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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 안병태

아즈방 2023. 7. 10. 11:04

걸레 / 안병태 

  

여덟 폭 차곡차곡 접은 타월로 방을 닦는다.

방 두 개까지는 조신하게 잘 닦았으나 세 개째부터는 게으름도 나고 무릎도 아파,

초등학생 시절 교실 마룻바닥 닦던 자세로 좌르르 냅다 달리면서 방을 닦다가,

안주인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치껏 건성건성 날치기로 닦는다.  

“이놈아 그게 무슨 짓거리냐, 마음 속 먼지를 닦듯 법당바닥을 닦아라!”  

문득 소백산 도솔암의 노스님 호령소리가 들린다.

사십 년 전 그때 법당바닥 닦던 자세 역시 엉덩이로 하늘을 찔렀었나보다.  

법당바닥과 마음바탕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기는커녕, 새벽 세시 기상만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입산한 지 보름 만에 퇴출당해 하산하고 말았었다.  

사십 수년 세월을 훌쩍 건너온 지금,

그 시절 그 노승의 꾸중을 이제야 알 듯도 하여 새삼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듯 꼼꼼하게

방을 닦아본다.

그러나 닦아도 닦아도 닦이지 않는 가구들 틈새의 먼지가 있다.

장판지가 미어지도록 닦아도 닦이지 않는 얼룩이 있다.

내 마음 틈새의 먼지와 얼룩, 사회 구석구석의 먼지와 얼룩 같다.  

대청소를 마치고 걸레들을 빨아 빨래걸이에 널었다.

분홍색, 초록색, 흰색… 색깔도 가지각색이지만 출신도 제각각이다.  

 

-김일규 팔순 기념-  

벌써 십 년 전이로구나.

그날은 웬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리던지.

친구 부친 팔순잔치 얻어먹으러 가다가 까딱 살골 벼랑에 차를 곤두박질시킬 뻔했었지.

그 타월이 어쩌다 걸레가 되어버렸을까.  

친구는 위로 형이 둘이나 있었다.

팔순 노인은 대도시 형들이 모셔 가면 하룻밤만 자고 그냥 도망 오듯 돌아온단다.

자식 집이란 게 어째 사돈집에 간 것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편하더란다.  

나도 맏이지만 선친은 따로 사셨다.

계모가 한사코 내 집에 들어와 같이 살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생모의 요절이 가져온 비극 중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래, 저것은 서울 제수씨가 추석에 내려왔다 안 챙겨간 타월이구나.

그것이 어쩌다 걸레가 되어버렸을까.  

제수씨는 하나님과 동생을 동시에 사랑하는 모양인데,

동생은 제수씨의 사랑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다고 불평이 많고,

제수씨는 제수씨대로 동생의 믿음이 식었다고 불평이 많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를 일이다.

티격태격할망정 찢어지지나 말고 살아주었으면 한다.

이혼율이 하도 높아지다 보니 별 걱정을 다한다.  

 

-사용 후 돌려주세요. 석천탕-  

저런! 저것은 이집 안주인이 석천탕에서 슬쩍 가져온 타월인 모양이다.  

목욕탕을 경영하는 어느 친구 걸핏하면 한숨지어 가로되,

“남탕에서 벌어 여탕에 메우고 나면 남는 게 없어…”  

그 말뜻을 이제야 알 듯하다.

시간도 세 배, 물 소모량도 세 배, 게다가 타월 도난까지!  

사내 나이 미구에 이순인데,

반백의 대장부가 팔 걷어 부치고 하는 일이 고작 방청소요, 빨래걸이 쳐다보며 걸레 점호라니….  

 

10여 년 전, IMF 여파로 휘몰아친 대규모 명예퇴직,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승진과 전보가 무더기로

이루어진 인사이동이 있었다.

승진에 낙마한 내 옆자리 여직원이 경쟁 상대이던 타 부서 어느 여직원을 지적해,  

“걸레 같은 것!” 하며 허공에다 눈을 흘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어이한 사연인지는 알 수 없으되, 여인이 행실을 어떻게 했으면 같은 여인의 눈에 걸레로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 후 직원들은 쉬쉬하며 승진한 여직원을 걸레라고 불렀다.

와각지쟁(蝸角之爭) 아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게 승진 아니냐.

그렇게 선의의 경쟁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나처럼 정년퇴직해 방이나 닦아야하는 것을.

다 부질없는 짓인 것을…. 

 

걸레라는 모욕적 별명을 얻어 남의 이목에 오르내린 여인이 있는가 하면,

온 세상을 향하여 스스로 “나는 걸레다!” 라고 외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허튼 소리’의 주인공 걸레스님, 즉 중광스님이다.  

불가에 있을 때는 속세를 동경하고,

속세에 나와서는 불교 세계가 그리워 출가, 파계, 출가를 반복하다, 

“괜히 왔다 간다. 내가 죽거든 가마니에 둘둘 말아 금수들의 먹이가 되도록 해다오”하고 유언한 뒤,

무대에서 사라져간 그는 화가, 시인, 기인, 파계승, 여러 여인네들의 애간장을 녹인 풍운아였다.  

 

스팀식, 회전식, 흡착식, 착탈식…,

요즘 걸레의 질을 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용도와 기능에 따라 걸레의 종류도 다양하다.

옛날 그 암자의 걸레는 밀가루포대였다.

미국과 한국이 악수하는 그림의 구호물자 밀가루포대.

그조차 스님의 속옷으로 쓰이다 너덜너덜해지면 걸레로 전락했다.

걸레의 변천사여!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윤방’이라는 묘사제조가 급한 김에 종요 신주를 노비 옷과 걸레로

둘둘 말아 짊어지고 탈출한 일이 있었다.

그는 신주를 무사히 모시고 나온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레로 인해 난이 끝난 후 불경죄에 걸려

삭탈관직 당했거니와, 걸레는 늘 좋은 일을 하면서도 대접은 못 받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걸레로 태어난 걸레가 어디 있으랴.

저 걸레들도 뽀송뽀송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얼굴 닦이로 쓰이다가,

강등하여 발 닦이로 쓰이다가,

종내 걸레로 전락해 저 지경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 저 정도라도 되니까 걸레로 쓰이지,

저러다 얇아지고 미어지고 찢어지면 창틀에 누적된 먼지와 모기들의 시체들이나 싸잡아 안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릴 것을.  

나도 평생을 ‘안 주사!’ ‘안 대감!’ ‘안 박사!’로 불리며 모범 공무원으로 잘 나갔었다.

그러던 것이 정년퇴직하여 백수가 된 뒤 소일삼아 어떤 시설에 허드렛일을 잠시 봐줬더니,

소나 개나 나를 ‘안씨!’ ‘아저씨!’라고 호칭에 당장 걷어치우고 말았거니와,

비단옷도 낡으면 걸레가 되는 법이다.

멀쩡한 타월도 한 번 걸레로 쓰이면 그로부터 걸레,

한 번 걸레는 영원한 걸레인 것이다.

삶아 빨아 다림질해도 어쩔 수 없이 걸레는 걸레,

실크 걸레를 드라이클리닝 해봤자 걸레는 걸레인 것이다.

걸레의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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