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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추석(秋夕) 산행' / 오수열

아즈방 2024. 9. 17. 09:40

 

추석(秋夕) 산행 / 오수열

 

금년 추석은 ‘황금연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5일간의 휴식이 충분히 보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틀만 휴가를 내면 9일의 연휴도 가능하였으니,

직장인들에게는 참으로 황금 같은 추석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성형수술을 함으로써 여행업계와 일부 병원들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반면에 기업들은 긴 휴일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울상이었다고 하니,

세상은 참으로 양면성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바깥세상이 이처럼 긴 연휴를 두고 갑론을박 시끌벅적하여도 나같은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일이다.

길어도 그만, 짧아도 그만이니 말이다.

별로 갈 곳도 없고 오란 곳도 없으니 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애들과 함께 성묘 한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무려 4일이나 가까운 무등산을 벗 삼을 수밖에 없었으니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무미(無味)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산행(山行)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면 심심파적으로 좋겠지만,

각자의 생활이 있는데 매번 동행자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다.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아내에게 이끌려 가는 코스가 약사암으로 이미 싫증이 나있던 터이라, 오늘은 바람재로 방향을 잡기로 하였다.

지척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과,

쉬고 싶을 때면 아무 곳이라도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가 편하다는 것이 바람재 코스의 장점이다.

 

함께하는 일행이 없는 ‘나 홀로 등산’의 좋은점은 걷고 쉬기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쉬고 싶을때면 동행자의 눈치 보지 않고 아무 때나 근처 골짜기의 물가에 주저앉아 배낭을 내려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다소 힘들더라도 바람재로 해서 토끼등 까지는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한숨돌리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을 오르는데 어찌 나만 힘들겠는가.

앞서가는 칠순의 노인하며, 뒤따라오는 꼬맹이들까지 모두가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뒤따라오는 꼬맹이가 엄마에게 투정을 한다.

“엄마! 왜 계속 오르막길 뿐이야?”

엄마가 대답한다.

“오르막이 있어야 내리막 길도 있는 법이야. 인생(人生)도 마찬가지야”

꼬맹이가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 듣겠는가….

그는 그저 다시 대꾸할 뿐이다.

“내리막길은 있지도 않구만”

 

조금 후에는 옆을 지나치는 초로(初老)의 두 사나이의 말이 들려온다.

“아무개 말이시, 그놈 참으로 뻔뻔한 놈이여.

 얼마전에 무슨 행사한다며 화환하나 보내 달라고 전화 왔드란 마시.

 보내 줬더니 그 뒤로는 고맙단 말도 없어…. ”

“그 놈이 원래 그런 놈 아닌가”라며 다른 사람도 맞장구를 친다.

듣자하니 정치판에 뛰어 들더니 교수직마저 팽개쳐 버린 나의 대학 후배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이러니 세상은 좁은 것이고, 말을 조심해야 하는가 보다.

 

이러저러한 귀동냥에 빠져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바람재에 도착하였고,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관풍대(觀風臺)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담양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곳이 바람재이며,

그곳에 세워진 정자가 관풍대이다.

어찌 선인(先人)들은 무형(無形)의 바람마저도 볼 수 있다고 하였을까.

참으로 멋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너덜겅 약수를 물병에 담은 후 편백 숲에 앉아 심호흡을 몇 차례 하니 신선(神仙)이 부럽지 않다.

출출해진 뱃속에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정오(正午)가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수열 / 조선대 명예교수,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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