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산로 변천사
1958년부터 본격 산행.........등산로 개척단계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등반로는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을까?
조선시대 제주목사나 판관 등이 한라산을 오른 경우는 많지만 기록을 남긴 경우는 채 10건도 안된다.
많이 올랐다는 것은 이약동 목사 이전에는 백록담 북쪽의 제단에서 한라산 산신제를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느 코스로 백록담을 올랐을까?
한라산 등반기중 가장 오래된 자료라 할 수 있는 1577년 임제의 ‘남명소승’ 에는 제주목 서문을 출발, 도근천 상류인 광령계곡을 지나 영실의 존자암이 등반전진기지가 된다.
이어 영실코스의 옛 등반로인 남쪽절벽을 올라 올라 백록담 정상에 도착한 후,
하산 할 때에는 백록담 남벽코스를 이용해 효돈천 상류에 위치한 두타사에서 1박한 후, 돈내코코스인 서귀포시 영천동 방면으로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존자암코스를 이용한 경우는 1601년의 김상헌어사와 1609년의 김치(金緻) 판관 등이 있다.
김상헌 어사는 백록담에서 한라산산신제를, 김 치 판관은 백록담의 북벽으로 하산한 것이 차이점이다.
이형상목사는 1702년에 백록담에 올랐는데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당일 산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라산 전체적인 개관에 대해서는 잘 나와 있으나 구체적인 등반코스에 그 지역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코스는 알 수 없다.
이어 1800년대 들어서는 관음사코스가 자주 이용되는데,
1841년 이원조 목사의 경우 방선문 동쪽마을인 죽성촌에서 출발, 백록담 북벽으로 정상에 오른 후, 하산은 남벽을 이용 선자지왓을 지나 영실로 내렸다.
이어 최익현은 남문을 출발해 방선문 죽성마을 탐라계곡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남벽으로 하산 영실로 내려왔다.
일제시대인 1937년 한라상에 오른 이은상 은 산천단을 출발점으로 삼는데 관음사ㆍ한천ㆍ개미목ㆍ삼각봉ㆍ용진각을 지나는 오늘날의 관음사코스를 이용한다.
하산은 남벽 방아오름 모새밭(지금의 선작지왓)을 거쳐 영실 어리목 노로오름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1100도로 위쪽 사면을 따라 시내까지 내려왔다.
해방을 거쳐 4ㆍ3사건이후인 1953년, 산악인이자 식물학자인 부종휴선생은 한라산을 오르면서, 산천단-관음사(1박)-탐라계곡-개미등-삼각봉-용진각(1박)-왕관릉-정상-남벽-영실-존자암지(1박)를 거쳐 서귀포시 하원동으로 내려 오늘날의 등반로인 관음사 영실코스와 일치한다.
이어 1960년대는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인 5ㆍ16도로와 1100도로가 생기면서 어리목코스와 성판악코스가 개설된다.
70년대 이후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대부분의 등반객들이 어리목코스와 영실코스를 이용해 백록담에 올랐다.
* 글 강정효 기자 (2002년 8월 14일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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