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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하천 - 산지천(山地川)

아즈방 2022. 4. 30. 10:34

 

산지천 (山地川)

 

산지천은 한천, 병문천과 더불어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3대 하천 중 하나이다.

특히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만 해도 제주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했던 `물의 하천'이며 제주의 역사와 수많은 사연이 녹아

흐르고 있다.

한 때 복개로 인해 시궁창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건물과 복개 구조물이 철거돼 하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사라졌던 숭어와 은어가 돌아오고 제주시민들의 새로운 쉼터와 문화공간을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산지천(산지내) 하구의 옛 모습은 빛바랜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만 남아 있다.

초가와 갯가 지형에 따라 작은 배를 대었고 사람들이 이동했던 자연포구였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벌거벗은 채로 벗들과 멱감던 추억과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허벅으로 물을 길러 나르던 정겨운 풍경이 있던 곳이 바로 산지내였다.

해안으로 길게 뻗은 동․서부 방파제와 각종 대규모 항만시설, 빙딩 숲을 이룬 현재의 모습에서 옛 산지천 포구를 떠올린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산지 하구였던 용진교 일대는 탐라 개벽설화에 나오는 건돌개(健入浦)터.

고대 탐라 때의 교통항으로 추정되는 곳이며 1897년부터 기선이 취항하면서 명실상부한 제주도의 주 교통항으로 발전하였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사회복지가로 이름을 날린 김만덕의 객주터도 산지포구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용연, 외도월대, 방선문 등 성 밖의 명소를 제외한다면 제주의 명소는 대부분 산지천을 끼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금산(禁山).

제주성 북성 문턱에 막바로 바다에 낭떨어지를 이루며 우뚝 뻗은 이 언덕에는 제주 특유의 난대림이 우거져 오랫동안 입산이

통제되면서 `금산'이란 이름이 생겼다.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는 `산포조어'는 바로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산지천 하류는 1960년대 후반 도시화와의 물결을 타고 일부 구간이 복개되고 상가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복개 구조물이 노후되고 안전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 복개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안전진단결과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복개 구조물이 철거되고 복원을 위한 첫 삽을 뜨기 까지는 많은 논의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상권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다시 복개를 해서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산지천의 옛 공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시민 다수의 바람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산지천은 동문교에서 하구 용진교간 474m 구간에 걸쳐 1백10억원의 넘은 예산을 들인 끝에 시민들의 쉼터로 돌아왔다.

산지천 복원 구간과 연결된 곳이 도내 최대 재래시장인 동문시장이다.

하구의 복원과 남수각 수해상습지 정비사업으로 동문시장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대식 대형할인매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전통의 재래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여전히 정겨운 곳이다.

시장을 벗어나면 상류는 몇년전 정비된 남수각 수해상습지이다.

주변 무허가 건물들도 대부분 철거된 모습이다.

이 일대는 비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많은 침수피해가 났던 발생했던 곳이다.

가장 최근의 물난리는 1999년 7월 가옥 1백70동이 침수된 사례가 있다.

이후 제주시는 190억원에 이르는 많은 예산을 들여 동문교~오현교 남수각 일대 하천을 정비하고 주변 건축물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켰다.

또 단골 민원이었던 이 일대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차공간을 확충해 재래시장 활성화도 꾀하고 있다.

남수각 일대는 제주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된 제주성지이며, 제주성 남수문이 있던 터가 바로 남수각이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다섯 분을 배향했는데 바로 오현단이다.

충암 김정선생과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선생이 그들이다.

오현교를 벗어나면 하구와는 달리 하천은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절벽과 집채만한 바위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곳은 환경오염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산지천 하류는 제주의 대표적 역사문화유적지와 관광명소를 끼고 있다.

오현단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적 제134호로 지정된 삼성혈을 비롯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신산공원, 문예회관이 모여 있다.

산지천 변에 이같은 명소가 자리하고 있음에 다라 이 일대와 산지천 하구까지 연결해 문화관광벨트화하는 구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도심 한복판에 연중 마르지 않는 산지천의 용출수를 확대 재현해야 한다는 여론은 더욱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제주경찰서를 지나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일도2동 제주학생문화원과 수운공원 일대는 비록 하상은 정비돼 원형이 훼손됐지만

비교적 계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도시계획 지구로 정비돼 하천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주택지가 조성되면서 하천의 오염원이 차단돼 있다.

하천내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산지천은 돌공원인 목석원과 삼의양오름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화북천과 더불어 산지천에도 일제가 구축한 진지동굴이 집단 분포해 있다.

해발 440~480m 일대에 진지동굴로 보이는 인공굴을 확인할 수 있다.

산지천 상류 지점인 산천단 일대는 일제말 일본군이 집단 주둔했던 장소로 알려진 곳이며,

당시 일제 방어진지로써 대규모 진지동굴이 구축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북천과의 진지동굴과도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천은 깊은 V자형 구조를 보이다가 발원지가 가까워지면 완만해지고 발원지에 이르면 결국 평지의 모습을 띈다.

해발 570m쯤 되는 지점이다.

주변은 목장지대이고 관음사, 산록도로와 닿아 있다.

 

 * 출처 : 한라일보 대하기획 `한라산학술대탐사' 제1부/ 생명의 근원, 하천과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