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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濟州道/漢拏山 . 74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11] 조선시대의 산악가이드들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11] 조선시대의 산악가이드들 1578년 최초의 산행기록 "산척·스님따라 등반"전해 존자암은 옛 '베이스 캠프' 스님이 안내·해설사 역할 "등산은 곧 도를 배우는 것" 산행 전 공부 본받을만 해 ▲ 운무로 뒤덮힌 영실 풍경. 조선시대에는 ‘산척’(山尺)이나 스님, 아전 등 산악가이드 역할을 했던 이들과 함께 올랐다는 기록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산행 필수 지침서 「남명소승」 한라산에는 현재 5개의 등산코스가 있다. 어리목과 영실, 돈내코, 관음사, 성판악코스가 그것이다. 그 리고 각 등산로마다 수많은 표지판과 함께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일부러 등산로를 이탈하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우려는 없다. 그렇다면 등반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조선시대 한라산 산행..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10] 제주조릿대의 두얼굴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10] 제주조릿대 강한 번식력 산 뒤덮어, 생태계 교란 이어져 벌채 등 대책 마련 시급 흉년 때 일용할 양식, 기능성 식품 원료로 각광 인삼 능가하는 약성 보유 ▲ 제주조릿대로 뒤덮인 한라산 중턱. 구상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온통 제주조릿대 뿐이다. #흉년 이겨낸 고마운 식물 며칠 전 한라산을 찾았다가 놀라운 장면을 봤다. 해발 900m에서 1000m에 이르는 구간의 제주조릿대가 잎사귀는 없고 가지만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원인은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알려진 멸강나방 유충. 강한 번식력으로 '강토를 멸망시켰다'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란다. 멸강나방은 무리지어 다니는 특성으로 인해 지나간 자리의 풀이 모두 누렇게 변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한다. 주로..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9] 생물권보전지역 10년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9 ] 생물권보전지역 10년 활용 계획 실행 안돼, 지정 10년 성과 미미 "구슬도 꿰어야 보배" 민관 합동 엄격 관리, 생물권 로고 부착 등 외국사례 본받아야 ▲ 생물권보전지역인 효돈천의 상류. #DMZ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유보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24차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 국제조정이사회에서 우리나라의 DMZ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유보됐다고 한다. 지정이 유보된 이유는 DMZ를 낀 남쪽 생태축 중 하나인 철원군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구획에서 빠진 것을 비롯해 북한 지역이 제외되는 등 유네스코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준에는 장기보호가 가능한 핵심지역과 이를 둘러싼 완충지대, 생물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전이지대가 충분히..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8] 케이블카 논쟁 40년사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8 ] 케이블카 논쟁 40년사 12차례 시도 논란…"생태·경관 영향 부정적" 부결 세계가 인정한 '한라산의 가치' 후손들에 물려줘야 ▲ 한라산 선작지왓. 우리나라 유일의 고산초원으로 예전 케이블카가 이곳을 통과해 윗세오름 중봉으로 이어질 계획이었다. #케이블카 ‘불가’ 제주의 결정 며칠 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지난 10년간 지속되었던 몇 군데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려해상 1곳을 제외한 지리산과 설악산, 월출산 등 6곳의 케이블카 계획에 대해 모두 '부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 환경부에 케이블카 건설을 신청한 곳은 모두 7곳이다. 국립공원 지역으로는 지리산의 경우 구례군과 남원시, 산청군, 함양군 등 4곳에서 신청을 했고, 설악산은 양양군에서..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7] 한라산철쭉제 변천사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7] 한라산철쭉제 변천사 가슴까지 붉게 타오르는 자연의 예술작품 ‘혼자 보기 아까운’ 색채의 향연, 철쭉제로 시민과 공유 열풍 뒤엔 자연훼손 역기능도¨“아쉽지만 욕심은 금물” 1967년 시작, 수많은 화제 낳아 ◀ 철쭉꽃 만발한 한라산 만세동산 1967년 5월 21일 폭우가 쏟아지는 한라산 성판악. 100여명의 산악인들이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제주시에서 오전 6시 버스로 출발하여 성판악, 사라악으로 정상에 올라가서 철쭉제를 지내고, 개미등, 산천단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그러나 행사당일 버스로 성판악까지 갔으나 폭우로 인해 등반할 수 없어 코스를 변경하여 물장올, 태역장올, 골프장, 제주시로 하산해야 했다. 한라산에서의 첫 번째 철쭉제는 이렇게 미미하게 시작됐다. 당시 회..