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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우도 동굴음악회로의 초대' / 현행복

아즈방 2022. 2. 20. 12:19

[문화칼럼] '우도 동굴음악회로의 초대’

 

동굴은 태고 때부터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그곳은 주거공간일 뿐 아니라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처럼 벽화가 발견된 동굴에서는 대개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나 북 등이 함께 나왔다.

이것은 동굴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 이전의 음악활동이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현대의 콘서트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굴의 공명()이 그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 판소리에는 명창이 되기 위한 득음 수련과정 가운데 하나로 ‘토굴독공(土窟獨功)’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장장이가 쇠를 벼리면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듯이 동굴에 홀로 머물며 정성 들여 소리를 숙성하는 과정이다.

 

동굴에서는 자연스러운 발성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5년 전 ‘동굴소리 연구회’를 결성해 화산섬인 제주도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동굴을 찾아다니며 음향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작은 결실로 1997년 여름부터 ‘동굴과 소리의 만남’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본격적인 ‘동굴 음악회’를

선보일 수 있었다.

 

제주 성산포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우도(牛島).

우도 등대 아래 파도의 침식으로 생긴 동안경굴(東岸鯨窟)에서 첫 번째 음악회를 열었다.

그 후로 강원 태백의 석회암동굴과 제주의 대표적 용암동굴인 만장굴에서도 음악회를 개최했지만,

동굴 음악회의 주 무대는 아무래도 우도의 바다동굴인 것 같다.

자연이 빚어 낸 석관악기인 동굴 벽 곳곳에 부딪혀 생기는 음의 반향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올해 동굴음악회 10주년을 맞아 연구회 몇몇 회원들과 함께 영국 스코틀랜드 서북부에 위치한 스태파 섬의

‘핑갈의 동굴’을 탐방하고 왔다.

핑갈의 동굴은 우도의 동안경굴과 거의 비슷한 해식(海蝕) 동굴이다.

명성에 비해 별로 크지 않은 규모라 웬만한 지도에는 표기조차 돼 있지 않다.

현지인들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어렵사리 찾은 그 동굴은 한마디로 자연이 만든 위대한 걸작품이었다.

동굴 밖 깎아지른 절벽은 거대한 조각상을 줄줄이 붙여 놓은 듯했다.

동굴 내부는 예상보다 좁았지만 천장이 높아 울림이 좋았다.

모난 돌들이 둥그스름한 아치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바닥은 항시 바닷물이 고여 있다고 했다.

육각형 돌기둥이 연이어 서 있고, 군데군데 의자 모양의 돌들이 객석처럼 즐비했다.

우도의 바다동굴을 떠올리며 이모저모 비교해 봤다.

동굴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소리를 내 울림 상태도 확인했다.

훌륭한 잔향(殘響)이었다.

 

영국의 3대 시인이라 불리는 키츠, 워즈워스, 테니슨, 화가 터너,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은,

핑갈의 동굴을 방문한 감흥을 담아 각자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던 중 이 동굴을 보고 만든 ‘핑갈의 동굴 서곡’은 작은 무인도 동굴을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게 했다.

한국의 우도 동굴 역시 언젠가 ‘우도의 바다동굴 판타지’란 이름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蘭橈拏入㩳神形 / 난요나입송신형 / 조각배 노 저어 들어가니 몸과 마음이 쭈뼛하고

鐵笛吹裂老怪聽 / 철적취열노괴청 / 태평소 요란히 불어대니 늙은 용이 듣는구나

 

16세기 초 제주도에 유배됐던 중종 때 문신 충암 김정(충菴 金淨)의 ‘우도가(牛島歌)’ 중 한 소절이다.

이 한시는 우도 바다동굴의 풍광을 격조 있게 노래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우도 동굴음악회가 9월에 다시 열린다.

충암의 시에 드러난 것과 같은 우도 동굴의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행복 /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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