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 學/隨筆 .

'옛날식 다방' / 한상렬

아즈방 2023. 2. 12. 12:37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어디선가 최백호의 구성진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낭만에 대하여', 그래, 낭만이었다.

어쩌다 만날 약속이 되어 있는 날, 층계를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는 컴컴한 다방. 

미로처럼 칸막이가 서 있고 자그마한 탁자에 의자가 둘러쳐진 다방에는 최백호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젊은 아가씨가 엽차를 나르면 인생살이에 쓴맛 단맛 모두 섭렵한듯 여겨지는 기미투성이의 늙은 마담은,

오랜만에 온 손님을 함박웃음으로 맞이했것다. 

이쯤 되면 하릴없는 중늙은이의 입이 반쯤은 찢어진다. 

석유난로 위에는 시커멓게 찌든 1,5리터 주전자에서 물이 설설 끓고 있었지.

 

하루 종일 앉아 노닥거려도,

엽차만 주문하여 벌칵벌컥 들이켜도 미운 소릴랑 하지 않던 옛날식 다방이 있었다. 

50년대 명동거리엔 그런 다방들에 시인이며 묵객들이 드나들었고,
영화판에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도 진을 쳤다고 한다. 

30대에 자주 들렀던 명동거리에 그 다방들은 지금도 그대로인지 궁금하다. 

아니 인천에도 돌체며, 밀밭이라든가 몇 군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다방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승격하여 옮겨 앉더니 슬쩍 상호를 ‘00커피숍’으로 

바꾸었다.

그리곤 알게 모르게 냄새나는 중늙은들을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간 아예 대형 유리창으로 실내 디자인을 바꾸더니,

이번엔 자그마한 탁자에 전화기가 달리고 음향장치가 들어서더니 영화음악을 배경에 깔았다.

음악다방이 영화와 결합한 퓨전이 되었것다.

아, 그랬다. 이름도 이번에는 ‘00카페’ 였다.

지하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는 옛날식 다방이 어쩌다 눈에 띄긴 했지만,

그곳엔 쉰내 나는 중늙은이나 한둘 드나들었다.

세상이 변해 가고 있었다.

 

대천해수욕장이던가.

연전에 문학세미나의 주제발표가 있어 그곳 역전에 닿아 시간이 좀 남았기에 찾아들어간 그 곳 다방들은,

그야말로 옛날식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그 날 나는 그곳에서 신문 꼭지에서 언뜻 본 그 말도 많은 ‘티켓 다방’ 을 떠올렸을까?

 

그나저나 으 옛날식 다방이 그립다.

이름도 웃기는 ‘물다방’ 이 지금도 주안사거리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글쟁이나 그림쟁이들이 진을 치고 벽시전을 열거나 시낭송을 하던 은성다방도 사라졌고,

‘돌체’ 며 한창 사랑에 빠져 드나들던 ‘밀밭’도 문을 닫은지 오래다.

그러니 어디선들 젊은 시절의 낭만을 찾을 수 있으랴. 

이렇게 세월따라 옛것들은 하나둘 사라져 간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매한가지이런가.

왜 사람들은 옛것에 대해 그리 애착을 갖는 것일까?

아마도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낭만과 향수 때문일 게다.

 

고고학자인 세람(C.W. Ceram)은 낭만적 감정의 욕구와 학문적 수양이 동행하는 것으로 보아,

“낭만적인 여행은 학문적인 자기 수양과 보조를 맞춘다.”고 하였다.

그래선가, 골동품 수집가는 골동품이 거래되는 이유를 몇 백 년 전의 누군가와 조우하는 듯한,

낭만적 감동을 주어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고 했다.

학자들은 이런 감정을 ‘모든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이라고 보고 있지만,

옛것에 쏠리는 감정은 역설적으로 ‘의의 새로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옛것을 보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새로움을 발견하지 않던가.

여기 이런 낭만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 감정은 ‘향수’ 일 게다. 

그래, 청마(靑馬)는 휘날리는 깃발에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을 보았다고 했다. 

이렇게 이미지가 즉각 전이되는 것을 보면 향수가 보편적 인간의 속성임을 알게 한다. 

어떤 이는 ‘Noatos’(돌아감)와 ‘Algia(고통)’ 의 합성어로 된 노스텔지어(Nostalgia) 라는 조어가,

의미적이기보다는 원래 있던 말을 발견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렇다. ‘돌아간다’는 것은 원초적인 것과 옛것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돌아가고 싶어서 괴로워’ 하는가? 

실상은 괴롭기보다는 그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즐기는 것으로 보아야 하리라. 

어쩌면 낭만과 향수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최백호의 노랫말이라도 들어보아야 하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