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6] 원숭이가 뛰놀던 한라산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6] 원숭이가 뛰놀던 한라산 "노루의 고향 한라산, 그곳에 '원숭이'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제주 원숭이 등장…토종 여부는 알 수 없어 까치 등 유입종 피해도…수만년 이어온 생태계 간섭 줄여야 왕조실록이 전하는 '원숭이 6마리' ◀ 일본의 야생 원숭이 예전 기록에는 등장하지만 현재 한라산에 서식하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로는 사슴 외에도 원숭이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원숭이 관련 글을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모두 세종임금 때이다. 먼저 세종 16년(1434년) 4월 11일자에 왕이 전라도 감사에게 지시하기를, "첨치중추원사 김인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원숭이 여섯 마리를 잡아 길들이게 했는데, 지금의 이붕목사에게 전해주고 왔다. 일부러 사람을 보내 출륙시킬 필요까지는 없고,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5] 고상돈과 오희준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5] 고상돈과 오희준한라산 품으로 돌아간 제주의 산악영웅들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 '적토마' 오희준이달 추모제…기념관 건립 등 재조명해야 희망·용기 심어준 최고 산악인몇일 전 서귀포 토평4거리 오희준공원에서 진행된 산악인 오희준 5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그리고 오는 5월 29일에는 한라산 1100고지 고상돈공원에서 산악인 고상돈의 32주기 추모제가 열린다. 5월에 우리는 한라산이 배출한 최고의 산악인 두 명을 잃었다. 정상의 사나이 故 고상돈과 적토마 故 오희준이다. 고상돈은 1979년 5월 29일, 오희준은 2007년 5월 16일 사망했다. 당시 고상돈의 나이 30세, 오희준은 37세였다. 둘 다 한라산 자락에서 태어나 한라산을 보면서 꿈을 키웠고, 마침내 우리나라 최고의..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4] 그 많던 사슴은?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4] 그 많던 사슴은? 하얀 산 뛰놀던 하얀 사슴, 이젠 ‘옛 영화’ ▲ 과거 하얀 산에서 뛰놀던 옛날의 영화를 그리는 한라산 1100고지의 백록상 기록만 남은 한라산 서식 큰사슴·꽃사슴 남획으로 1910년대 멸종 순록·대만사슴 대체 계획도 실패…인간 욕심에 ‘한라’ 상징물 잃어 한라산의 상징 ‘흰 사슴’ 많은 이들이 한라산이라 하면 먼저 백록담을 떠올릴 것이고, 그와 연관하여 하얀 사슴을 그린다. 백록담이라는 지명 하나만 하더라도 하얀 사슴이 물 마시러 드나들던 못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그리고는 왜 한라산에 사슴이 한 마리도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한라산에는 사슴이 없다. 농가에서 사육하던 사슴이 울타리를 뛰쳐나간 경우는 보고되고 있지만. 한라산의 사슴..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3] 왕벚나무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3] 왕벚나무 ‘제주 고유종’ 왕벚나무의 고향 일본과 치열한 자존심 경쟁 속 제주 자생지 발견으로 오명 벗어 탐라왕벚나무 등 신종 속속 확인…철저한 보호·관광자원화 필요 일본 억지로 고향찾기 ‘험난’ 며칠 전 제주절물휴양림에서 올벚나무 20여 그루의 거목(巨木)들이 자생하는 군락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의 올벚나무 거목들은 직경이 약 50∼95cm, 수고는 12∼15m내외, 수간 폭 10∼15m정도라 한다. 수령은 1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뉴스다. 한동안 제주도의 식생은 1800여종, 최근에는 2000여종 가까이 된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새로운 종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2] 한라산신제의 변천사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2] 한라산신제의 변천사 태고부터 섬 지켜온 제주백성의 수호신 한라산에 깃든 ‘한라산신’에 대한 숭배의 역사는 탐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라산신제는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무속신앙·유교·불교·마을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탐라국 때부터 시작, 가치 인정 도기념물로 지정 "백성 얼어죽지 않게…" 제단 이동에 담긴 배려 1601년 10월 20일(음력 9월 25일) 새벽 4시 한라산 백록담 남동쪽 아래. 바위틈에 기대어 장막을 쳤던 한 무리의 일행이 백록담 정상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이들의 목적지는 백록담 북쪽 모퉁이에 위치한 제단. 과거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단은 바위 사이에 널따랗게 자연적인 제단이 형성돼 있다..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1] 한라산 이름은 언제부터 불렸나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1] 한라산 이름은 언제부터 불렸나 섬과 산 일체감, 제주인의 안식처 ▲ 제주사람들에게 제주의 상징물로 첫 손에 꼽히는 한라산이 맑은 하늘 아래 웅혼하면서도 자애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제주사람들에게 제주의 상징물에 대해 묻는다면 첫 번째로 무엇을 꼽을까. 지난 2005년 제주도의 한 신문사에서 제주도의 이미지로 생각나는 상징물을 조사한 결과, 한라산이 33.5%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어서 감귤(29.2%), 청정지역(12%), 휴양관광지(8.9%), 삼다도(7.9%) 등의 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사람들에게 있어서 한라산은 어머니의 산으로 자리한다. 한라산이 곧 제주도요, 제주도가 한라산이라 표현하며 굳이 한라산과 제주도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나고 자란 곳이요, 훗..

