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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11 월 .

수필 - '11월' / 정목일

아즈방 2024. 11. 10. 11:04

 

11월 / 정목일


11월은 가을의 영혼이 보이는 달,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보이고 텅 빈 내부가 보인다.

가을이 절정에 도달하여 감동과 찬탄을 자아내지만,

그 뒷면에 감춰진 고독과 고통의 표정이 보인다.

단풍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일생의 절정을 보여주지만,

지는 노을처럼 황홀하여서 눈물겹다.

 

11월은 빛깔의 경연이랄까,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표현양식과 기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가을이 보여주는 생명의 극치감, 풍요, 결실은 앞모습일 뿐이다.
가을은 삶의 빛깔을 완성하지만. 그 빛깔들을 아낌없이 떨쳐버린다.

모든 빛깔들을 불러 모아서 해체해 버린다.
천지에 넝마처럼 낙엽이 날려 뒹굴고 색은 무너져 내린다.

절정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것만큼 무너짐은 쓸쓸하고 처절하다.

결실로서 풍요를 얻은 것만큼 버림으로서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

절정으로 치달은 것만큼 추락을 맞아야 한다.

모든 빛깔들이 한 자리에 만났으니, 이제는 혼자가 되어 떠나야 한다.
 

계절의 교차가 보인다.

인생의 교차로가 보인다.

단풍은 한 순간의 장식에 불과하다.

삶의 수식어일지 모르는 단풍을 걷어내고,

벌거숭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뇌의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빈자리가 보이고 사색과 침묵을 향해 눈을 감는 시간이 있다.

색을 다 해체하여 떨쳐버리고 얻는 비움의 충만, 고요의 평온이 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서 다시 시작하는 시발점이 보인다.

 

고요히 존재를 찾아 길을 떠나는 계절이다.

명암이 있다.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있고 환희 뒤에는 눈물이 있다.

성장 속에는 추락의 아픔이 있다.
 

들판은 어느새 비어져 공허하고 나무들은 옷을 벗어버린다.

충만 속에선 느낄 수 없던, 빈 것의 정갈함,

허허로움 속에 뻗은 새로움의 세계가 보인다.
 

열정을 식히고 고요와 달관의 눈으로 텅 빈 대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을

끝 무렵,

어느새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드리울 때처럼 돌아갈 곳,

존재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가버리고 말면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생의 궤적을 뒤돌아보게 하고,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떠나가고 싶은 달―.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영원의 오솔길로 산보할 수 있는,

빈 들판 길을 걷고 싶다.
 

11월은 바깥의 화려함보다도 내면의 진실함이 깃들어 있는 달,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정목일 (鄭木日. 1945~ ) 

수필가. 경남 진주 출생.《현대문학》수필 천료.
수필창작 지도. 《계간 선수필》 발행인.
*《별이되어 풀꽃이 되어》 《만나면서 떠나면서》 등 다수
* 원종린수필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윤재천문학상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