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敗者 의 神聖 / 申采浩
나무에 잘 오르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물 헤엄을 잘 치는 놈은 물에 빠져 죽는다 하니,
무슨 소리뇨.
두 손을 비비고 방안에 앉았으면 아무런 실패가 없을지나,
다만 그러하면 인류 사회가 적막한 총묘(塚墓)와 같으리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지언정,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앉은뱅이의 죽음은 안 할지니라.
실패자를 웃고 성공자를 노래함도 또한 우부(愚夫)의 벽견(僻見)이라.
성공자는 앉은뱅이같이 방 안에서 늙는 자는 아니나,
그러나 약은 사람이 되어 쉽고 만만한 일에 착수하므로 성공하거늘,
이를 위인(偉人)이라 칭하여 화공(畵工)이 그 얼굴을 그리며,
시인이 그 자취를 꿈꾸며,
역사가가 그 언행을 적으니,
어찌 가소한 일이 아니냐.
지어 불에 들면 불과 싸우며,
물에 들면 물과 싸우며,
쌍수(雙手)로 범을 잡고 적신(赤身)으로 탄알과 겨루는 인물들은 그 십의 구가 거의 실패자가
되고 마나니, 왜 그러냐 하면,
그 담(膽)의 웅(雄)과 역(力)의 대(大)와,
관찰의 명쾌와 의기의 성장이 남보다 백배 우승하므로,
남의 생의(生意)도 못하는 일을 하다가 실패자가 되니,
그러므로 실패자와 성공자를 비하면 실패자는 백보(百步)나 되는 큰 물을 건너뛰던 자이요,
성공자는 일보(一步)의 물을 건너뛰던 자이어늘,
이제 성공자를 노래하고 실패자는 웃으니,
인세의 전도(顚倒)가 또한 심하도다.
이와 같이 실패자를 비웃음은 동서양의 도도(滔滔)한 사필(史筆)들이 거의 그러하지만,
수백 년래의 조선이 더욱 심하였으며,
조선 수백 년래에 이따위 벽견을 가진 이가 적지 않으나,
김부식(金富軾) 같은 자가 또한 없었도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일부 노예성의 산출물이라.
그 인물관(人物觀)이 더욱 창피하여 영웅인 애국자,
곧 동서만고(東西萬古)에도 그 비류(比類)가 많지 안할 부여(夫餘) 복신(福信)을 전기(傳記)에
빼고, 백제사(百濟史) 말엽에 12구뿐 부록함이 벌써 그에 대한 모멸(侮蔑)인데,
게다가 또 사실을 무(誣)하여 면목을 오손(汚損)하였으며,
연개소문이 비록 야심가이나 정치 사상의 가치는 또한 천재(千載) 희유의 기물(奇物)이어늘,
다만 그 2세 만에 멸망하였으므로 오직 신구당서(新舊唐書)를 초록(抄錄)하여 개소문전이라
칭할 뿐이요,
본국의 전설과 기록으로 쓴 것은 한 자를 볼 수 없을 뿐더러 또 그를 흉불완(凶不頑)하다
지척(指斥)하였으며,
궁예와 견훤이 비록 중도에 패망하였으나 또한 신라의 혼군(昏君을 항(抗하고 의기(義旗)를
거(擧)하여, 수십 년을 일방(一方에 패(覇)하였거늘,
이제 초망(草莽)의 소추(小醜)라 매욕(罵辱)하였으며,
정치계의 인물뿐 아니라 학술에나 문예에도 곧 이러한 논법으로 인물을 취사하여,
독립적 창조적 설원(薛原), 영랑(令郞), 원효(元曉) 등은 일필(一筆)로 도말(塗抹)하고,
오직 지나사상(之那思想)의 노예인 최치원(崔致遠)을 코가 깨어 지도록, 이마가 터지도록,
손이 발이 되도록 절하며 기리며, 뛰며, 노래하면서 기리었다.
그리하여 김부식이 자기의 옹유(擁有)한 정치상 세력으로 자기의 의견과 다른 사람은 죽이며,
자기의 지은 "삼국사기"와 다른 의론(議論)을 쓴 서적은 불에 넣었도다.
그리하여 후생(後生)의 조선사람은 귀로 듣는바와 눈으로 보는바가 김부식의 것밖에 없으므로,
모두 김부식의 제자가 되고 말았으며,
모두 김부식과 같은 논법에 같은 인물관을 가졌도다.
하늘과 다투며,
사람과 싸워 자기의 성격을 발휘하여,
진취, 분투, 강의(剛毅), 불굴(不屈) 등의 문자로써 인간에 교훈을 끼침이어늘,
우리 조선은 그만 김부식의 인물관이 후인에게 전염하여,
고금의 실패자는 모두 배척하고 성공자를 숭배하게 되니,
성공자는 아까 말한 바 약은 사람이라.
이제 창졸(倉卒)히 '약'의 정의는 낼 수 없으나,
세상에서 매양 '약은 사람'의 별명은 '쥐새끼라'하니,
약은 사람의 성질은 이에서 얼만큼 추상할 수 있도다.
(1) 엄청나는 큰 일을 생의(生意)치 안하며,
(2) 남의 눈치를 잘 보며,
(3) 죽을 고비를 잘 피하며,
(4) 제 입벌이를 자작(自作)만 하여 그 기민함이 쥐와 같은 고로 쥐새끼라 함이라.
아으, 수백 년래의 인물에,
어찌 범이나 곰이나 사자 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리오마는,
대개 쥐새끼들의 주저와 흉계에 병축(屛逐)되거나 참살되고,
일군의 쥐새끼들이 사회의 위권(威權)을 장악하여 학술은 독창을 금하고,
정 주 (程 朱) 등 고인(古人)의 종 됨을 사랑하며 정치는 독립을 기(忌)하고,
일보 일보 물러가 쇠망의 구렁에 빠짐이라.
실패는 이같이 싫어하였는데, 어찌 실패보다 참악(慘惡)한 쇠망에 빠짐은 무슨 연고이뇨.
이는 나의 전언(前言)에 벌써 그 이유의 설명이 명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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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申采浩. 1880~1936)
호는 단재(丹齋)
충남 대덕 출생
1905년 성균관 박사, 장지연 초청으로 황성신문 논설위원 위촉
1910년 안창호와 중국 망명
1915년 북경 체류 중〈조선상고사〉집필 구상
1916년 소설〈꿈하늘〉집필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피선
1923년 '조선혁명선언' 기초
1927년 신간회의 발기인이 되고,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
1928년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국제위체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1930년 대련 법정에서 10년 선고받고 여순감옥으로 이송
1936년 여순감옥에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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