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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歲月은 지금/8 월 .

수필 - '여름 이야기'

아즈방 2024. 8. 5. 19:28

 

여름 이야기

 

종이책과 엷은 가을 햇살과 놀았다.

일터 마당에 서서 책 읽는 맛은 꿀이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읽었으니 금상첨화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란 이름표를 단 책이다.

기억의 갈피 속에 곱게 접어 넣어뒀던 잊을 수 없는 여름 이야기다.

빛바랜,...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스물아홉 편이다.

 

우리 문학을 빛낸 열네 명의 옛 작가가 맑고 투명한 언어로 차려낸 여름에 관한 성찬이다.

방정환. 최서해. 계용묵, 채만식. 이효석, 노천명, 강경애, 노자영, 이상, 허민, 김상용, 김남천, 이광수,

현진건이다.

 

멋있는 남자들을 한꺼번에 만나 너나들이하는 기분이다.

뜨거운 토론이라도 펼치고 싶은 충동이 봇물이다.

시나 소설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은 수필이다.

 

최고의 작가들이지만 결코  어렵지가 않다.

너무나 이해하기 쉬워 의아하기까지 하다.

결론은 역시 글은 아무나 읽어도 이해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쉽지만 결코 가볍진 않다.

박하사탕을 먹은 듯 뒤끝이 알싸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수채화라 읽는 내내 가슴이 풀쩍거린다.

 

새벽 비가 내린 뒤 맑게 갠 여름 아침을 투명하게 그리기도 했으며,

마냥 설레게 했던 사랑의 추억을 수줍게 고백하기도 했다.

더러는 칠흑같은 여름 밤하늘에 뜬 아름다운 별에 관한 판타지와 함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여름은 문학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과 낭만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방정환의 '첫여름' 에서 데리고 왔다.

'물에 젖은 은빛 햇볕에 향긋한 풀냄새가 떠오르는 첫여름의 아침!

그 신록의 냄새를 맡고, 그 햇볕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 기쁨이 머릿속, 가슴 속, 핏속까지 가득 생기는 것을 느낀다.'

 

아!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햇볕이 음악도 되고 풀냄새도 난다니 이 보다 더 고운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역시 어린이들을 사랑한 그답다.

 

노천명의 '여름밤' 도 참 좋다.

'앞벌 논에선 개구리들이 소낙비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 냄새가 풍겨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서는 범산덩굴, 엉겅퀴, 다북쑥이 생채로 들어가 한데 섞여 타는 냄새가 난다.'

 

이상의 '산촌여정' 도 좋다.

'달도 없는 그믐칠야면 팔봉산도 사람이 침소에 들 듯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공기는 수정처럼 맑고, 별빛만으로도 충분히 좋아하는 '누가복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별 역시 도시보다 갑절이나 더 많이 뜹니다.

너무 조용해서 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현진건의 '여름과 맨발' 은 군더더기가 없다.

운수좋은 날. 빈처를 쓴 깔끔한 작가답다.

 

'여름처럼 자연과 친하기 쉬운 시절은 없으리라.

 풀도 한껏 푸르고, 나무도 한껏 우거진 데다,

 풀밭 위를 맨발로 시릉없이 돌아다니는 맛이란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대작가들의 여름 못지않게 나의 여름도 할 말이 푸지다.

나의 고향은 아무리 자랑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하늘이 주는 혜택을 혼자 독차지한 듯 종합선물세트다.

산과 강. 들이 공존하기가 어디 흔한가.

 

유년시절의 여름은 부지런했다.

소꼴도 베고 산으로 소를 몰고 가서 풀을 먹이곤 했다.

문학소녀 티내느라 항상 책과 습작 노트를 들고 갔다.

 

너럭바위에 걸터 앉은 꼬마 숙이는 감상에 젖곤 했다.

쪽빛 하늘과 구름에게 이름을 지어 주며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오빠들은 먹을거리 담당이었다.

 

개구리 뒷다리도 구워 주고,

빵틀을 가지고 와서 노릇노릇 구워주기도 했다.

고난도 계란밥을 해 먹기도 했다.

귀하디 귀한 계란에 구멍을 낸 후, 쏙 빨아 먹는다.

빈 껍질 속으로 쌀을 집어넣어 잉걸불에 구우면 밥이 되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경상도엔 무슨 밥이 있다'는 퀴즈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경험이 있기에 단번에 맞출 수가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일급수 계곡물에선 가재가 놀고 있었다.

가재를 구우면 부끄러워서인지 몸을 붉힌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글도 쓰고 놀기에도 바빠 소는 뒷전이었다.

 

좀 별났던 우리 소가 남의 집 벼를 뜯어 먹거나 다른 산으로 넘어가 버려 혼비백산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울면서 오빠들에게 우리 소를 함께 찾아 줄 것을 부탁하여 이 산 저 산을 뒤져 겨우 찾아 끌고 올때면 서러움이 폭발했다.

 

강까지 구색을 맞추니 어찌 최고의 고향이 아니랴.

낮엔 멱도 감고 물고기와 다슬기를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밤에도 강은 심심할 새가 없다.

밤마실을 강으로 간다.

 

남녀노소 모두 나와 시원한 강바람을 맞는다.

다리에 앉아 노는 사람도 있고 여자들은 강물 속에서 목욕을 한다.

차가 지나가면 불빛이 강을 비춘다.

그럴 때  물 속으로 잽싸게 몸을 숨기면서 킥킥거린다.

 

원두막에서 수박먹는 재미야말로 여름날의 백미다.

우리밭이라 마음껏 따먹었다.

수박 머리를 톡톡 두들기면 통통 기분좋은 소리가 들린다.

미처 칼이 없을 땐 주먹칼로 후려친다.

 

쩍 갈라진 수박을 하모니카처럼 먹는 재미를 어디에 비유하랴.

수박으로 배를 불린 뒤 원두막에서 한숨자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가끔씩 수박 사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꼬마 장삿꾼이 되어 잘도 팔곤 했다.

 

시골에서 자란 건 대축복이다.

더 이상 궁금해지는 것이 없어지는 밋밋한 중년을 쫄깃쫄깃하게 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바람꽃짱

* 출처 : '수필(에세이 아카데미)  http://cafe.daum.net/essay.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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