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歲月은 지금/8 월 .

散文 - '칠석과 짚신장수'

아즈방 2024. 8. 10. 15:05

 

칠석과 짚신장수

                 글  : 사투리

                                                         

옥황상제의 사위로 하늘나라에서 호강스럽던 목동이 ‘짚신장수 영감’으로 둔갑했을 땐 분명히 어떤 내력이 있음 직한데 그 함수관계가 아리송해서 안타깝다.

여기서 ‘짚신장수 영감’이란 경주지역 사투리로 ‘견우(牽牛)’를 가리키는 말이다.

 

칠석날은 배달겨레의 오랜 명절이었다.

현란한 춤과 노래가 뒤범벅된 외래형 밤문화가 여과 없이 유입되는 통에 하늘을 우러러 별을 지키던 전통이 퇴락해버린 까닭으로 별자리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진 것이 고약하다.

당신은 견우와 직녀성을 구별할 수 있으신가?

칠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애절한 만남의 날이다.

치술령의 기다림으로 눈이 짓무른 채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된 박 재상 부인에겐 만날 날에 대한 기약이 없었지만, 견우와 직녀에겐 일 년에 단 하루일지라도 만날 기약과 희망이 있어왔지 않는가?

그때쯤 털갈이를 하느라 대머리가 된 까치를 두고, 우리 할머니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놓느라고 하늘로 올랐다가 햇볕이 뜨거워 머리가 벗겨졌노라’는 해석을 곁들여 손끝을 들어 꼬맹이들에게 견우와 직녀의 별자리를 가르쳐 왔다.

 

칠석날에 대한 전설은 중국과 한국 및 일본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으되,

경주에서처럼 견우의 이름이 턱없이 ‘영감’으로 바뀐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이 전설이 깔려 있는 동양 3국 어느 곳에서도 견우는 이팔청춘인데 반해,

유독 경주에서만은 ‘짚신장수’로 전락한 채 ‘수염에 가지가 벌어진 영감’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희한하달 밖에 없다.

더구나 저 아리땁기 짝이 없던 직녀조차도 경주에서는 ‘수수떡 할멈’으로 폭삭 늙어 있은즉, 그 까닭이 대체 뭐란 말인가?

보고 싶고 안타까운 기다림에 지쳐 호호백발이 된 할미꽃을 닮았음일까?

우선,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 치고 나이를 먹거나 늙어 가는 모양을 누구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그러하고, ‘장화홍련전’에도 그러했는데, 유독 견우직녀만 꽃답던 시절을 몽땅 흘려보내고 어째서 호호백발로 늙어버렸단 말일까?

아무리 사투리라도 그렇지…….

 

짚신 얘기가 나온 김에 ‘짚신에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나 한 번 살펴보자.

여기에 비길 시쳇말은 ‘짚신에도 노하우가 있다’라는데 짚신에 노하우라니?

가난한 부자(父子)가 짚신을 삼아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아비가 삼은 짚신은 시장에 갖고 나가기만 하면 초장에 후딱 팔리는데 반해,

아들이 삼은 건 영 팔리지를 않다가 파장이 다 되어서야만 겨우 그것도 헐값에 팔리더라는, ‘짚신장수 설화’가 있다.

아들은 아비의 짚신이 왜 좋은 값에 금방 팔리는지를 알지 못하여 매양 그 비결이 뭐냐고 묻고, 또 물으며 졸랐을 밖에…….

그런데도 그 융통성 없던 영감은 아들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질 않고 계속 버티더니만, 임종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단 한 마디, “거풀”하고는 숨을 거두더라 했다.

여기서 ‘거풀’이란 짚신을 삼을 때 너덜너덜하게 달려있는 ‘짚거웃’을 이름이다.

말을 바꾸면 ‘거풀’을 말끔히 따 주는 것이 짚신을 삼는 노하우라는 것이다.

즉, 뒷손질이 깨끗하게 제대로 된 상품이라야만 세계적으로 많은 고객의 눈길을 끈다는 얘기다.

또한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서거나 마무리를 명확하게 맺고 끊음으로써 뒤끝이 깨끗해야 하는 것이 선진화를 겨냥한 지름길의 하나일 것이다.

 

짚신을 삼는 데는 볏짚이 필요하고, 그 볏짚이 겨레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은즉, 한국에서 볏짚의 중요성은 대단한 것이어서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나라를 지키는 국방상의 보검과도 직결된다.

 

첫째, ‘볏짚’은 우리 겨레의 원초적인 깔게랄 수 있다.