백록샘

백록샘은 부악(한라산)의 남벽 아래인 해발 1,655m에 위치하여, 제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이다.이는 곧 제주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최고(高)에 위치한 샘에 해당이 된다.연중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면서 고인 물이 아니고 꾸준히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 백록샘은 남벽 분기점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있다. * * * * * 백록샘은 해발1680m 한라산은 물론이고 남한에서 가장높은 위치에 있는 샘이다가뭄이 아무리 심하여도 백록샘은 수량이 변함 없으며 물맛도 좋고 시원하다. 백록샘은 한라산 남쪽 최대 물길인 효돈천의 발원지 이다. 산악인 오희준 케른(산악인들이 추모하는 뜻으로 쌓은 돌탑) "백록샘, 사슴도..한라산 신령도 마셨을 듯.." (한라산탐방기) 해발 1,655m,..

한라산, 속세의 풍광은 삼천리 밖에… 神仙이 부는 퉁소 들리는 듯

임제의 에 나오는 존자암·영실·백록담 등 선계 같은 장소 따라 올라 한라산 영실기암들이 가을 단풍에 가려 제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한라산(1,950m) 정상에 최초로 오른 사람은 조선 중기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로 알려져 있다. 그는 1577년(선조 10) 29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당시 제주목사로 있던 아버지 임진에게 인사하고, 4개월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한라산에 올랐던 기록을 그의 속 에 남겼다. 남명은 남쪽 바다를 말하고, 소승은 작은 역사서, 즉 기록물이라는 뜻이다. 남쪽 바다를 기행한 작은 기록물이란 의미다. 한라산이 한반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시절, 조선 선비들의 유람 분위기에 편승해서, 바다 건너 영주산이라 불리는 신선의 산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

한라산 털진달래와 산철쭉 개화시기

5월이 되면 한라산 해발 1700m 선작지왓, 윗세오름, 장구목, 왕석밭, 움텅밭 등의 넓은 관목림지대에는 홍자색의 꽃물결을 이룬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잎이 채 나오기도 전에 털진달래가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리며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다. 윗세오름 선작지왓의 털진달래는 이 맘때 한라산을 대표한다. 진달래와 철쭉꽃을 구분하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철쭉과 털진달래, 산철쭉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 관목림지대에 자라는 진달래속(屬)은 진달래, 철쭉이 아니고, 털진달래와 산철쭉으로 부른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진달래의 변종이다. 잎과 어린 가지에 털이 나있는 모습에서 일반 진달래와 구분된다. 털진달래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정상부근에 자생한다. 한라산 털진달래와 산철쭉은..

