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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3] 왕벚나무

아즈방 2022. 8. 2. 18:58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3] 왕벚나무

‘제주 고유종’ 왕벚나무의 고향

일본과 치열한 자존심 경쟁 속 제주 자생지 발견으로 오명 벗어

탐라왕벚나무 등 신종 속속 확인…철저한 보호·관광자원화 필요

 

 

일본 억지로 고향찾기 ‘험난’

며칠 전 제주절물휴양림에서 올벚나무 20여 그루의 거목(巨木)들이 자생하는 군락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의 올벚나무 거목들은 직경이 약 50∼95cm, 수고는 12∼15m내외, 수간 폭 10∼15m정도라 한다.

수령은 1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뉴스다.

한동안 제주도의 식생은 1800여종, 최근에는 2000여종 가까이 된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새로운 종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나의 종이 새롭게 발견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그 한 종의 발견을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벚나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사촌정도로 이해하면 될 왕벚나무의 사례를 보자.

모두가 알다시피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한라산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왕벚나무가 처음 학계에 보고된 것은 불과 100여년 전인 1908년이다.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해발 600m, 관음사 부근에서 식물표본을 채집하던 타케신부(1873-1952)가

꽃이 피어 있는 벚나무의 가지를 꺾어 자신의 채집 표본번호 4638번을 붙여,

독일 베를린대학의 장미과식물의 대가인 케네박사에게 보낸 것이다.

케네박사는 일본 에도에 있는 왕벚나무와 같은 종임을 확인한다.

1913년 일본의 고이즈미박사는 일본 장미과의 모노그라프를 작성하면서 이를 근거로 삼고 있다.

 

1914년 하버드대학의 윌슨교수가 일본을 방문해 마쓰무라박사와 만나 왕벚나무의 소재를 묻고는

이즈의 오오시마라는 대답을 듣고 현지를 찾았으나 왕벚나무는 없었다.

거기에 있던 벚나무는 오오시마벚나무였다.

이에 윌슨은 1916년 펴낸 일본의 벚나무라는 저서에서,

오오시마벚나무와 다른 지방 해안의 벚나무와의 잡종이 아니냐는 학설을 내놓게 된다.

이 학설로 말미암아 한국과 일본의 식물학자들 사이에 수십년간의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에 윌슨이 제주도에서 앞서 다케 신부가 발견한 왕벚나무를 보고 검정을 했다면,

이후 왕벚나무와 관련 자생지 논란이나 잡종설이라는 논쟁은 발생하지도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이 왕벚꽃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심지어는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국화, 즉 나라의 꽃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일본에는 법률로 지정된 국화는 없고, 벚꽃은 일본의 대표적 상징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1908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에서는 왕벚나무와 관련하여 도쿠가와시대에

에도의 꽃집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알려질 뿐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어디에도 자생 왕벚나무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1901년 일본 동경대학의 매츠무라 진죠교수는 왕벚나무를 기재하면서 일본 이즈의 오오시마를

자생지라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왕벚나무가 발견됐던 것이다.

왕벚나무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느꼈을 박탈감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일본의 학자들은 이를 뒤집으려고 일본 내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으려고 애쓰며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나중에는 왕벚나무 잡종설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1928년 제주도에서 실시된 하계대학 강좌의 내용이 같은 해 '문교의 조선' 10월호에 실리는데,

제주도의 식물과 장래의 문제라는 원고를 쓴 이시도야 츠토무는 왕벚나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타케신부가 채집한 표본이 야생상태의 개체라 한다면,

왕벚나무는 훌륭한 뿌리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또 하나는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면 제주 이외의 지역에 같은 종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해남 대둔산에서 왕벚나무 표본을 채집했으나, 표본이 불완전하기에 종의 검정을 할 수 없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이때까지도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 1932년에 일본 경도대학 교수 고이츠미는 한라산 남면 해발 500m 숲 속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한다.

 

왕벚나무와 관련된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자존심은 해방 이후에까지 계속돼,

해방 후 한때는 창경궁을 비롯해 우리나라 각처에 심어졌던 왕벚나무를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 베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왕벚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6호인 신예리 왕벚나무,

159호인 봉개동 왕벚나무, 173호인 해남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가 있다.

 

 

자생지 발견과 천연기념물 지정

우리나라에서 왕벚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때는 1965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등장하는 한 식물학자의 피나는 노력을 알아야 한다.

만장굴과 빌레못동굴 등을 발견한 부종휴다.

1962년 4월 부종휴는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단장인 식물조사단에 참여해 수악 서남쪽 1㎞지점에서

30년생 왕벚나무 1그루와 동남쪽 700m 지점에서 2그루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린다.

이어 63년 4월 물장올 부근에서 박만규에 의해 추가로 발견된다.

다시 부종휴는 1964년 횡단도로 남군과 북군 경계선 도로 동쪽 700고지 부근에서 높이 20m, 밑둘레

1.2m로 50~60년으로 추정되는 자생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는 1990년대 후반 관음사경내와 관음사야영장, 어승생악 등지에서 새로운 왕벚나무가 속속

발견되고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왕벚나무의 고향은 한라산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는 개가를 일구어

내게 된다.

이 중 관음사지구야영장 주변의 숲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과 동시에 여러 종류의 벚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곳으로 관심을 끄는 곳이다.

관음사 주변 숲에서 관음왕벚나무, 탐라왕벚나무 등 새로운 종이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 최근 새로운 벚나무 종들이 발견되고 있는 한라산 관음사야영장의 벚나무 군락

 

현재 한라산에 분포하고 있는 자생 벚나무의 분류군을 보면,

섬개벚나무, 한라벚나무, 벚나무, 잔털벚나무, 사옥, 이스라지나무, 탐라벚나무, 산개벚지나무, 귀룽나무,

올벚나무, 산벚나무, 왕벚나무, 관음왕벚나무 등이 있다.

 

한편 제주에서는 1992년부터 매년 제주왕벚꽃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처음 왕벚꽃축제가 열렸던 제주시 전농로 마을에서는 축제의 개최장소가 제주종합경기장으로 옮겨가자

별도로 서사라문화거리축제를 개최, 올해로 8회째를 맞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새롭게 개설되는 도로마다 유행처럼 가로수로 왕벚나무를

심기도 했었다. 모두들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고향임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다.

 

모두들 자랑하는 왕벚나무의 고향 제주.

하지만 부끄러운 에피소드 하나 보자.

필자는 지난 200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았다가,

보호수 3그루 중 하나가 왕벚나무가 아닌 올벚나무임을 확인, 기사화한 적이 있다.

30여년 간 엉뚱한 나무에 보호철책을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부종휴선생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그동안 무관심했던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차제에 예전에 발견된 나무들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한라산에 또 다른 개체수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수조사까지도.

 

이야기가 옆길로 샌 김에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매년 기상 때문에 왕벚꽃축제의 개최시기를 조정하느라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규모의 부지에 제주에서 자생하는 벚나무 종류를 모두 심을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면 각각의 개화시기가 다르기에 전체적으로는 한 달 가량 꽃을 볼 수도 있다.

축제 개최시기 고민할 필요 없고, 축제를 한 달 내내 진행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장담컨대 10년 후면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관광자원화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글 강정효 사진작가 2012년 4월 26일 <제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