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와 벌레소리 / 성기조
일년의 절후(節候) 가운데 가장 좋은 절후가 백로라고 생각된다.
이는 나만이 가진 생각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무덥고 지긋지긋하던 여름이 가고 초가을의 문턱에 다가왔다고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모든 열매가 알찬 결실을 하는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 보다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희승은 그의 수필에서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가 귀뚜라미라고 말한 일이 있지만, 사실에 있어서 가을을 알리는 모든 벌레의 노랫소리가 백로를 전후하여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가을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자연의 교향악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메마른 세대에서 많은 돈을 주고 유명한 음악회에 나가 앉았던 것을 무슨 자랑이나 되는것처럼 지껄여대는 분수없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아무도 없는데 조용히 혼자 앉아서 자연의 노래,
아니 하잖은 미물(微物)의 아름다운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앉아있는 동양적인 여유가 얼마나 운치가 있느냐 말이다.
이런 벌레들의 구체적인 노래가 백로를 전후하여 한창을 이루기 때문에,
나는 백로를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꼽고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람들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제일 먼저 내세우는 버릇이 있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취미를 만족시키고 할 일을 마땅히 한 것 같이 알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맛에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모아서 알고 있다.
우리의 속담에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아주 당연하고 일반적인 진리가 있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잘난 맛에 백로를 전후한 계절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계절이라고 내세우고 싶다.
이는 벌레소리의 은은한 매력을 도저히 잊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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