한라산 나이는 최소 1만9,000년

마지막 화산 분출 시점 추정… 백록담 퇴적층 16m 지점은 1만4,000년 전 방사성 탄소연대로 퇴적층 측정… 레이더로 실측한 정상은 1,947.30m 한라산 백록담은 언제 생겼으며, 한라산 화산 폭발은 언제 마지막으로 이뤄졌을까? 또 한라산의 높이는 일반적으로 1,950m로 알려져 있는데, 실측한 정확한 높이는 얼마일까?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한반도의 유일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호 구역인 제주도 한라산에 대한 본격 연구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한라산연구본부는 연간 4억원씩 총 16억원의 예산을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개년 계획으로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대상도 매년 다르다. 한라산의 ..

한라산 입장료 징수

내년 한라산 입장료 징수 제주 '청정과 공존' 시험대 한라산 입장료 2만원 기준, 성산일출봉 1만원 기준 한라산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10년 만에 부활할 전망. 2017년 하반기부터 입장료 징수 한라산 입장료 '2만원' 현실화…단체 입장객 감소 전망 성산일출봉도 2000원 → 1만원 내년 하반기부터 제주 한라산 입장료가 신설되고 성산일출봉의 입장료도 대폭 인상된다. 이는 급증하는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제주 자연가치 보전과 관광문화 품격 향상을 위한 도·의회·도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워킹그룹은, 15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도내 관광지 입장료 현실화 방안'과 '직업형 제주 해설사 도입' 안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25일 워킹그룹 전체회의에서..

기후변화로 변해 가는 漢拏山

우리가 기대어 쉬던 나무들이 사라져간다. 제주조릿대의 무한번식, 죽어가는 구상나무 … 생태계 파괴 우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시각도 .. 아고산대(고산대와 저산대의 사이로 해발 1,500~2,500m 지대)의 침엽수림이 말라 죽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다. 고유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말라 죽은 자리를 조릿대가 채운다. 막연한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기후변화의 징후가 우리 산림에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의 기온 상승률은 1.7℃로, 전 지구 평균 기온 상승률인 0.75℃보다 높다. 경희대 지리학과 공우석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림피해는 고산대·아고산대에서 가장 크다”며, “이 고도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빙하기 한랭기후에 적응한 한대성식물이기 때..

한라산을 언제부터 ‘삼신산’ 영주산으로 불렀을까?

한라산을 언제부터 ‘삼신산’ 영주산으로 불렀을까? 조선 후기 17세기 들어 문헌과 고지도에 한라산에 영주산 표기 보여 제주도 한라산을 흔히 중국 전설 속의 삼신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이라 부른다. 금강산을 봉래,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한다. 이 세 산은 명실상부 명산 중의 명산이다. 하지만 실상 우리나라 고지도나 지리지에 삼신산으로 지칭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특히 한라산은 지리산이나 금강산보다 훨씬 뒤에 명산반열로 올라선다. 아마 육지 밖의 섬산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530년) 고적편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중략) 한라산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東瀛洲)라 한다. (후략)’ 한라산을 가리켜 영주산이라 명기한 최초의 기록이다. (..

모세왓(모살밭)

모세밭(모살밭) 모새밭 험한 길을 네 어이 헤매더니구렁에 빠질 적에 오죽이나 울었으랴.듣고와서 구할 이 없이 예서 혼자 죽었구나.비바람 불고 가고 눈서리 치고 가고껍질도 살도 썩고 백골만 남았구나.세상에 헛된 것이란 생명인가 하노라. - 이은상의 한라산 등반기중 - ******************** 선작지왓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니 장비와 인부들이 떠나 돌가루만 날리는 채석장 같은 곳이 북에서 남으로 이어져 있다.어떤이는 달나라 표면 같다고 하고, 또다른 이는 모살밭(모래밭 제주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규모가 계속 넓어지고 있는것이 문제이다.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섞어 놓은 듯한 색을 한 저것들이 흙인지 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사진으로 전문가에도 물었지만 속시원하게 대답하진 않는다.다만 주변..

