서 유태교로 개종을 하였고,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서 결혼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두 부부의 연주 여행은 가는 곳마다 성공적이었으나,
남편의 야망은 그녀를 많이 힘들게 하였고, 그녀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한 것 보다는 그녀의 천재성만을 사랑하였다.
그는 그녀의 몸이 점점 굳어져갈 때 그녀의 기량 하락을 지적하며 몰아 붙였다고 한다.
그녀는 1973년, 28세의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해 연주활동을 그만 두게 된다.
그러다가 내연녀가 생긴 남편은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녀는 남편과 첼로를 동시에 잃게 된다.
병으로 재클린의 몸은 서서히 굳어가며 14년의 투병생활을 하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간다.
남편은 14년 동안 한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한다.
198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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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Larmes du Jacqueline
(자클린의 눈물)
J. Offenbach
첼로 곡으로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첼로 독주곡이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맛이 나는 곡인데,
묵직한 저음 위로 끓어오르는 슬픔의 선율이
여리게 혹은 세차게 끊일 듯 이어질 듯 반복되는가 하면,
가슴 저미는 애잔한 슬픔의 선율이 잔잔한 호수처럼 흐른다.
첼로 장한나
애잔한 첼로음이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악,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 이며 첼리스트이기도 한 Offenbach 의 '재클린의 눈물'
( 'Les larmes de Jacqueline')은 드라마 삽입곡으로도 사용된 뒤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집약해 놓은 듯한 이 곡, '재클린의 눈물'의 재클린은 실존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첼로 연주에 천재성을 보여 장차 뛰어난 거장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기존 고전음악 판도에서 팝계에서의 비틀즈 폭풍과 비교되는 거대한
새바람을 일으켰던 'Jacqueline Du Pre'(재클린 뒤 프레)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며 50여장의 앨범을 내는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불치병에 걸려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첼로와 헤어져야 했으며,
사랑했던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
그야말로 비련의 천재 첼리스트라고 한다.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
어릴 때부터 "거장급의 천재 소녀", "우아한 영국 장미"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을 하였으나,
그러나 그녀의 전성기는 너무나도 짧아서,
스물여섯 살 한창 나이에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다중경화증 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음악계를 떠난다.
이후 그녀는 4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을 지켰다.
14년간의 투병 생활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첼로로부터도,
사랑했던 남편에게서도 버림받으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비련의 첼리스트..
그렇다면, 이 불쌍한 천재 첼리스트를 버린 남자가 누구인가 !
재클린이 희귀병에 걸려 14년이나 투병하는 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이 냉혈한,
재클린의 남편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유대인인 세계적인 지휘자, 유명 피아니스트이며,
중동 문제를 음악-예술로 풀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반유대주의자인 바그너의 오페라 'Tristan und Isolde'(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이스라엘
심장부에서 공연하여 이스라엘 의회에서 탄핵까지 당한,
용기와 소신의 행동하는 예술가 라고 칭송받는..
Daniel Barenboim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재클린 뒤 프레는 영국 출신으로 바렌보임과 결혼하기위해 영국 국적까지 버렸다.
그러나 희귀병에 걸려 투병생활에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졌다.
바렌보임은 재클린 뒤 프레를 병상에 홀로두고 연주여행을 떠났으며,
그녀가 죽고 난 다음 단 한번도 무덤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렌보임이 사랑한건 그녀의 재능이 아니었을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죽은 그녀가 그토록 아꼈던 첼로 "다비도프 스트라디 바리우스"는 지금 누구 손에 있는지
한때 세간의 화재가 된적이 있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아랍 오케스트라 기금을 위해 경매에 내놓았단 얘기도 있고..
지금은 "요요마"가 갖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거장들의 모든 첼로곡은 다 연주했을 터이나,
정작 재클린 본인은 자신을 위한 이곡을 연주는 커녕, 들어보지도,
이 곡의 존재도 모르고 떠났다고 하니...
이 곡은 'Offenbach' 가 '재클린 뒤 프레'에게 헌정한 곡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나,
사실은, 'Offenbach'의 작품 목록에도 없었던 곡이었을 뿐더러,
따라서 그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곡이었다고 한다.
또한 'Offenbach'와 '재클린 뒤 프레'는 동시대의 인물도 아니므로 좀 황당한 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Thomas Werner' (토마스 베르너)라는 젊은 첼리스트가 'Offenbach' 사후
우연한 기회에 그의 미발표 악보를 찾아내게 되었고,
'Thomas werner' 자신이 '재클린'의 죽음을 애도하여 "재클린의 눈물"이라 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결국 발굴자 자신의 애도 헌정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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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Offenbach' 오펜바흐 (1819~1880)
프랑스 제2제정시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의 작곡가.
오펜바흐는 유태인으로, 1883년 14세 때에 파리로 나가 파리 음악원에서 첼로를 배웠다.
관현악단과 오페라 코미크에 근무하다가 알레비에게 작곡을 배웠다.
1855년에는 스스로 극장을 경영하여,
'천국과 지옥(지옥의 오르페우스)' '아름다운 엘렌' '제롤스탱 공작부인' 등의 대표작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음악 특징은 그것 자체로서 이해하기 쉬운 화성·선율·리듬·악기법을 여러가지로
맞추고 바꾸어서 큰 변화를 얻는 데에 있다.
특히 리듬은 독특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왈츠와 캉캉 따위 무곡도 오페라 부파 속에 편곡
되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 풍자를 비롯한 ‘해학’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국과 지옥》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의하여 제2제정의 위정자와 사회를 풍자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C.W.글루크의 오페라 《오 르페오와 에우리디케》도 음악적으로 비꼬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유작 《호프만 이야기》(81)는 순수한 오페라 코미크이다.
오펜바흐의 영향은 F.주페, J.슈트라우스(아들), 영국의 W.S.길버트, A.S.설리번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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