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질 최고 3배 고소한 맛이 절정 전어
입추가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이맘때 무더위에 잃었던 식욕이 슬슬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왕성한 식욕에 불을 지피는 바다 것들이 있다.
바로 전어와 고등어, 꽃게다.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 중 하나가 바로 전어다.
청어목 청어과인 전어는 고등어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으로, 수온이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남북으로 회유하는 습성을 지닌다.
겨울에는 제주도를 비롯한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살다가,
여름철 산란을 마친 후 가을에는 남해와 서해로 들어오는 난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온다.
전어는 사철 잡히지만 9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잡히는 것이 가장 맛이 좋기에,
‘가을 전어’가 고유명사화 되었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는〈蘭湖漁牧志>라는 생선도감에서 전어를 두고,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해 사먹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 불렀다’고 썼다.
기름기 많아져 더욱 고소해지는 전어
전어는 여름철 산란기 때는 지방을 비롯해 대부분의 영양분이 빠져나가 비린내가 나고 맛도 떨어진다.
산란을 마친 전어는 먹이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8월부터 조금씩 살이 차올라 9월 정도에는 지방 성분이 봄·여름 보다 최고 3배까지 높아져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전어는 최대 30cm까지 자라는데, 이즈음에는 15~20cm 정도로 딱 먹기 좋은 크기다.
전어가 너무 크면 맛은 더 고소하나 뼈가 억세 먹기 불편하고,
너무 작으면 살집이 푸석푸석해 맛이 없다.
흔히 뼈째썰기(세꼬시)용은 15~20cm 정도 크기가 좋고,
구워서 먹을 거라면 클수록 좋다.
대가리와 내장을 통째로 먹을 수 있다면 뼈 때문에 너무 큰 것보다는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전어가 좋다.
가을 전어가 맛있기로 소문나면서 수요가 넘쳐나자 10여 년 전부터는 전어양식도 활발해졌다.
자연산 전어와 양식 전어는 맛에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양식은 15cm 정도 자란 후 시장에 내놓기에 크기가 일정하다.
자연산이 길고 유선형 체형을 가졌다면,
양식 전어는 사료를 먹고 자라 몸통이 조금 더 두껍다.
‘떡전어’라 부르는 것들은 20~30cm 정도 되는 큰 전어를 말한다.
전어는 그에 얽힌 속담이 많기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것이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속담이다.
기름기 많은 전어 굽는 냄새가 좋은지 집이 싫어 나간 며느리도 그 냄새에 혹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다리에 올라간 남자 앞에서 주인공 성찬은 번개탄에 전어를 구우며,
“지금 돌아가시면 전어 맛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아시지요?”라며 그를 회유한다.
결국 그 남자는 “내리 가드라도 이건 다 묵고 내리 가야재!”라며 자살을 포기한다.
며느리는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집에 돌아왔건만,
맛좋은 전어를 쉽게 내어줄리 만무,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은 좀 매정하게 들린다.
‘가을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가을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등의 속담 또한,
전어의 고소한 맛을 비유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어로 유명한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충남 서천의 홍원항은 전남 광양항과 전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전어는 성질이 급해서 자연산은 수족관에서 이틀 이상 살지 못한다.
갓 죽은 전어라면 회를 떠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신선함을 따진다면 홍원항처럼 갓 잡아 온 포구에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전어는 주로 구이나 회무침 등으로 먹는다.
굵은 소금을 툭툭 뿌려 연탄불이나 참나무 숯에 은근히 구워 내는 전어구이의 고소한 맛은 대가리와 내장을 함께 먹어야 더욱 진해지니,
대가리부터 입에 쑥 넣고 뼈째 오물오물 씹어 먹어야,
‘전어 좀 먹을 줄 안다’는 소리를 듣는다.
1. 전어 뼈꼬시는 깻잎에 매운고추와 마늘을 얹어 된장을 발라 싸 먹는 게 정석이다.
2. 전어 뼈꼬시를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에 무친 전어회무침.
갖은 채소가 어우러져 막걸리 안주로 딱이다.
뼈째 두툼하게 썰어 낸 ‘뼈꼬시(세꼬시)’는 깻잎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얹어 된장을 발라 싸 먹는 것이 정석이다.
살 자체의 고소한 맛이 좋아 자극적인 초장보다는 된장이나 막장이 더 어울린다.
회를 뜨고 남은 내장은 젓갈인 ‘전어속젓’으로 담아 먹는다.
전어속젓은 담근 지 보름쯤 지나면 익는데, 먹을 때는 풋고추와 다진 마늘,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친다.
전남 경남 등 남도지역에서는 완두콩만 한 전어 위를 모아 젓갈을 담가 먹었는데,
이를 ‘전어밤젓(돔배젓)’이라 한다.
호남 지방에서는 전어 깍두기를 담가 먹기도 했다.
전어회를 잘게 썰어 깻잎, 미나리, 오이, 무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린 전어회무침도 별미다.
새콤달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은 막걸리 안주로 딱 좋다.
고등어처럼 조려먹는 전어조림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밥도둑이다.
좋은 전어를 고를 때는 우선 비늘이 온전하게 붙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등에 푸른색이 감돌고 배는 은백색을 내는 등 전체적으로 밝게 빛나는 것이 좋다.
전어는 회를 뜬 후 냉장고에 몇 시간 정도 놔두면 숙성되어 고소함과 감칠맛이 더해진다.
* 출처 : 월간 山 [575호] 2017.09 / 손수원 기자 -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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