선작지왓 / 명승 제91호

선작지왓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 산 1-0 명승 제91호/ 2012년 12월 17일 지정 선작지왓은 영실 등반로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병풍바위를 지나 한라산 정상 밑 넓은 들판이 선작지왓이다. 작은 돌을 뜻하는 제주어 "작지"와 제주어 "왓"은 들판을 뜻함으로 "돌이 널려있는 들판" 으로 해석된다. 고산초원 선작지왓에는 수많은 고산식물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봄이면 수십만평 들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털진달래가 분홍빛 꽃을 피우면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 하기도 한다. . 888888888888888888888 선작지왓 탑궤 선작지왓에 자리한 탑궤는 형태나 구조상 특별함을 갖추고 있다. 지반 아래는 막혀 있으면서 우뚝 솟아오른 기암의 모양새는 일반적인 궤로 여기기에 힘들 정도이다. 현재 이 ..

'물가메왓'(소백록담)

한라산 1550m 지점 산정화구호 소백록담 수면에 수생식물 ‘가래’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덮여 있다. ‘물가마왓’으로도 불리는 소백록담은 노가리나무 단풍나무 등 빽빽한 숲에 가려 1996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소백록(小白鹿) 한라산 표고1550m 지점의 산정화구호. 왕관릉에서 동쪽 1km 정도,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북서쪽 1.5km 정도 떨어져 숲속 깊숙히 숨어있는 산정호수. 소백록의 정확한 명칭은, "물가마소", 또는 "물가마메왓"이라고 한다. 소백록이란 이름은 제주의 사진작가 서재철씨가 붙인 이름이다. 1996년 항공사진 촬영중 가매왓에 호수가 있음을 발견한 이후로는, 소백록이 있는 일대를 "물가메왓"이라고 부른다 고채목, 주목, 구상나무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해발 1,550m...

백록담(白鹿潭)의 사연

한라산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영산이다. 한라(漢拏)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남한 최고봉이면서도 사람들을 가까이 하여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산으로, 산마루에는 분화구였던 백록담이 있으며, 사계절이 뚜렷하게 변화를 보이는 신비롭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명산이다. 아득히 먼 옛날, 한라산 백록담 못에는 매년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복날이 되면 하늘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는 선녀들이 깊은밤에 내려와서 목욕을 하였다고 하는데, 선녀들이 내려올 때는 한 신선이 함께 내려와 못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다가, 동이 트기 전에 목욕을 한 선녀들을 다시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선녀들에게는 이 일이 매년마다 반복 ..

한라구절초 / 한라의 거친 바람에 바짝 엎드려 핀 순수한 분홍색 구절초

한라의 거친 바람에 바짝 엎드려 핀 순수한 분홍색 구절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들국화. 가수 이름부터 술, 詩, 영화 제목에 이르기까지 들국화는 우리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꽃이다. 수많은 침략과 억압을 이겨내고 기어코 다시 일어나 발전된 나라를 이룩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꽃인지라 더욱 사랑받는 꽃이다. 하지만 식물도감에서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들국화는 말 그대로 ‘들에서 피는 국화’란 뜻이다. 통상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은 구절초를 말한다. 쑥부쟁이, 해국, 감국, 산국 등도 국화에 포함된다. ‘구절초’는 약으로 쓰는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것이다. 가을에 채 꽃이 피지 않은 식물을 잘라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쓰는데, 5월 단오가 되면 마디가 다섯..

한라산 최초의 조난

◆한라산 조난 그 자취 (1977년 서재철 기자가 쓴 신문기사를 정리함) 첫번째 - 일본 경성제국대학 산악부 마애가와 도시하루(前川智春) 한라산이 인간에 의해 정복되기는 아주 오래 전이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연대를 알 수 없지만 李朝이전에도 공식적인 등반이 아니더라도 정상을 올랐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한라산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일본 京城帝大 등반대의 조난사고 이후 일 것이다. 당시 일본은 본도에 중국대륙 폭격 기지를 두고 있었기때문에 일반인의 한라산 등반이 일체 금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6년 경성제대산악부 마애가와(前川智春)의 조난사고 이후 많은 국내외 산악인들이 한라산으로 눈길을 돌려 올라보고 싶어 했으나 해방이 될 때까지는 오를 수가 없었다. 8.15해방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