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면서 / 李孝石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 ―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
땅 속에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 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 태곳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나는 새삼스럽게 마음 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라, 늘 들어가는 집 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 속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불과 ―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의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책상 앞에 붙은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 새 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寸陰)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멸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些事)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 가는 가을,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李孝石 (1907~1942)
소설가.
호는 可山.
1936년에 한국 단편 문학의 秀作 중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
작품에 <메밀꽃 필 무렵>, <화분(花粉)> 등이 있다.
'🤍 歲月은 지금 > 10 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 '낙엽이 지는 날엔' / 이남숙 (0) | 2024.10.30 |
---|---|
'Come Una Foglia'(낙엽의사랑) / Gigliola Cinquetti (0) | 2024.10.28 |
수필 - '은행잎' / 김동리 (3) | 2024.10.24 |
수필 - '가을의 여정' / 전광용 (1) | 2024.10.24 |
수필 - '억새의 이미지' / 목성균 (2)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