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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12 월 .

수필 - '네가 과메기로구나' / 김인호

아즈방 2024. 12. 2. 09:35

 

네가 과메기로구나 / 김인호

 

너희들이 꽁치과메기였구나.

덕장에 주렁주렁 한 두름씩 걸려 짭조름한 바람 속을 유영하고 있구나.

청해를 누비며 군무를 추던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 하구나.

너희들은 본디 날렵한 몸매에 감청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깔끔한

신사가 아니더냐.

하지만 설한풍에 휘불리어 낡은 외투를 걸친 초라한 노숙자 같구나.

유리알 눈동자 납덩이가 되어 박혀 있구나.

살을 에는 추위에 악다물었던 입마저 벌어져 가늘고 긴 신음 토해내고 있구나.

 

나는 사열하듯 너희들을 둘러보고 있다.

획일적인 표정, 허망한 눈동자 흙투성이 어설픈 훈련병 같구나.

가스실로 열 지어 들어가는 벌거벗은 유대인들 같구나.

대열사이로 넘실되는 너희들의 푸른 고향이 보이는데, 맑은 눈물이 보이는데.

 

한때 너희들은 해풍 속을 훨훨 나는 갈매기가 되는 것이 꿈이었을 게다.

가끔 갈매기의 흉내를 내며 물위로 튀어 올랐겠지.

하지만 지금 공중에 매달린 기분이 어떠니.

바람을 타는 기분이 어떠니.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리는구나.

이제 풍경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슬픈 운명이구나.

물결을 힘차게 거스르던 지느러미는 무용지물이 되었구나.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니.

노아가 방주를 띄울 때 내렸던 그 엄청난 비,

그 혁명의 비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냐.

물결이 내 몸에 조금만 닫기만 한다면,

다시 한번 온몸을 비틀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삶을 살 것 같은데.

너희들은 잊지 않고 있겠지.

청해를 노닐던 그 때를,

그 자유를 그리고 느닷없이 검은 그물에 걸려 박제된 그 날을.

그 방심의 날을.

 

나는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다.

또 다시 하나, 둘 만나는 과메기 덕장.

점차 뻗두룩해지는 몸을 풀기위한 안간힘인가.

멀리서도 너희들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해안가 선술집에 들렸다.

누른 종이에 ‘과메기 있습니다.’ 라고 적힌 문구가 견장처럼 붙어 있다.

하얀 접시에 대가리와 내장과 뼈가 추려진 얼 말린 과메기 몇 마리가 올려져

나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검게 탄 눈과 내장이 함께 담겨져 왔다면 그 절망의 덩어리를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애착을 버리고 누운 진갈색 살점들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나는 꾸덕꾸덕한 과메기 한 점을 생미역에 싸서 초고추장에 꾹 찍어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과메기는 유연한 몸짓으로 목구멍을 타고 헤엄쳐 들어갔다.

전혀 걸림이 없다.

얼마나 깔끔한 보시인가.

 

내 배 속이 무덤이다.

방형도 장방형무덤도 아니다.

자궁 같은, 고향 같은 무덤이다.

잔에 바다처럼 맑은 소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그리고 염원한다.

이 길이 환생의 길이 되라고,

이 세상에서 과메기가 된 것을 서러워 말라고,

어차피 인간도 죽으면 어두운 땅 속에서 얼리고 풀리는 영원한 과메기가 된다고.

 

인간 세상은 잡고 잡히는 살벌한 곳이다.

나는 졸지에 떼송장이 되어 걸려있는 너희들의 천편일률적인 표정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니 한결 같이 황금을 쫓는 개성이 말살된 인간들의 박제된 군상을 보았다.

너희들이 느닷없이 그물에 걸려 과메기가 되었듯이,

인간도 어느 순간에 땅 속 과메기가 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지금도 현실의 그물에 걸려 찬바람 부는 어느 지하도 구석진 곳에서 얄팍한 박스를

깔고 누워, 꾸덕꾸덕한 과메기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너희들이 청해가 그립듯이 인간도 돌아가지 못할 어머니의 따뜻한 자궁을 꿈꾸고

있단다.

 

매운 업보를 치른 과메기들아.

주검이 되어서도 뜬눈으로 용맹정진 하였고,

육신을 버리고 정신을 구하는 수도승처럼 온몸을 보시하여 공덕을 쌓았으니,

좋은 인연으로 다시 태여 나길 기원한다.

 

나는 젓가락으로 또 한 조각의 살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부디 내 속에 들어가서 절집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내가 방일하고 나태할 때 댕그랑댕그랑 맑은 소리로 나의 가슴을 깨워 주길

바란다.

 

덕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풍경들아. 과메기들아.

선술집 앞 붉은 가로등 위에 너희들의 꿈이었던 갈매기가 솟대처럼 서서,

밤하늘의 먼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구나, 과메기야, 꽁치과메기야.

공덕과메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