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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 百中(음력 7월 보름)

아즈방 2024. 8. 18. 06:00

百 中

음력 7월 15일.

 

百種·中元·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이때쯤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놓은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절에서는 재(齋)를 올리고 공양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가정에서는 한창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차례를 올리고 백중잔치를 한다.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섰는데 이를 百中場이라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는 일손을 쉬고 머슴에게는 휴가와 돈을 주어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백중장이 성시를 이루면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도 펼쳐진다.

또한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북돋아준다.

백중 때가 되면 농사일이 거의 끝나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두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한다.

원래 백중날 하루만은 일손을 놓고 쉬지만 제주도에서는 해산물 따기에 분주하다.

그것은 백중날에 살진 해산물이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百中의 이칭으로는 白中, 百衆, 百種, 百種節, 中元日, 亡魂日 등이 있다.

민간에서는 백중이란 말로 통일되어 있다.

백중은 원래 불가에서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일을 합한 4대 명절에 더하여, 盂蘭盆齋가 행해지는 5대 명절에 해당된다.

盂蘭盆(우란분)은 범어의 ‘Ullambana’를 音寫한 烏籃婆拏(오람파라)가 와전된 것이다.

 

백중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金堉(김육)의 『松都志』에 7월 15일을 백종이라 부르고 있다.

남녀가 酒食을 차려놓고 三魂을 부르며 우란분재의 古風이라 하였다.

『松南雜識』에서는 ‘百種·白中’을 병기하였다.

『閨閤叢書(규합총서)』, 『怡雲志(이운지)』, 『慵齋叢話(용재총화)』에는 ‘百種’으로만 명기된다.

『燃藜室記述(연려실기술)』에는, 7월 15일은 속칭 백종이라 부르며,

 백종에는 중들이 백 가지의 花菓를 갖추어서 우란분을 설치 하고 불공한다고 했다.
 洌陽歲時記(열양세시기)에는 백종절이라고 하여,
중원일에 백종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날의 이름을 백종이라 붙였다고 하였다.

 

『東國歲時記』는 『荊楚歲時記(형초세시기)』를 그대로 인용하여 백종일이라 불렀다.

사찰에서 행하는 우란분회와 달리 민간에서는 망혼일이라 하여,

여염집에서 중원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 혼을 부른다고 하였다.

 

충청도 풍속에 15일에는 노소가 저자로 나와 마시고 먹으며 즐길 뿐더러 씨름놀이도 하고, 경사대부 집에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올벼[早生稻]를 사당에 천신한다고도 했다.

 

『京都雜志』에서도 백종절이라고 하였으며,

서울사람들은 성찬을 차려서 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겼다고 하였다.

 

백종은 백 가지 맛을 이르는 것이며,

혹은 백가지 곡식의 씨를 중원에 진열하였으므로 백종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이는 황당무계한 설이라고도 하였다.
20세기 초 장지연의 『朝鮮歲時記』에서 속칭 백종절이라 하고 백중이라 하였다.

 

도시의 士女가 주찬을 성대하게 차리고 산에 올라가 가무로 놀이를 하니,

그 풍속이 신라와 고려부터의 풍속이라고 하였다.

 

崇佛로 우란분공을 위하여 백종의 채소와 과일을 구비하였던 탓으로 백종이란 말이 생겼다고도하고 혹은 百穀之種에서 나왔다고는 하나 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백중에는 민간에서 亡魂祭를 지내고, 절에서는 스님들이 석 달 동안의 夏安居를 끝내는 날이기도 하다.

즉 우란분재와 백중은 조상영혼의 천도, 참회와 중생제도,

나아가서 일꾼들이 즐기는 농촌축제의 날이 된다.

백중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백중놀이는 두레먹기에서 두드러진다.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기야말로 두레일꾼들이 모처럼 노동의 피로를 풀어내는 축제였다.

백중놀이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소 상이하게 나타나며,

호미걸이, 호미씻이, 술멕이, 풋굿, 질먹기, 진서턱 등이 대표적이다.

여름철 우물고사도 중요한 행사였는데 지역에 따라 백중과 칠석에 혼재되어 나타나므로, 칠석놀이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백중날에 머슴들에게는 백중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장만해 주었으며,

모처럼의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즐기도록 하였다.
두레에 들어가야 할 청소년은 진서라고 부르며 두레에 내게 되는 술은 진서술이라고 부른다.

진서턱을 내는 시기는 7월 백중 무렵에 곁들여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진서턱은 전국적인 명칭은 아니다.

전라도에서는 모두 진서턱이 확인된다.

충청도에서는 금강을 기점으로 부여군 남쪽에서 일부 확인이 된다.

이로써 남도에 국한된 지역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꽁배술 풍습은 주로 충청도에서 많이 쓰인다.

꽁배란 두레에서 심부름하는 청소년층을 일컬으며,

꽁배가 연령이 차서 두레성원이 되고자 할 때, 백중날 동이로 술을 내는 꽁배술을 거쳐 허락을 얻는다.

호남이나 호서지방은 들돌들기, 돌독들기, 등돌들기, 진쇠돌들기, 당산돌들기가 많으며, 

경상도에서는 힘발림이라는 명칭도 쓰인다.

