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 學/隨筆 .

'우울한 귀향' / 구활

아즈방 2025. 2. 25. 11:10

 

우울한 귀향 / 구활

 

이제 이 도시를 떠나야지.

멋진 귀향, 화려한 이 한마디를 앞세우고 나는 돌아가야 하리.

가서 집을 지으리라.

집 뒤엔 얕은 언덕과 구릉이 먼 산으로 연해져 있고,

먼산은 걸어서 반 마장 정도 거리에 있었으면.

그곳에 살면서 저녁 무렵이면 언덕에 올라 장려한 낙조를 바라보며,

내 저리고 아팠던 청춘과 생애를 보리라.

 

집 앞 실개천보다 좀 더 넓은 거랑(川)에는 맑은 시냇물이 일 년 사철 흘러가는 곳.

투망이나 반두를 들고 걸어서 한번쯤 쉬고 닿을 수 있는 거리.

낡은 자전거라도 있으면 단숨에 이를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살리라.

아, 우리 집 입구에 들어서면,

감나무 숲속에 갇힌 삼 칸 초옥이 그림처럼 아름다워라.

 

키 큰 가죽나무는 해마다 햇순을 피워내 상큼한 입맛을 돋워주는 집.

찌그러진 두레박으로 길어낸 우물물은 토란밭으로 비워져,

수줍은 새색시 같은 토란들의 미소가 모여 아침마다 수정 같은 물방울이 돌돌 굴러

떨어지는 곳.

 

마당에는 채마밭과 꽃밭을 반반씩 일궈야지.

봄이 오면 상추, 쑥갓, 아욱 등 온갖 푸성귀를 키우고,

꽃밭은 봉선화, 맨드라미, 채송화를 적절하게 배열한 후 대추나무와 아가배나무도

심어야지.

그리고 오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뽕나무 한 그루쯤 심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어느 빛 밝은 날,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 문간을 들어서면서,

"이거 정말 고향이야" 하고 소리칠 수 있도록.

감나무 밑에는 낟알과 굼벵이 따위를 쪼다가 지친 닭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도록

횃대도 높이 올려야지.

동창이 있는 서재에서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새벽을 알리는 계영성을 꿈속같이

아련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간혹 찾아오는 친구들과 늦은 술을 들다 그대로 잠들었다가도,

꼬끼오 소리에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아 그 축복의 나라 속에 있는 작은 나의 집.

 

늦은 아침을 들고 있는데 감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까치들이 집 주위를 선회하며

까 까 까악 하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곳.

그러면 아내가 "여보, 아이들에게서 무슨 기별이 오려나봐요" 하고,

아직 우체부의 붉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소식을 까치를 통해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그 궁금증 때문에 아침 식욕을 잃어버리는 나의 집.

 

정말 그런 곳에 살리라.

여름밤이면 처마 밑에 매달아둔 멍석을 깔고,

마당 어귀에 말린 건초에 모깃불을 지피고,

아스라이 치어다보이는 은하수 너머에 마음까지 올려보낼 수 있는 곳.

짧은 생애 동안 별의 詩만 쓰다 간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다가,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통해 아름다운 목동의 이야기를 들려준 알퐁스 도데 선생도

자주 떠올릴 수 있도록.

 

그것도 지겨우면 모가지에 줄을 묶어 넣어둔 우물 속의 막걸리를 꺼내,

풋고추와 열무김치를 안주 삼아 조촐한 술판이라도 벌여야지.

겨울이면 짚동 사이에 얼지 않게 갈무리해둔 홍시를 꺼내 먹거나,

짚 봉태기 속 씨암탉의 달걀을 무명실로 감아 질화로 불씨옆에 파묻어두었다가

꺼내 먹는 맛.

 

오후부터 내린 눈이 지붕 위에 한 자쯤 쌓이면,

혹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서까래들이 우지끈 소리를 낼까 보아,

긴 대나무 장대로 쌓인 눈을 털어내는 야간 노동의 즐거움.

아, 꿈속에서만 천날만날 찾아가는 그리운 그곳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아직 이 도시에 머물러 있다.

마음은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지만,

맺고 있는 인연의 끈들을 풀거나 끊기에는 시간과 여건이 예사롭지 않아,

쉽게 일어서지 못하네.

나의 몸과 기억들이 더 이상 쇠잔해지기 전에,

피곤한 육신이 안주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할 텐데.

고향을 생각하면 그저 가슴만 답답하고 기억 속의 그곳은 아득할 뿐.

그래서 꿈속에서 자주 행하는 나의 귀향은 우울하기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