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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8 월 .

에세이 - '여름 끝에 서서' / 박영희

아즈방 2024. 8. 29. 13:33

 

여름 끝에 서서 / 박영희

 

도무지 식을 줄 모르던 무더위도 조금씩 떠날 채비를 하며 어느새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아침마다 걷는 숲길에 달개비꽃 나팔꽃이 한창이다.

작은 풀 꽃사이로 이만한 계절에 누리던 어린 날 나의 가을을 그려본다.

해마다 이맘때면 등 너머 마을로 가는 길섶에, 뙈기밭 두둑에 구절초 꽃이 무리 지어 피어났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 오롯이 피어있는 구절초꽃에는 검게 탄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들길을 가다 홀로 핀 구절초 꽃을 만날 때면 가난하던 어머니의 고뇌와 자식을 향해 애틋했던 당신의 사랑이 여울져 온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우리 집은 바깥마당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이 구절초가 널려 있었다.

소를 키웠던 빈 외양간과 여물통에 그리고 담장 위와 뜨락과 장독대까지 울안 가득했던 늦여름의 구절초, 

불현듯 쓰디쓴 구절초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듯하다.

단아하신 어머니가 허름한 행색을 하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당시 어른들은 여수 굴 마뜸 실 장송 고개 창말 이라는 산 동네를 얘기했었다.

먼 산으로 구절초를 뜯으러 차를 타러 가시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온종일 산속을 헤매다 땅거미가 지고 어두워야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신작로까지 어머니를 마중 나가셨다.

마침내 어머니와 구절초 자루를 싣고 산모퉁이를 지나오시던 부모님의 일상이 저만치 보일 듯이 떠오른다.

어머니보다 더 큰 구절초 자루는 옆구리가 터지고 찢어져 성한 데가 없었다.

마치 고단한 삶을 사느라 몸부림치던 어머니의 몸짓처럼,

이튿날 자루를 풀어헤치면 구절초들이 꾸역꾸역 화기를 토하며 구겨진 채로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나 뜨거운 생과의 사투였을까?

구절초 자루에서 나던 어머니의 체취와 나에게 들려주던 산속의 고독이,

아니 어머니의 뭉클한 사랑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나는 아직 조막만 한 손으로 어머니 곁에서 구절초를 한 움큼씩 바닥에 챙겨 놓는다.

아버지는 한갓 한갓 짚으로 엮어 헛간 서까래에 촘촘히 걸었다.

지게에도 삽자루 끝에도 집안 곳곳에 구절초를 널어 둔 풍경이 그 시절엔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으나 지금은 선물로 주신 한 폭의 수묵화다.

어머니한테서는 쓰디쓴 구절초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아홉 번을 꺾이며 자란다는 구절초는 생의 마디마디 쓰리고도 아팠을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격변기를 사느라 질곡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부모님은 희로애락을 짊어지고 장고개를 넘었다.

한기가 도는 계절, 추레한 모습으로 시장을 누비며 구절초로 행상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하던 내가 두고두고 미안하다.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선산으로 향했다.

산소 옆에 구절초가 무리 지어 피었다.

어머니를 기억하며 오빠가 몇 그루 심었다고 한다.

하늘거리는 꽃을 보니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갑다.

어머님 체취인가? 구절초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지나간다.

처절한 삶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생의 쓴 물을 단물로 우려내시던 나의 어머니는, 고매한 나의 스승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