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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8 월 .

에세이 - '견우 길, 직녀 길' / 김동한.

아즈방 2024. 8. 10. 14:30

 

견우 길, 직녀 길 / 김동한

 

그 옛날 하늘나라에는 베를 아주 잘 짜서 '직녀'라고 불리는 옥황상제 따님이 한 분 계셨다.

또 궁중 밖 어느 들판에는 얼굴 잘생기고 풍채 늠름한 헌헌장부가 소를 치며 살고 있었는데, 하늘나라에서는 그 청년을 '견우'라고 불렀다.

어느 초가을 날 궁 밖을 나온 직녀와 소를 몰고 가던 견우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반한 둘이는 한 번 두 번 만나는 횟수가 잦아짐에 따라 하루라도 안 보면 못 견딜 정도의 사이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직녀는 상제님 몰래 궁을 빠져나와 견우에게 시집을 가버렸고,

나중에 이를 아신 상제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둘이를 하늘나라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9만 리 떨어진 별나라로 쫓아내어 버렸다.

그러나 일 년에 딱 한 번 칠월 칠석날은 둘이의 만남을 허락하셨다.

칠월 칠석날 밤 견우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서로 만날 수 있게 수많은 까막까치들이 모여 죽을힘을 다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까막까치가 까맣게 모여 놓은 다리는 그때부터 '오작교'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칠석날 밤 내리는 비는 만나서 기뻐하는 견우직녀의 기쁨의 눈물이라고,

칠석날 밤을 새우고 아침에 내리는 비는 헤어짐을 슬퍼하는 견우직녀의 슬픔의 눈물이라고, 하늘나라 아래 땅 위에 사는 속인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 이런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을 어른들에게 들으며 칠월 칠석 이튿날 아침, 우리 꼬맹이들은 까막까치의 머리털이 무척 궁금했다.

무리 지어 날갯짓을 하며 견우직녀가 밟고 지나가도록 다리가 되어 준, 까막까치가 아니든가!

그 아름다운 일을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였을 까막까치의 머리털이 벗겨졌나 궁금해하며, 까막까치의 머리를 살피곤 했었다.

 

퇴직 후 아파트 관리 일을 하며 지내자니 끼니 때우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다.

우리 집사람은 남들처럼 그렇게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한 아내인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아침 6시쯤 나와 함께 일어나는 아내는 전 날 저녁에 지어놓은 밥에다 국 한 그릇과 간단한 반찬 차려주는 일도 무척 힘겨워한다.

그런 사정이니 어쩔 수 없이 근무 날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게 되고,

점심 먹고 일터로 되돌아갈 땐 저녁에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간다.

어쩌다 여럿이 모여서 점심이라도 먹는 날이면 저녁 도시락은 집사람에게 가져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그리곤 저녁때 시간 맞춰 나가서 집사람에게 도시락을 받아온다.

집사람과 내가 도시락을 주고받는 곳이 내가 일하는 아파트와 우리 집 중간쯤에 있는 대우자동차 앞이다.

우린 서로 도시락을 건네주고 받은 뒤 내일 아침 다시 만나자고 말 없는 약속을 하고, 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타고 왔던 자전거로 아파트로 되돌아오고,

집사람은 타박타박 걸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갈 것이다.

 

집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걷는 길은 대충 이러할 것이다.

집을 나선 집사람은 영주교회 앞을 지나 큰길을 건너 혜경이네 이층집을 지날 것이다.

번개시장 입구에 있는 송림제재소 앞을 지난 집사람은 널따란 길을 따라 죽 걸을 게다.

자작자작 걷던 집사람은 대우자동차 앞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집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오가는 길을 '직녀길'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보니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집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하는 동산타운을 출발해서 전화국 앞을 지나, 궁전맨션 앞 지하보도를 건너 대우자동차 대리점 앞까지 오가는 길을 '견우길'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견우, 직녀는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다지만,

우리 부부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이틀에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견우, 직녀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을까?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어느 고향 친구가 말했다.

늙으면 큰돈 욕심낼 것 없이 그저 동창회 나갈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조금 더 바란다면 이따금 찾아오는 손주들의 고사리 같은 예쁜 손에 사탕 몇 알 쥐여줄 수 있는 돈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내일도 모래도, 또 내년에도, 저 내년에도 이길 좀 더 오래오래 오가며 살아가고 싶다.

우리 부부가 서로 만나기 위해 걷는 이 길~!

온통 휜 머리카락으로 덮여있을 노년의 견우직녀가 노(路) 중에서 만나는 작은 기쁨과 소박한 행복이 좀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핏기 있을 때까지 이길 오가며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신이시여!

저희 내외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게 지금 정도의 건강이라도 지속되게 허락하소서~~~!

(2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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