들돌을 두는 위치는 대개 여름철 노동의 피로와 더위를 피하는 휴식 장소이기도 한 당수나무 밑이다.

들돌의 주된 기능은 역시 7월 백중에 마을 청장년들이 시원한 나무 밑에 모여 힘을 겨뤄 장사를 뽑는 것이다.

 

경남 밀양 감천의 백중놀이에서 놀아지는 힘발림은 그해 가장 일을 부지런히 한 머슴들 중에서, 씨름과 더불어 무거운 돌을 들도록 하여 힘센 사람을 뽑아 좌상과 우상으로 삼았다.

한 해 농사짓기 전 두레농군을 입사시키는데도 쓰였다.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청소년은 힘발림을 통과해야 했다.

물론 별도로 꼼배기참이라고 하여 어른들에게 술을 올려야 했다.

 

전북 고창군 상평에서는 품앗이를 하려면 백중날 들독(들돌)을 들어서 품앗이를 결정했다.

들독을 못 들면 장정품앗이를 주지 않았다.

 

경기도 일원에서는 호미걸이가 많이 쓰였다.

호미걸이는 호미나 악기를 낭대[農旗]의 버레줄에 주렁주렁 걸어두는 의례다.

삼남에 호미걸이 명칭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기 지역에 고유한 명칭으로 보인다.

8월 초순, 칠석, 백중 등 형편에 맞게 이루어졌다.

장소는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이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산중턱이 많이 쓰였다.

백중놀이는 장터에서 별도로 열렸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백중놀이란 머슴들이 장터로 가서 노는 놀이를 뜻하였다.

백중날은 머슴들이 주동이 되어 장터에 가서 씨름대회에 참가하였다.

상인들은 시장 경기를 부추기는 방법의 하나로 씨름대회를 열었으며,

음식장사, 술장사 등 난장(亂場)이 섰다.

머슴들은 씨름에 이기면 송아지를 끌고서 기세를 올리면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

백중놀이에서 머슴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충청도에서는 백중보다 칠석날 두레먹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충청 서해안과 내륙 모두에 걸쳐서 칠석이 중시되었다.

반면에 백중은 아예 머슴날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백중날 머슴에게 돈도 주고 무명으로 여름 한복을 한 벌씩 해 주었기에 새 옷 입고 장에 나가서 술도 마시고 하루를 즐겼다.

칠석날 두레먹기가 성했다는 것일 뿐, 획일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라도에서는 술멕이와 풍장놀이, 장원례 등으로 부르는데,

술멕이는 글자 그대로 ‘술먹는날’이란 뜻이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선인 금강을 기점으로 술멕이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따라서 남도에서 쓰인 풍습이 북상하다가 금강 유역에서 멈춘 것으로 보인다.

술멕이날은 대개 칠월 칠석이나 백중날이었다.

날짜 선택에 어떤 일정한 경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술멕이날은 마지막 김매기날에 행하는 만두레 행사와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술멕이날은 마을풍물패가 동원되어 당산굿을 쳤으며,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동네잔치를 벌였다.

술멕이날이 다가오면 사전에 도로닦기, 잡초제거 같은 대청소도 이루어졌다.

 

풋굿은 경상도 말로 풋구, 푸꾸, 풋꾸라고 부른다.

문헌에 초연(草宴)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나, 일반 민중들이 쓰던 말은 아니다.

풋굿은 세벌논매기가 끝났을 때 백중에 놀아진다.

농민층이 많이 참가하는 행사이나 지주가 많은 양반 출신들의 동성촌락인 경우에는 머슴잔치라는 인상이 짙다.

 

일제강점기에 송석하(宋錫夏)는 경상도지방의 ‘나다리’를 보고하고 있으며,

이는 풋굿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질먹기에서 질은 김매기의 ‘김’에서 나온 말이다.

김매기를 끝내고서 잔치를 먹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느 지방과 마찬가지로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질을 먹는다.

마을의 시원한 솔밭이나 성황당 마당 같은 곳에 모여서 김매기 노동의 결산을 먼저 한다.

이날은 ‘머슴의 생일’이라고 하여 머슴살이하는 고용인들에게 주인집에서 상을 차려낸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피로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른 지방과 다를 게 없다.

 

농민들에게는 일년에 두 차례 거대한 농민축제가 존재했다.

겨울철 휴한기인 정월대보름과 여름철 휴한기인 7월 백중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보름과 달리 7월 백중은 두레의 소멸과 더불어 거의 잊혀져가는 풍습이 되었으며, 밀양백중놀이 등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 출처 :  朱剛玄 / 한국민속대백과 사전 / http://folkency.nfm.go.kr/

 

밀양 백중놀이

 

제주도의 百中祭

제주도 지역에서 7월 백중에 우마번성(牛馬繁盛)을 기원하며 지내는 목축의례.

테우리코 혹은 쉐멩질이라 하여 마소를 방목하는 목동들의 명절과 겸하고 있다.

목동들의 제의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개고기를 즐기는 백중날(음력 칠월보름)은 개와 인연이 깊다.

백중은 우리의 전통속에서 머슴의 생일이자, 두레의 호미씻이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중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동네 정자나무밑에 큰솥을 걸어 놓고,

개를 잡아 나눠 먹는 것이 우리네의 풍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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