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濟州道/濟州의 길 .

‘올레’ 위에서의 단상(斷想) / 고권일

아즈방 2022. 3. 6. 09:55

길은 살아있는 것들의 통시적(通時的) 기록이다.

세상이란 벌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섰던 생명체들이,

그들에게 허여(許與)된 시간 위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눌러 쓴, 진솔한 삶의 이력(履歷)이다.
그러기에 각각의 길들은,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길은 은밀하고 고독하다.

눈에 보이는 길보다 보지 못하는 길, 갔던 길보다 가보지 못한 길이 더 많은 이유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의 길들을 다 아는 것처럼 현학적(衒學的)이다.

‘오만과 편견’이 빚어낸, ‘호모 사피엔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길은 원초적이고, 강렬한 생명을 그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신작로(新作路)가 개설되면서, 그 길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스팔트와 아스콘, 또는 시멘트로 덧칠된 신작로는, 복마전(伏魔殿)의 혼돈(混沌)에 다름 아니다.

오래된 길의 숨통을 막고, 적층(積層)된 삶의 이력들을 송두리째 깔고 앉은 그것들은,

더 이상 상생(相生)의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옷깃을 스치고 숨결을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생명의 길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금속성 이기(利器)에게 바치는, ‘경제적 동물’의 희생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신(物神) 숭배의 유물론(唯物論)이란 미망(未忘)이 잉태한 ‘리바이어던’.

살아있는 것들이 추방된 야만의 도로 위에는, 오늘도 자동차의 번쩍이는 질주와 경적의 굉음만이

낭자하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오래된 길의 부활이 시작되고 있다.

동구 밖에서 초가집으로 이어지던 ‘올레’를 걸었던 유년의 발자취를 반추하며,

제주 곳곳에 생명의 길을 연, 한 여인의 혜안(慧眼) 덕분이다.
그녀 덕에 요즘 제주길은, 신생아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올레 위에서, 속도 대신 느림의 미학을 택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건강과 사유(思惟)의 요람으로 평화롭게 흔들리고 있다.
고향이 서귀포인 그녀의 방명(芳名)은 서명숙이라고 한다.

 

고권일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