왜냐 하면,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경외롭기에 그 탄생 의식 또한 경건한 것인 바, 우리는 생애 최초의 의식을 짚단 위에서 거행해 내렸던 까닭이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배달겨레는 누구나 어머님 뱃속에서 핏덩이로 땅에 떨어질 때 ‘삼신 짚단’ 위에서 ‘삼’ 즉 탯줄을 갈랐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 아버지도 또한 우리 외외갓댁의 할아버지께서도…….

탄생 의식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병아리 한 마리일지라도 알에서 깨어날 때 우린 그 부리의 끝을 손톱으로 까주었고, 송아지도 태어나기 바쁘게 경건한 마음으로 그 발톱을 까 주는 의식을 치러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짐승들조차도 그러할진데 하물며 사람 속에서 사람의 자식이 나와 고고의 성을 울릴 때 탯줄을 가르는 의식이 어찌 엄숙하지 않을소냐!

젊은이들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키스나 연애쯤은 잘도 하는 모양인데, 탯줄 가르기를 아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자못 궁금하다.

‘산부인과 병원에 가면 된다고? 맞다 병원에 가면 되지, 암 되고말고!

그러나 뜻하지 않게 당신의 여자가 외딴 곳에서 불쑥 아기를 낳았다면 그땐 어떻게 하겠느냐’ 그 말이다.

알면서 안 써먹는 것은 좋으나 도무지 삼 가르기를 모르고 있는 건 수치에 속한다.

그건 아비가 된 남자든 어미가 된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걸 모르면 아비 어미가 될 자격이 없다.

심을 땐 언제고 거두어야 할 땐 나 몰라라?

아기가 태어나면 눈, 코 및 입부터 닦아주고 깨끗한 실로 한 치 간격으로 탯줄의 두 군데를 잘 묶은 다음, 그 중간을 정갈하게 소독한 가위로 자르는 행위를 두고 우리는 ‘삼 가르기’라 한다.

이로써 새 생명은 비로소 엄마와 분리된다.

 

둘째로 볏짚의 효용성은 국방을 위한 보검의 담금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었다.

적군을 향해 선봉장이 휘두르던 최고급 보검(寶劒)을 벼릴 땐 아주 높디높은 고온에서, 이글거리는 ‘짚불’로써 달구고 벼린 다음에야 담금질 했었다니,

볏짚이 차지해 내린 비중은 대단하달 밖에 없다.

 

각설하고, 견우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설화 속의 견우는 하늘에서 소와 말과 양들을 치다가 옥황상제의 사위가 된 행복한 목동이었는데,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천상에서 쫓겨나 서라벌의 왕도인 경주로 흘러온 존재일 법하다.

짐작컨데 그는 추운 북녘 땅의 유목 나라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나선 북방계 이방인일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직녀는 한가위 축제를 향해 칠월 중순부터 팔월 보름까지 한 달 동안 ‘베 짜기’ 시합을 하던 서라벌의 딸이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나락’ 즉 ‘벼’란 식물은 계절풍을 따라 따뜻한 남녘에서 북상해온 남방계일진데, 이들 셋 사이의 관계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즉 추운 북방계 유목 생활을 걷어치운 견우는 남하하여 서라벌에 정착한 다음,

현지에서 얻은 아리따운 직녀와 더불어 벼농사에 재미를 붙였음 직하니,

볏짚으로 신을 삼는 짚신장수가 되었고,

직녀 또한 수수떡 장수로 살림을 불리는 것까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견우는 어쩌다 ‘영감’이 되고 말았을까?

하늘에다 죄를 지어 서라벌로 쫓겨 올 때 삼단 같던 검은머리가,

별을 보고 점을 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세월에 파뿌리로 변했단 말인가?

천상선관(天上仙官)의 피가 섞인 탓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듯 사랑 놀음에 빠져버린 통에, 신라 때의 홍안이 고려 때 청년이다가 조선 왕조시대의 중늙은이를 거치는 천 년 세월에, 그만 ‘영감’이 되고 말았음일까?

아니면 넓디넓은 초원을 종횡무진 말을 달리던 유목민이 정착 농경생활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한 자리에 눌러 앉는 통에 그 뻗어 오르는 역마살을 풀지 못해 지레 늙었음일까?

글쎄, 동방삭이가 아닌 다음에야 젊어질 수가 없는 노릇이매 늙어가는 것이 당연지사일까?

세월의 무상함을 누구에게 원망하랴.

하루를 살아도 재미나게 사는 방도나 스스로 궁리함만 같지 못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