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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 / 김정운

아즈방 2024. 10. 30. 19:18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 / 김정운

 

매년 그렇듯이, 10월 31일이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수없이 듣게 된다.

다소 촌스러운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아무리 거지같이 끝난 인연이라도 코끝 찡한 기억이 되게 한다.

참 착한 노래다.

80년대 초반, 휴전선 철책에서는,

대북 심리전으로 북쪽을 향해 나긋나긋한 우리 대중가요를 틀어줬다.

흠, 요즘 시끄러운 인터넷 댓글보다는 훨씬 그럴듯했다.

82년 가을,

난 화천북방 철책에서 매일밤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당시 담당 심리전 요원이 가진 대중가요 테이프가 오직 그것뿐이었다.

달빛 아래, 가을 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이용의 노래는,

이십대 초반의 병사들에게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밤새도록 물었다.

그 노래가 나오면 고참 쫄따구가 없었다.

다들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봤다.

매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모든 게 안타깝고, 슬프고 그리웠다.

눈앞의 철책과 총구, 분단은 그저 관념이었다.

오히려 이용의 떨리는 목소리가 구체적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10월이 되면 난 그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적어도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만은 아주 착하고 순수한 생각만 하게 되는 까닭이다.

단언컨대, 난 10월의 마지막 날에 음탕한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이용의 노래와 함께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시구가 있다.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다.

시인이 한 잔의 술을 마시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 '버지니아 울프'를 당시 난 진짜 늑대라고 생각했다.

여류작가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나도 그 폼 나는 늑대처럼 평생 '론리 울프'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 친구 귀현이는 더 황당한 주장을 한다.

가수 박인희가 박인환의 친척이라는 거다.

이름의 두 글자가 같기 때문이란다.

며칠 전 만났는데 또 우긴다.

박인희는 박인환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했다.

이 노래도 기막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숨넘어갈 듯 이어지는 시구를 따라 읽다 보면,

막연한 그리움에 진짜 숨이 막혀온다.

당시 식민지와 전쟁을 거쳐 흙바닥까지 황폐화된 나라에,

도대체 호수가 어디고, 벤치는 또 뭐였을까.

그래서 같은 시대의 시인 김수영은 박인환을,

'그저 폼 잡기에 급급한 시인'이라며 비웃었다.

사실 박인환의 시는 많이 뜬금없다.

부활 김태원의 노래 가사처럼 도무지 맥락이 애매한 이미지의 연속이다.

대학 시절 우리는 그의 시를 김수영의 시와 비교하며,

식민지 지식인의 철없는 모더니즘이라고 비웃었다.

그때는 박인환을 비웃고 김수영을 읽어야 폼 났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또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자꾸 박인환의 시가 파편처럼 기억난다.

김수영의 시는 의도해야만 기억난다.

박인환을 중얼거리면 그가 던지는 실존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통속할 건가, 외로울 건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갈 건가,

아니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 혼자 갈 건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향수' 혹은 '그리움'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좀 더 복잡한 심리 상태다.

'노스탤지어'는 17세기 요하네스 호퍼라는 스위스 의사가 자신의 박사 학위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리스어의 '귀향'을 뜻하는 '노스토스'와,

'고통'을 뜻하는 '알고스'를 합쳐 만든 단어다.

스위스 용병들이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소화불량, 감기, 우울, 졸도,

심지어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상을 보고,

이를 뭉뚱그려 '노스탤지어'라고 칭한 것이다.

스위스 용병들은 죽어가며 한결같이 스위스 고향 산골짜기의 풀 뜯는 소 방울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호퍼는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죄다 뇌에 이상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젠장, 의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꼭 그런 식이다.

그 후 '노스탤지어'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현상을 뜻하는 정신병리학적 용어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그렇게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 대학 심리학과의 루틀리지 교수는,

'노스탤지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며,

자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딘다는 것이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심리적 기능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긍정적 기분, 의미 부여, 관계 형성.

뒤집어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쁠 때나 우울할 때 혹은 외로울 때,

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작동하여,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다.

이 가을에 작동할 만한 노스탤지어가 결핍된 이들은 더 우울하고, 더 외롭고,

더욱 기분 나빠진다.

그래서 며칠 후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에 목에 자꾸 핏대를 세우는 거다.

이 찬란한 가을에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각종 신문 정치면, 사회면만 들여다보며,

매번 빤한 이야기에 열 받지 말자는 이야기다.

도대체 몇 명이나 '좋아요' 눌러 주나 하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온종일 머리 처박지도 말자는 거다.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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